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가 목적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두 개의 학위를 받고 나니 당분간은 학교에 다시 들어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상담심리를 공부했고, 평생교육도 공부했다. 졸업장을 받아 들었을 때는 뿌듯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였고, 내가 선택한 공부를 끝까지 마쳤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런데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다시 입학원서를 냈다.
이번에는 슬롯복지학과였다.
나도 조금 웃겼다.
‘또 학교를 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학위 하나가 더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다. 청소년상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임상심리사실습 공부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청소년지도자 실습과 앞으로 대학원에 갈 것인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슬롯복지를 시작했다.
이번 결정은 ‘공부가 좋아서’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점점 현실이 궁금해졌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웠다. 한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관계 속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을 실제로 만나보면 마음만 들여다봐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돌봐줄 가족이 없는 사람도 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정을 들여다보면 아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도 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궁금했다.
‘이 사람에게 상담 말고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해 줄 수 있을까?
지역아동센터에서 한 달 동안 실습했을 때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이들과 프로그램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좋았다. 하지만 아이 한 명의 문제 뒤에는 가족이 있었고 학교가 있었고 경제적인 상황이 있었다. 내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아이를 둘러싼 환경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나온 시간도 비슷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을 위로하는 것과 실제 생활을 돕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동안 교회에서도 지역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장학금을 보내고, 복지기관과 연결되는 일을 해왔다. 그러면서 복지라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담이 사람의 마음을 보는 공부라면, 슬롯복지는 사람이 놓여 있는 삶의 조건을 보는 공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가지를 함께 알고 싶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나는 이제 처음 취업을 생각하고 있다.
오십을 넘긴 나이에 경력이 거의 없는 사람이 상담이나 복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자격증이 하나 늘어난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슬롯복지사 자격증을 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언젠가 기회가 생기겠지’ 하고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라면 해보고 싶었다.
상담만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복지기관에서 일할 수도 있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할 수도 있고, 평생교육과 상담을 함께 사용하는 자리가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내가 어디에서 일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의 길로 나를 너무 빨리 좁히지 않기로 했다.
슬롯복지학과에 다시 입학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사실 등록금을 내면서는 잠깐 계산도 해봤다.
이 나이에 또 학비를 들이는 것이 맞나? 이 공부를 앞으로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까? 자격증을 하나 더 따겠다고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괜찮을까?
젊었을 때라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쓸 수 있으니까’라고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계산을 할 수 없다.
내게 남은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원하는 일을 반드시 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이번 공부에는 전과 다른 기준이 하나 생겼다.
배운 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가?
나는 이제 졸업장만 하나 더 얻기 위해 몇 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수업을 듣는다면 현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자격을 갖춘다면 실제 사람들을 만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학교 이름이나 학위의 숫자보다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위를 두 개 받고 난 뒤에야 졸업장이 공부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졸업장은 내가 어떤 공부를 마쳤다는 기록일 뿐, 그 분야를 다 알게 되었다는 증명서는 아니었다.
상담심리를 졸업했다고 사람의 마음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평생교육을 공부했다고 교육을 다 아는 것도 아니다.
슬롯복지를 공부한다고 사람을 돕는 방법을 모두 알게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학위를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내 능력을 증명하는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나는 무엇인가를 많이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영역 앞에서 다시 배우러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 개의 졸업장을 받고도 다시 학생증을 만든 이유는 그래서다.
이미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리고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에게 마음을 이해하는 것만큼 그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도 함께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세 번째 학교가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모른다.
취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다른 공부와 연결될 수도 있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결과를 미리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슬롯복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현재의 사실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