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라고 마음까지 같지는 않아서
요즘 부모와 자녀가 연락을 끊고 지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오래 참다가 거리를 두었다는 자녀도 있고,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았는데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며 서운해하는 부모도 있다.
어느 쪽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내 마음도 움직인다.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서운함이 이해되고, 자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한쪽의 말을 듣고 쉽게 판단했다가, 다른 쪽 사정을 알고 마음이 복잡해질 때도 있다.
가족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있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자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을 안다고 여기면서도, 내 아이들이 내 말을 어떻게 듣는지까지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넨 말이 아이에게는 재촉으로 들릴 수 있다. 걱정되어 묻는 질문도 자꾸 반복하면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게는 관심인데, 아이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에게는 마음을 설명하는 일을 자주 생략한다.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겠지. 함께 살아온 시간이 길수록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남에게는 조심스럽게 고를 말도 가족에게는 먼저 꺼내고 본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그 말에는 정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 말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더 꺼내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좋은 뜻이었다는 설명만으로 대화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면서 내가 조금씩 알게 된 것은, 말한 사람의 뜻과 들은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가족 사이에서도 그렇다.
부모는 밤잠을 줄여가며 돌본 날들을 기억한다. 자녀는 속상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꾸중을 들었던 날을 기억할 수 있다.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간을 살았어도 마음에 남은 장면은 다르다.
한 사람이 기억하는 수고가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상처를 지워주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상처가 있었다는 이유로 그동안의 돌봄이 모두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두 이야기를 함께 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 역시 내 수고를 몰라준다고 느끼면 서운하다. 그럴 때는 내가 해온 일부터 떠오른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라는 말을 준비할 때가 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리면 잠깐 멈추고 싶다. 내가 애쓴 일을 설명하기 전에, 상대는 무엇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지 조금 더 들어보려고 한다.
당장 동의하기 어려운 말도 있을 것이다. 내 기억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 너는 그렇게 느꼈구나” 하고 듣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별일 아니었던 일이 그 사람에게도 별일 아니었으리라고 정해두지 않으면서.
예전에는 가족이니 웬만한 것은 참고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형제니까. 그런데 참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모르면, 한 사람은 괜찮은 줄 알고 같은 말을 계속하고 다른 사람은 더 지쳐갈 수 있다.
그래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듣게 된다.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에게 “그래도 가족인데”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힘든 마음을 또 설명해야 한다.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와 지금 가까이 지낼 힘이 있는지는 다를 수 있다.
잠시 연락을 줄이거나 만남을 쉬는 선택이 필요한 관계도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어야 하는지, 이후에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지는 밖에서 쉽게 정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쪽의 결론을 대신 내려주기보다, 그 말을 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다.
가족을 이해한다는 것이 모든 요구를 받아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사정을 말하는 것과 상대의 사정을 듣는 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오늘은 쉬고 싶어.”
“그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하면 좋겠어.”
이런 말을 서운하게만 듣지 않고, 지금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말로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다.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부탁이 상대에게는 힘에 부칠 수 있으니까.
가족은 가까워서 잘 아는 사이이지만, 가까워서 묻지 않고 짐작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로 오늘의 마음까지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도 엄마로서 배워야 할 것이 달라진다. 돌보는 일이 많았던 때를 지나, 이제는 내 생각과 다른 선택을 듣는 일이 늘어난다. 걱정은 여전하지만 그 걱정만으로 아이의 마음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할 말을 조금 늦추고 물어보고 싶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대답을 들은 뒤, 곧바로 내 말을 이어가기보다 조금 더 기다려보고 싶다.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