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해하려는가, 가르치려는가?
오늘 상담 수업에서 다른 사람의 사례를 들여다보다가 뜻밖에 내 모습을 보았다.
사례개념화 발표와 슈퍼비전을 듣는 시간이었다.
상담이론을 공부하는 것과 실제 사람의 이야기를 상담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일은 꽤 달랐다. 바카라에서는 자연스럽게 이해되던 원칙들이 실제 사례 앞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찾아내고, 내담자와 함께 상담 목표를 세우고, 여러 가능성 가운데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개입을 선택하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에 남은 질문이 있었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 것과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같을까?'
사례를 들으며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배운 이론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지금 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상담자는 내담자를 잘 돕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사용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배운 기법을 적용하고 싶고, 좋은 방향을 알려주고 싶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싶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의 출발은 선의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너무 앞서면 어떨까.
내담자가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꺼내지 못했는데 상담자가 먼저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면, 정작 그 사람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디에 남게 될까.
물론 그날의 사례에서 누군가 그렇게 했다고 단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례를 보며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습관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설명하는 일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배우면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진다. 바카라에서 좋은 내용을 발견하면 혼자 알고 있기 아쉽고, 어렵게 이해한 개념을 누군가에게 쉽게 풀어줄 때는 즐겁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랬던 것 같다.
상대가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그냥 듣고만 있기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정리해주고 싶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알려주고 싶었고,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그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 마음에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하는 진심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대는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 해결 방법을 찾고 있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지 생각하고, 상대의 고민을 듣다가 어느새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길게 설명한 적도 있었다.
도움이 되었던 순간도 있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때 내 설명을 필요로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상대를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강의 원고를 작성하고,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으며 말하는 속도와 설명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강의를 할 때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 주는 것도 강사의 역할이다.
그런데 상담의 자리에서는 조금 달라진다.
상담자에게도 전문적인 지식과 적절한 개입은 필요하다. 때로는 설명하고, 질문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내담자가 있어야 한다.
내가 준비한 설명을 얼마나 잘 전달했는가 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있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강의실에서 나의 설명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상담실에서는 그 설명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자리에서는 말을 잘해야 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말을 아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상담실에서만 필요한 태도도 아니다.
가족이 힘든 일을 이야기할 때, 누군가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비슷하다.
상대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데 나는 어느새 해결 방법을 알려주고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해봐.”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다르게 생각해 봐.”
모두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마음에 닿지 않을 수 있다. 때로는 충분히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또다시 누군가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조언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하고, 잘못된 정보나 위험한 선택 앞에서는 분명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다.
문제는 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상대에게 필요한 말인지, 아니면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인지 구별하는 것.
어쩌면 내가 앞으로 더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그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생각이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사람이다.
관심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신이 나서 설명하다가 말이 빨라지기도 한다. 좋은 내용을 혼자 알고 있기 아쉬워 남편에게 한꺼번에 이야기할 때도 있다.
그런 내가 상담을 배우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조금 재미있는 일이다.
한쪽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연습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말을 조금 늦추고 상대의 이야기를 더 오래 듣는 연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두 가지가 서로 반대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듣는 능력이 필요하고, 잘 듣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순간에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잘하느냐보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는 일일 것이다.
오늘의 슈퍼비전은 다른 사람의 상담 사례를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내 말의 습관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질 것이다. 상대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빨리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다.
'지금 나는 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르치려고 하고 있는가?'
아마 매번 그 질문을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말을 앞세웠다가 뒤늦게 돌아보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런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연습해보려 한다.
오늘 수업을 마치며 내게 남은 것은 새로운 상담기법 하나가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언제 말해야 하는지, 또 언제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직은 그 답을 배워가는 중이다.
다음에 누군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무엇을 알려줄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다.
'조금 더 이야기해 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