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딸에게서 편지가 왔다

8화. 아빠의 첫 번째 조건

by필립

아빠가 될 사람은 오늘 자정까지 한서윤을 데려오세요.

두 명이 오면 아이 둘이 사라집니다.

세 명이 모두 오면 한서윤이 죽습니다.

메시지 아래에 적힌 주소는 7년 전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장소였다.

병실 시계는 오후 9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정까지 두 시간 사십팔 분 남았다.

“아무도 가지 마요.”

내 말에 세 남자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주소가 왜 하필 그곳인지부터 알아봐야 해요.”

우진이 말했다.

“알아보는 것과 직접 가는 건 다릅니다.”

“여기서 기다린다고 답이 나와요?”

“적어도 발신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겠죠.”

재하가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려 했다.

“경찰에 넘기자.”

“발신번호도 없고 주소 하나뿐이야.”

“그래도 사고 현장이야. 오늘 트럭도 누가 일부러 움직였잖아.”

태경이 침대 옆에 놓인 카메라를 들었다.

“그곳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요?”

“7년 전 사고가 난 날입니다.”

재하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도 그곳에 있었어?”

“정확히는 사고가 발생하기 30분 전에 지나갔습니다.”

“왜 이제 말해요?”

“오늘 사진을 확인하기 전까지 같은 장소인지 몰랐습니다.”

태경은 카메라 메모리카드에 저장해둔 오래된 사진을 노트북으로 불러왔다.

촬영 날짜는 2019년 9월 14일이었다.

재하가 편지를 받고 나를 떠났던 날.

내가 그를 찾아가다가 사고를 피한 날이었다.

사진에는 오래된 상가 건물이 찍혀 있었다. 지금은 철거됐지만 당시에는 1층에 웨딩사진 전문 스튜디오가 있었다.

유리창 안쪽에는 커다란 결혼사진 한 장이 전시돼 있었다.

태경이 사진을 확대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얼굴은 빛에 가려져 있었다. 신랑의 모습도 절반밖에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봄이야.”

내가 말했다.

아이가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 모양 목걸이는 처음 받은 사진 속 봄이의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7년 전에 찍힌 사진이라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이였다.

“이 사진을 직접 봤어요?”

“아니요.”

태경이 대답했다.

“풍경을 촬영한 뒤 바로 이동했습니다. 아이가 찍힌 사실은 오늘 알았습니다.”

“우연히 찍은 거예요?”

재하의 질문에 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못 해?”

“그날 이 장소로 가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모르는 번호였습니다.”

태경은 오래된 휴대전화 백업 기록을 열었다.

메시지는 짧았다.

오후 3시 40분. 웨딩사진 속 아이를 촬영하세요. 그 아이가 당신의 미래를 바꿀 겁니다.

“7년 전부터 편지를 보낸 사람이 태경 씨에게도 접근했다는 거네요.”

내 말에 우진이 사진을 확대했다.

유리창에 촬영자인 태경의 모습이 희미하게 반사돼 있었다.

그 뒤에 다른 남자도 서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왼쪽 손목에는 갈색 가죽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우진이 시계를 바라보자 재하가 물었다.

“당신 맞지?”

“아닙니다.”

“7년 전 사고 현장에 있었잖아.”

“저 장소에 서 있던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

“또 거짓말하네.”

“내가 그날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46분입니다.”

우진이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한 장 꺼냈다.

도로 건너편에서 찍힌 사고 직전의 사진이었다.

촬영 시각은 오후 3시 45분.

사진 속 우진은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태경의 사진 속 갈색 시계를 찬 남자는 같은 시각 웨딩스튜디오 앞에 있었다.

두 장소 사이에는 차로 10분 이상 걸렸다.

같은 사람이 동시에 있을 수는 없었다.

“우진 씨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또 있다는 거예요?”

내 질문에 그는 사진을 끄며 말했다.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시계는 똑같잖아.”

재하가 말했다.

“그 시계를 찬 사람은 샹들리에를 건드렸고 서윤이 집에도 침입했어. 그리고 7년 전 사고 현장에도 있었고.”

“그래서 나를 범인으로 생각합니까?”

“아니라고 증명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만해.”

나는 노트북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웨딩사진 속 봄이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아이는 사진 오른쪽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신랑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의 손이 찍혀 있었다.

