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가 되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마음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상담을 받으며 속으로 몇 번이나 되물었던 말이다.
상담자는 내 삶의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 않았다. 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 판정해주지도 않았다. 내가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렸고, 내가 한 말을 다시 들려주었으며, 서둘러 지나친 감정 앞에 조금 더 머물게 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낯설었다.
나는 상담을 받으면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정리해 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상담자는 답을 주기보다 자꾸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오십이 넘어 상담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었지만,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나 자신에게 묻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나처럼 상처도 받고, 화도 내고, 관계에서 실수도 하는 사람이 상담을 해도 괜찮을까?’
내가 생각했던 상담가는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도 중심을 지키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며, 사람을 넓게 이해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 기준에 나를 세워보면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누군가의 말에 서운해했고, 좋은 뜻으로 한 일을 알아주지 않으면 속상했다. 이해하려고 애쓰다가도 지치면 마음을 닫았다. 상담을 공부한다고 그런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론을 배우면서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 경험이 떠오르거나, 어떤 사람에게 유난히 마음이 쓰일 수도 있었다. 내가 풀지 못한 감정이 상대의 이야기와 만나면, 돕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내게 필요한 위로나 인정을 구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질문을 바카라 속에만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발로 상담소를 찾아갔다.
그때 내게도 힘든 마음이 있었다. 전문상담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나 역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8주간의 개인상담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처음에는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처음에는 꺼내지 못했던 말이 나왔다.
상대에게 서운했다고 말하다가 내가 무엇을 기대했는지 알게 되었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다가 싫다고 하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괜찮다고 넘겼던 일이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는 것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나를 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셋을 키웠고, 오랫동안 교회를 섬겼으며, 신학도 공부했다. 여러 어려움을 지나며 나름대로 나를 돌아보았다. 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는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설명하는 이론도 배웠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꺼내놓으니 배운 내용을 적용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거절하지 못했고, 내 여력을 넘어선 뒤에야 왜 나만 이렇게 애쓰는지 억울해지기도 했다.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원해서 했다고 생각한 일에 부담이 섞여 있었고, 기꺼이 주었다고 여긴 마음에 바람도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잘못이 내게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상대의 행동 때문에 실제로 상처받은 일도 있었다. 다만 상대가 한 일과, 그 일에 내가 어떻게 반응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는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달라진 것은 그 부분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의 잘못을 생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 마음에도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이 말이 유난히 서운했을까. 나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정말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싫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이 금방 나오지는 않았다. 어떤 질문은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오래 남았다.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고,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만났을 때 조금 더 분명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곧바로 나를 다그치지는 않으려고 했다. 서운하다는 이유로 속이 좁은 사람이라고 몰아붙이거나, 힘들어도 더 참아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그 감정이 생긴 사정을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하듯 내 이야기에도 시간을 내주는 일이 필요했다.
내담자가 되어본 경험은 상담을 바라보는 생각도 바꾸었다.
전에는 상담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해줄 것 같았다. 적절한 설명과 조언으로 막힌 길을 열어주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고 마음을 정리해 가는 동안, 상담자의 기다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성급한 결론이 나오지 않으니 나도 서둘러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 했던 말을 고치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내 이야기를 더 정확하게 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많은 주의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다. 듣는 동안 떠오르는 내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가 자기 말로 설명할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상담에는 경청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 상황에 맞는 개입도 필요하다. 내가 경험한 상담만으로 상담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내게는 답을 서둘러 주지 않았던 그 시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상처 입은 상담가도 괜찮을까.
이제는 상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답을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하게 살펴야 할 것은 내 감정과 반응이 상담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다룰 것인지다.
특정한 이야기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거나 상대를 지나치게 돕고 싶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내게 도움이 되었던 선택을 권하고 싶거나, 상대가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 답답해지는 순간도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내 마음을 곧바로 상대에 대한 판단으로 옮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상대의 필요보다 내 기대를 앞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혼자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데에는 한계도 있다. 그래서 슈퍼비전을 통해 내 상담을 점검받고, 필요하면 나도 다시 상담을 받으며 도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상태가 상담에 영향을 줄 만큼 어려워진다면 맡고 있는 일을 조정하는 판단도 필요할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바카라임을 배우며 상담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상담을 공부했다고 관계의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서운하고 화가 날 때가 있을 것이며, 배운 대로 하지 못해 뒤늦게 내 말을 돌아보는 날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순간을 지나쳐버리지 않고 싶다.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고 싶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사람을 돕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내담자의 자리에 앉아보니, 그 일을 하려면 내 마음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은 조금 내려놓았다. 대신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필요한 훈련과 도움을 받으며, 내 마음을 살피는 바카라임을 이어가려 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싶다면, 내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내 상처를 외면한 채 다른 사람의 상처만 들여다보는 상담가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담자가 되어본 뒤, 상담을 공부하는 내 마음에 남은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