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에도 경계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절박한 부탁 앞에서 생각한 것들

by바람 wind air wish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도움을 요청하는 댓글이 달린다.


먹을 것이 없다거나, 잘 곳이 없다거나, 몸이 아픈데 치료받을 돈이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글에는 계좌번호가 함께 적혀 있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실제로 나는 모르는 사람을 도운 적도 있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도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혹시 내가 속는다 해도 나의 선한 의도는 하나님께서 아시겠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돈을 건넸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도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세상에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선한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여러 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자기 생활비를 아끼고 필요한 것까지 참아가며 돈을 보냈는데, 정작 그 돈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돈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최근 내 블로그에도 비슷한 댓글들이 반복해서 달렸다.


읽을 때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라면 상황과 주변 사정을 살펴볼 단서라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이름도, 얼굴도, 사정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호소는 매우 절박하다.


죽을 것 같다거나, 더는 견딜 수 없다거나, 이것이 마지막 도움이라는 표현을 읽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그런 댓글을 보면서 죄바카라감을 느끼기보다는 불편함을 느낀다.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정말 그렇게 어렵다면 가까운 복지기관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을까?’


‘왜 전혀 모르는 사람의 블로그에 자신의 절박함을 맡기는 걸까?’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더 떠오른다.


‘도움을 요청받는 사람의 형편은 누가 헤아려 줄까?’


인터넷 반대편에 있는 사람 역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다. 생활비를 아껴 쓰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가족의 병원비를 걱정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절박함이 크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의 형편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댓글을 쓴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있고, 제도를 모르거나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해 지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무 힘든 상황에서는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사람을 이해하려는 것과 그 사람의 모든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연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고, 공식적인 지원 방법을 안내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개인적인 금전 요청만 반복된다면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마음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했다고 느낄 때와, 어떤 압박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고 느낄 때 다르게 반응한다.


내가 돕고 싶어서 기꺼이 돈을 건네는 것과, 상대의 절박한 이야기를 읽고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며 돈을 보내는 것은 다르다.


그 불편함이 반드시 내가 인색하거나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상대의 어려움을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내가 어디까지 도울 수 있는지 판단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사정이 중요하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의 형편과 선택권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익명의 개인에게 직접 돈을 보내기보다는 가능하면 교회나 복지기관, 신뢰할 수 있는 단체를 통해 돕기로 했다. 특별한 사정으로 개인을 돕게 되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결정하려 한다.


그리고 내가 내놓은 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에는 그것을 마련한 사람의 시간과 수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5만 원이 작은 돈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며칠 동안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며 모은 돈일 수 있다.


그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것은 인색함이 아니라 바카라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을 겪으며 신앙적으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돕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니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자.’


그 마음은 지금도 소중하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한 문장을 더 붙이고 싶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도 바카라임 있게 사용하자.’


선한 마음과 분별력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거절한다고 해서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를 돕는 일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어려운 사정을 듣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내 형편보다 상대의 사정을 먼저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마음으로 선택한 일들이 모두 후회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도움을 주면서도 어디까지가 내가 감당할 몫인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부담이 되었던 일도 있었고, 내가 도울 수 없는 부분까지 바카라임지려다 지친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과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은 언제나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도움을 거절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어려움까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모든 사람을 바카라임질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내가 해결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향한 마음까지 닫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누군가를 돕고 싶고, 가능하다면 그 도움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제는 선한 마음만큼이나 경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뜻하되 휘둘리지 않고, 의심으로 사람을 정죄하지 않되 분별을 포기하지 않는 것.


누군가의 절박한 부탁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되, 할 수 없는 일까지 약속하지 않는 것.


어쩌면 성숙한 선의란 모든 요청에 '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돕고 무엇을 거절할 것인지 바카라임 있게 선택하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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