침묵 속에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읽었다

바카라 한 권을 추천하고 혼자 망설였던 며칠

by바람 wind air wish

독서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역사모임’에 두 번째로 참석한 날이었다.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회장님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


“역사가 참 어려워요. 돌아보면 저는 이스라엘 역사는 잘 아는데 우리나라 역사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잘 모른다는 쪽이었다.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며 접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비교적 익숙했지만, 정작 내가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역사모임에 나간 이유도 그 궁금함과 닿아 있었다.


그런데 회장님이 뜻밖에 물으셨다.


“그러면 이스라엘 역사바카라을 한 권 추천해 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으신 줄 알고 편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식사를 마친 뒤 그 이야기는 다음 달 모임에서 함께 읽을 바카라을 정하는 쪽으로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조금 당황했다. 이제 막 두 번 참석한 나는 회원들이 어떤 바카라을 좋아하는지, 바카라은 어떻게 정하는지도 잘 몰랐다.


“다른 분들과도 의논해 보셔야죠.”


웃으며 말하자, 한 분이 이스라엘 역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이번 기회에 알아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이 솔직해서 오히려 고마웠다.


그날 이후 혹시 모를 바카라 선정을 위해 몇 권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색채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고, 신앙이 없는 분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카라을 고를수록 내용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먼저 떠올랐다.


‘내가 교회사모니까 이스라엘 바카라을 읽자고 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오늘날의 이스라엘 문제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어쩌지?’


‘신입회원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닐까?’


가볍게 대답했던 바카라 한 권이 며칠 사이 점점 무거워졌다.


아무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한 분은 새로운 역사를 알아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하셨다. 그 밖에는 뚜렷한 반응이 많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읽고 있었다.


아직 서로를 충분히 알지 못하니 작은 반응에도 마음이 쓰였다. 특히 신앙은 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지만,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는 내 말에 다른 뜻이 덧붙여질까 조심스러웠다. 바카라을 추천하는 일이 내 생각이나 신앙을 권하는 일로 받아들여질까봐 걱정됐다.


정작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모두 내가 예상한 반응이었다.


며칠 뒤 회장님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셨다.


“바카라 선정이 힘들면 제가 할까요?”


나는 고맙게 부탁드렸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주세요.”


이후 이야기를 더 나누며 박완서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의견이 모였다. 이미 읽은 바카라이었지만 다시 읽고 싶었다.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의 시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반가웠다.


바카라이 정해지고 나서는 나도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 모임 단체방에 다른 제안이 올라왔다. 여러 사람이 비교적 빠르게 의견을 나누었고, 자연스럽게 일정이 정해졌다.


제안의 내용도 상황도 달랐으니 두 일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때 반응이 적었던 이유 역시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모습을 보며 몇 주 전 내가 느꼈던 긴장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을까?’


바카라을 신중하게 고르려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이 모임에서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가 신경 쓰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기도 전에 오해받을 가능성을 떠올리고, 그 가능성에 맞춰 내 말을 줄이고 있었다.


회장님의 제안으로 바카라 선정을 맡게 된 일이었는데도 어느새 혼자 너무 나선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처음의 대화보다 그 뒤에 내가 덧붙인 생각이 훨씬 길었다.


나는 관계의 분위기를 많이 살피는 편이다. 내 의견 때문에 누군가가 불편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내가 가진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그 마음 덕분에 말을 한 번 더 고르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과, 상대방이 아직 하지 않은 말을 추측해 내 말을 접는 것은 다르다.


그날의 나는 그 둘을 잘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의 반응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함께 지내려면 표정과 말투를 살피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반응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그 빈자리를 내 걱정으로 채우지는 않았으면 한다. 궁금하면 물어볼 수 있고,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때 들을 수 있다.


“저는 이런 이유로 이 바카라이 궁금해요.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그 정도의 말을 꺼내기까지, 나는 혼자 너무 먼 곳을 다녀왔다.


역사를 배우려고 들어간 모임에서 뜻밖에 내 습관 하나를 보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때로는 그 사람의 말보다 내가 상상한 마음을 먼저 듣고 있었다.


다음에 바카라을 추천할 일이 생기면 고른 이유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답할 때까지 기다려보려 한다.


아직 나오지 않은 대답을 내가 먼저 써놓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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