남자의 손이었다.

왼쪽 손목에 가느다란 흉터가 있었다.

“여기 한 사람 더 있어요.”

태경이 사진의 밝기를 조절했다.

사진 밖에 서 있는 남자의 윤곽이 나타났다.

그는 웨딩사진 속 아이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었다.

작은 흰색 봉투였다.

봄이에게 편지를 건네는 남자.

하지만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 휴대전화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을 확인했군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정확한 순간에 보낸 메시지였다.

곧이어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자정까지 오지 않으면 사진 속 아이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봄이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아이의 몸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얼굴과 오른손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가야겠어요.”

“안 됩니다.”

우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봄이가 사라지고 있어요.”

“당신을 움직이게 만들기 위한 사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아이가 없어지는 걸 지켜보라고요?”

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먼저 갈게.”

“혼자 가서 뭘 하려고?”

“함정인지 확인하고 연락할게.”

“메시지에는 아빠가 될 사람이 나를 데려오라고 적혀 있어.”

“그러니까 내가 가야지.”

재하의 말이 병실 안에 무겁게 떨어졌다.

그는 자신이 아빠일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태경 역시 자신의 사진 속 아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갈지는 내가 정해요.”

나는 세 사람을 바라봤다.

“이번에도 편지가 선택하게 두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태경이 물었다.

“셋 다 같이 가요.”

우진이 미간을 좁혔다.

“세 명이 모두 가면 당신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목숨을 걸면서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한 명을 선택하라고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한 사람을 선택하면 나머지 두 아이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나는 사진 속 희미해지는 봄이를 바라봤다.

“누가 내 진짜 딸인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결정해요?”

결국 우리는 모두 함께 가기로 했다.

태경은 퇴원할 상태가 아니었지만 병원에 남겠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재하가 운전했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우진과 태경은 뒤차로 따라왔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건물이 줄어들었다.

가로등마저 끊긴 도로 끝에 오래된 건물 한 채가 나타났다.

7년 전 웨딩스튜디오가 있던 자리였다.

재하가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시각은 오후 11시 41분.

자정까지 19분 남아 있었다.

“차에서 기다려.”

“싫어.”

“내가 먼저 확인하고 올게.”

“또 혼자 결정하지 마.”

나는 차 문을 열었다.

뒤차에서 우진과 태경도 내렸다.

건물 입구에는 새로운 도어록이 설치돼 있었다. 폐건물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깨끗했다.

도어록 화면에 숫자가 나타났다.

20291017

내가 죽는 날짜였다.

숫자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건물 안에는 긴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복도 끝에는 세 개의 문이 있었다.

첫 번째 문에는 차우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두 번째 문에는 박재하.

세 번째 문에는 이태경.

각 문 아래에는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한봄.

박봄.

이봄.

세 아이는 서로 다른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세 사진 속 아이의 입이 동시에 움직였다.

“이제 아빠를 찾는 첫 번째 조건을 알려줄게.”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 있어?”

대답 대신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각 방에는 의자 하나와 화면 하나만 놓여 있었다.

화면에는 나의 죽음이 촬영된 영상이 멈춰 있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스피커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들어가지 마요.”

내가 말했지만 세 남자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각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우진은 화면을 확인한 뒤 곧바로 휴대전화를 껐다.

재하는 메시지를 읽고 나를 바라봤다.

태경은 검은 봉투를 움켜쥐었다.

“뭐라고 왔어요?”

세 사람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출입문이 닫혔다.

도어록이 잠기고 천장 조명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복도 벽에 3분 47초의 제한시간이 나타났다.

아이의 목소리가 말했다.

“시간 안에 한 사람만 방에 들어가야 해.”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면?”

내 질문에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가 죽어.”

“두 명이 들어가면?”

“두 아이가 사라져.”

“세 명이 들어가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빠가 죽어.”

제한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3분 46초.

3분 45초.

나는 세 남자를 바라봤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요.”

그러나 우진이 첫 번째 방으로 걸어갔다.

재하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뭐 하는 거야?”

“내가 들어가겠습니다.”

“당신이 아빠라는 보장 없어.”

“그러니까 내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겁니다.”

“혼자 영웅인 척하지 마.”

