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오십이 넘어 다시 학생이 되었습니다.

쉰을 넘어 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

by바람 wind air wish

요즘 내 바카라상 위에는 노트북과 바카라들이 쌓여 있다.

상담 바카라도 있고, 슬롯복지 교재도 있고, 심리검사 문제집도 있다.

시험이 가까워지면 외워지지 않는 내용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분명 공부한 것 같은데 문제를 풀면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혼잣말을 한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려고 이 나이에 시키지도 않는 일을 왜 이러고 있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힘들다고 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잘 들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공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욕심이 아니었다.

나는 젊은 시절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키웠고, 남편과 함께 교회를 섬기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해야 할 일이 늘 있었고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 시간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교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도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안에서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참 많이 배웠다.

사람의 마음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사랑한다고 해서 언제나 잘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좋은 뜻만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배웠다.

그런데 마음 한쪽에는 늘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왜 이럴까?’

같은 일을 겪고도 왜 어떤 사람은 쉽게 일어서고, 어떤 사람은 오래 아파할까?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화를 내게 될까? 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을 흔들까? 그리고 나는 왜 어떤 일 앞에서 유난히 서운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애쓰게 되는 걸까?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긴 질문은 점점 많아졌지만, 나는 그 질문들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그저 성격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참아야 하는 일이라고 넘길 때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남들이 가진 것을 이제라도 가져야겠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동안 살아오며 마음속에 하나씩 쌓아두었던 질문을 조금 더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심리를 공부했고, 심리치료를 배우고, 평생교육을 공부했다. 바카라에서 배운 이론들이 내 삶의 장면들과 하나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들었구나.’

‘그 사람에게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겠구나.’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일들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공부는 나에게 답을 주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주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마음이 힘들면 얼른 괜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를 내면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고 자바카라했고, 지치면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마음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감정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고, 상처는 부끄러워 감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아야 하는 것이며, 사람은 생각보다 천천히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공부하고 싶었던 것은 지식을 많이 갖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가족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우고, 교회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온 시간들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도 있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을 함부로 실패나 후회라는 이름으로 정리하지 않고,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 시간들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지 천천히 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 공부는 자꾸 삶으로 돌아온다.

시험을 위해 외운 이론 하나가 오래 전의 나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하고, 교재 속 한 문장이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마음들을 나는 요즘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공부가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외우고 또 외워도 잊어버리고, 시험 날짜가 가까워지면 마음이 급해지고, 과제를 하다가 ‘괜히 시작했나’ 싶을 때도 있다.

젊었을 때보다 기억력도 느리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바카라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좋다.

잘해서가 아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을 내 힘으로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하나씩 배워가는 일이 좋다.

오랫동안 나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았다.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교회에서 맡은 역할을 감당하며 그때그때 내 앞에 놓인 일들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시간 위에 내가 오래 품고 있던 배움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뒤늦은 욕심이 아니다.

늦게 찾아온 꿈이라고 부르기에도 조금 다르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 한쪽에 조용히 놓아두었던 것을 이제야 꺼내어 펼쳐보는 일에 가깝다.

바카라장을 넘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배움에도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시 바카라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는 그 시간이 조금 늦게 왔을 뿐이다.

그리고 늦게 시작했기에 오히려 알게 된 것도 있다.

젊은 날에는 시험을 위해 읽었을 문장을, 이제는 살아온 시간을 떠올리며 읽게 된다는 것.

그래서 요즘의 공부는 머리에만 남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날들과 만나고, 사람들의 얼굴과 만나고, 때로는 오래 전의 나와도 만난다.

나는 오늘도 바카라을 펼친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한동안 덮어두었던 배움의 마음을, 이제는 오래도록 놓치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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