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었다는 것과 배웠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서늘했다. 집 뒤의 산을 천천히 걸었다. 예전 같으면 조금 더 빠르게 걸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무리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 걷는 산이니 숨이 차오르면 잠시 쉬고, 길가의 나무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늦춘다.
걷다가 문득 내가 살아오며 참 많이 아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뜀틀을 하다 팔이 부러졌고, 중학생 무렵에는 장티푸스로 한 달 가까이 고열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는 맹장염 수술을 받았고, 그 뒤로도 위염과 위경련을 달고 살았다.
그러다 마흔이 되던 해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교회에는 나보다 먼저 갑상선 수술을 받은 분이 있었다. 그분이 아플 때 나는 곁에서 위로했었다. 그런데 막상 의사에게 내가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남의 아픔을 바라보는 것과 내가 직접 그 자리에 서는 것은 달랐다.
갑상선 전체를 제거하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기 위해 격리병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혼자 있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누구를 챙기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치료를 받으러 들어간 병실에서 비로소 편히 쉬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곳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또 하나의 자격증을 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접 아파보니 이전에 내가 건넸던 위로가 떠올랐다. 진심으로 했던 말이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두려움까지 충분히 헤아렸던 것은 아니었다. 병실에 누워서야 조금 알아듣게 된 마음들이 있었다.
그 후에도 내가 자격증이라 부르던 경험은 계속 늘어났다.
건강검진에서 가슴에 종양이 발견되었고, 수술 뒤 0기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수술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자리에 종양이 재발했고, 결국 한쪽 가슴을 전부 절제하는 수술까지 받았다.
병원에서는 비슷한 두려움을 지나고 있는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했다.
“많이 힘드시죠.”
그 한마디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같은 병원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쉽게 열 수 있었다.
이후에도 난소종양으로 수술을 받았고, 산에서 넘어져 발목에 철심을 박았다가 제거하는 수술도 받았다. 몸의 아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들이 백혈병으로 아팠던 시간은 내가 직접 아픈 것과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낫겠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그때 알았다. 내 몸이 아플 때는 내가 견디면 되었지만, 자식의 아픔 앞에서는 대신 아파줄 수도, 대신 치료받을 수도 없었다. 곁을 지키면서도 정작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시간을 지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래, 이것도 하나의 자격증이 될 거야.’
언젠가 누군가가 아플 때, 절망할 때, 자식 때문에 마음이 무너질 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격증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교회에서 아픈 분들은 내게 먼저 기도를 부탁하곤 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는 힘든 경험이 사람을 깊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느리 시절 누구보다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며느리에게 비슷한 어려움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오랫동안 아팠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무심한 경우도 보았다.
“나는 그것보다 더한 것도 견뎠어.”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내 경험을 앞세운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도 전에 내가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안다고 여긴 순간은 없었을까.
경험이 많다는 것만으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십이 넘어 다시 대학생이 된 뒤, 공부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 되기도 했다. 바카라 속의 개념을 읽다가 오래전 병실이 떠올랐고, 사람의 마음에 관한 설명을 따라가다가 내가 했던 말 앞에서 멈추기도 했다.
그중 마음에 남았던 것이 경험학습이라는 개념이었다.
어떤 일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 배움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험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깨달은 것을 다음 삶에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경험하고, 돌아보고, 의미를 발견하고, 다음에는 다르게 살아보는 것.
그 과정을 내 삶에 비추어 보니 내가 아픔의 자격증이라고 불렀던 시간들도 새롭게 보였다.
나는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 모든 경험에서 충분히 배운 것은 아닐 수 있었다.
아파본 것만으로 따뜻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가난했다고 가난한 사람을 반드시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상처받았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도 아니다.
경험을 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견뎌낸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맞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견뎠으니 너도 견뎌야 한다.’
그 순간 경험은 사람을 이해하는 통로에서 사람을 재는 자로 바뀐다.
그래서 내 경험 앞에 잠시 멈춰 질문해보려 한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무엇이 가장 두려웠을까. 누군가의 어떤 말이 나를 살렸고, 어떤 말이 나를 더 외롭게 했을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야 할 것이 생긴다.
‘내가 아팠던 방식과 저 사람이 아픈 방식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예전에는 내가 암을 경험했으니 암 환자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은 병명 안에도 얼마나 다른 사정과 두려움이 있는지 생각한다.
누군가는 담담해 보이고 누군가는 무너진다. 혼자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밤새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들의 아픔을 지켜본 부모라고 해서 모든 아픈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일은 대화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상대의 이야기를 대신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내 경험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증명서가 아니었다. 그 경험에서 더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함부로 안다고 말하지 않고 한 번 더 묻는 태도일 것이다.
산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빛 사이로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팠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은 분명 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쉽게 충고하지 않게 되었고, 고통에는 저마다의 무게가 있다는 것도 조금씩 배웠다.
그렇다고 내가 겪은 모든 고통이 저절로 약이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억울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일도 있고,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먼저 움츠러들게 하는 기억도 있다.
지나간 일을 좋은 뜻으로 정리했다고 해서 그 안의 감정까지 모두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산길을 걸었다.
앞서 걸어본 길이지만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리하면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배움도 그와 닮아 있었다.
오래 살아왔다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익숙하게 믿어온 생각을 고쳐야 할 때도 있었고, 내가 해온 방식과 다른 방법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었다.
오십이 넘어 다시 대학생이 된 내게는 새로 외워야 할 지식만큼이나 다시 살펴봐야 할 경험이 많았다.
이제 나는 아픔의 자격증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아파봤으니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잘 안다는 자격증에서, 아파봤기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워가는 자격증으로.
겪었다는 것과 배웠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었다.
돌아보지 않은 경험은 때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돌아본 경험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험은 저절로 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약을 천천히 달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