재하도 두 번째 문 앞으로 갔다.

태경 역시 자신의 이름이 붙은 방을 바라봤다.

나는 세 사람 사이를 막았다.

“이게 발신인이 원하는 거예요.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싸우게 만드는 거라고요.”

“시간이 없습니다.”

우진이 말했다.

2분 58초.

2분 57초.

태경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게 보여줬다.

메시지에는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당신이 방에 들어가면 이봄이 태어납니다.

재하에게도 같은 형식의 문장이 도착했다.

당신이 방에 들어가면 박봄이 태어납니다.

우진의 메시지도 확인했다.

당신이 방에 들어가면 한봄이 태어납니다.

각자의 아이를 살리려면 먼저 방에 들어가야 했다.

“선택하지 마요.”

나는 휴대전화를 돌려줬다.

“이건 아빠를 찾는 조건이 아니에요. 누가 자기 아이를 먼저 선택하는지 보는 시험이에요.”

“그게 왜 문제입니까?”

우진이 물었다.

“진짜 봄이가 원하는 건 자신이 태어나는 것보다 내가 살아남는 거였어요.”

첫 편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봄이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위험을 감수했다.

“자기 아이가 태어나게 만들려고 나를 위험하게 하는 사람은 아빠가 아니에요.”

제한시간은 1분 31초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아무도 들어가지 마요.”

“아무도 들어가지 않으면 서윤 씨가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부터 거짓말일 수 있어요.”

재하가 내 손을 잡았다.

“아니면 진짜일 수도 있어.”

“그래도 들어가지 마.”

“네가 죽는 것보다는 내가 죽는 게 나아.”

재하가 두 번째 방으로 향했다.

우진이 그의 앞을 막았다.

“당신이 들어가면 서윤 씨가 아니라 박봄을 선택하는 겁니다.”

“그럼 당신은 왜 들어가려고 했는데?”

“나는 다른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까 확인했잖아.”

“그 전에 한 통이 더 왔습니다.”

우진이 삭제한 메시지를 복원해 보여줬다.

차우진, 당신은 조건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에요?”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40초.

39초.

세 개의 방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태경이 자신의 방에 있던 화면을 촬영했다.

확대한 영상 속에는 쓰러진 나에게 다가오는 남자의 그림자가 있었다.

왼쪽 손목에 흉터가 보였다.

“잠깐.”

태경이 소리쳤다.

“영상에 찍힌 사람은 우리 셋 중 한 명입니다.”

30초.

재하가 화면을 보려고 세 번째 방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모든 문이 닫혔다.

세 남자는 복도에 남았다.

아무도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10초.

9초.

우진이 나를 끌어안고 바닥에 엎드렸다.

재하는 내 앞을 막았고 태경은 주변을 촬영했다.

3초.

2초.

1초.

제한시간이 끝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장의 붉은 조명이 꺼졌다.

세 아이의 사진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진 속 한봄과 박봄, 이봄의 얼굴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대신 세 장의 사진에 같은 문장이 나타났다.

«첫 번째 조건을 확인했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아이보다 엄마를 먼저 선택한 사람입니다.»

세 남자 모두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 사람 모두 첫 번째 조건을 통과한 셈이었다.

“이게 무슨 시험이에요?”

내가 천장을 향해 물었다.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잖아.”

스피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복도 끝 벽이 열리며 숨겨진 화면이 나타났다.

조금 전 세 남자가 받은 메시지 기록이 차례로 재생됐다.

우진에게 온 메시지.

재하에게 온 메시지.

태경에게 온 메시지.

내가 확인했던 내용과 달랐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지시를 받았다.

«한서윤에게 메시지를 보여주지 마.

방에 들어가는 척만 해.

제한시간이 끝나면 첫 번째 조건을 통과할 수 있어.»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 남자는 나를 위해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조건을 통과하기 위해 거짓 행동을 한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을 바라봤다.

“셋 다 알고 있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마지막 화면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아빠의 첫 번째 조건.

엄마에게 거짓말하지 않을 것.

세 사람 모두 탈락했습니다.»

화면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우진도, 재하도, 태경도 아니었다.

차가운 손이 내 귓가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 아빠야.”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복도 조명이 켜졌다.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손목에는 네 번째 흉터가 생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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