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세 번째 아빠
언덕 위에 세워져 있던 대형 트럭이 이태경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태경 씨!”
내가 소리쳤지만 사진관 유리문은 열리지 않았다.
재하가 출입문 손잡이를 몇 번이나 잡아당겼다. 오래된 유리문이 거칠게 흔들렸지만 잠금장치는 풀리지 않았다.
트럭은 점점 빨라졌다.
태경은 뒤늦게 경적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이 굳었다.
도망치면 피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태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검은 봉투를 움켜쥔 채 사진관 안에 있는 나를 바라봤다.
마치 트럭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뭐 하는 거야! 피하라고!”
재하가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유리문을 내리쳤다.
쾅.
유리에 금이 갔다.
두 번째 충격에 금이 사방으로 번졌다.
트럭과 태경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그런데도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유리문 너머라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오지 마요.
재하가 세 번째로 의자를 내리쳤다.
유리문이 깨졌다.
그가 내 팔을 붙잡았다.
“뒤로 가 있어.”
“태경 씨가 안 움직여.”
“나가지 마.”
“저러다 죽어.”
나는 재하의 손을 뿌리치고 깨진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한서윤!”
재하가 뒤따라왔다.
트럭은 이미 태경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렸다.
태경이 나를 발견한 순간 처음으로 자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트럭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내 쪽으로 달려와 그대로 몸을 던졌다.
강한 충격과 함께 몸이 바닥으로 넘어졌다.
태경이 나를 감싸 안은 채 도로 옆으로 굴렀다.
트럭은 우리가 있던 자리를 지나 사진관으로 돌진했다.
굉음과 함께 건물 앞부분이 무너졌다.
유리창이 산산이 깨지고 벽돌과 먼지가 도로 위로 쏟아졌다.
“서윤아!”
재하가 잔해 사이에서 나를 끌어냈다.
귀 안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태경 씨는?”
내 옆에 쓰러진 태경은 눈을 감고 있었다.
오른쪽 관자놀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태경 씨.”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봐요.”
태경이 힘겹게 눈을 떴다.
“다친 데…… 없습니까?”
자신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그는 내 상태부터 확인했다.
“왜 가만히 서 있었어요?”
태경의 시선이 도로 위에 떨어진 검은 봉투로 향했다.
봉투는 트럭 바퀴에 밟혀 찢어져 있었다.
안에 있던 편지 한 장이 바람에 날려 나왔다.
종이는 내 발밑에 떨어졌다.
«이태경에게.
오후 3시 47분까지 사진관 앞에서 기다려.
트럭이 내려와도 피하지 마.
네가 자리를 벗어나면 한서윤이 죽어.
네가 대신 죽으면 엄마와 아이는 살아.»
나는 편지를 읽고 태경을 바라봤다.
“이것 때문에 피하지 않은 거예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죽을 생각이었어요?”
“당신이 사진관 안에 있었으니까요.”
“편지 한 장을 믿고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고요?”
태경이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도 편지 한 장 때문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찾고 있잖습니까.”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이 들렸다.
재하는 태경의 상처를 확인한 뒤 자신의 셔츠 소매를 찢어 피가 나는 부위를 눌렀다.
“출혈이 심하지는 않아.”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트럭 운전자는?”
내 말에 재하가 사고 차량 쪽을 바라봤다.
운전석 문이 열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하가 조심스럽게 트럭에 다가갔다.
운전석과 조수석은 비어 있었다. 사람이 뛰어내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경사로 위쪽에는 바퀴가 미끄러진 자국만 길게 남아 있었다.
“빈 차야.”
“그럼 어떻게 움직인 거야?”
“누가 일부러 브레이크를 풀어놓은 것 같아.”
트럭의 계기판은 충격으로 깨져 있었다.
그런데 가운데에 달린 전자시계만은 선명하게 켜져 있었다.
오후 3시 47분.
사진관 안에서 발견한 갈색 시계와 같은 시간이었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태경은 들것에 실리기 전까지 검은 봉투를 놓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손에서 빼내려 하자 그가 힘을 주어 붙잡았다.
“서윤 씨에게 주세요.”
봉투 안에는 아직 다른 것이 남아 있었다.
나는 태경과 함께 구급차에 탔다. 재하도 따라오려 했지만 경찰이 사고 현장 진술을 위해 그를 붙잡았다.
구급차 문이 닫히기 전 재하가 내게 말했다.
“병원으로 갈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구급차가 출발하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차우진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도 연이어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관에서 나왔습니까?
박재하와 떨어져 있어요.
두 번째 편지에 적힌 아이는 믿으면 안 됩니다.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옆에 누운 태경이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차우진입니까?”
“어떻게 알았어요?”
“당신에게 그렇게 계속 연락할 사람은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다른 한 명은 재하고요?”
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구급대원이 그의 혈압을 확인하는 동안 나는 검은 봉투 안을 살폈다.
찢어진 편지 뒤에 즉석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지금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나.
여섯 살쯤 된 여자아이.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웃는 이태경.
배경은 작은 사진 스튜디오였다. 벽에는 아이의 돌사진과 가족사진이 가득 걸려 있었다.
사진 속 나는 태경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아이의 한 손은 내가 잡고 있었고 다른 손은 태경이 잡고 있었다.
누가 봐도 가족사진이었다.
“이게 뭐예요?”
사진을 본 태경이 천천히 눈을 떴다.
“두 달 전에 받았습니다.”
“우진 씨보다 먼저 편지를 받았어요?”
“네.”
“그런데 왜 말하지 않았어요?”
“사진이 매일 바뀌었으니까요.”
태경도 우진과 같은 말을 했다.
“처음에는 아이만 찍혀 있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아이 옆에 내가 나타났고, 며칠 뒤에는 서윤 씨가 나타났어요.”
“그때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이름은 몰랐습니다.”
“어제 결혼식장에서 나를 처음 본 게 아니었네요.”
“얼굴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 남자 모두 나를 처음 만난 척했다.
우진은 한 달 전부터 내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태경은 두 달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
재하는 7년 동안 내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편지에는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태경이 눈을 감았다.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 대신 죽으라는 편지까지 따랐잖아요.”
“그건 내 선택이었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데요?”
나는 즉석사진을 그의 앞에 들었다.
“이 아이 때문이에요?”
태경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이 아이도 봄이에요?”
그가 나를 바라봤다.
놀란 표정이 대답을 대신했다.
“맞군요.”
나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서윤.
이태경.
이봄.
우진과 함께하면 한봄이 태어난다.
재하와 함께하면 박봄이 태어난다.
태경과 함께하면 이봄이 태어난다.
서로 다른 세 아이가 모두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태경 씨가 지키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 이 아이였어요?”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처음 받은 사진에는 아이가 두 명이었습니다.”
“두 명이요?”
“봄이와 다른 아이가 함께 서 있었어요.”
“다른 아이는 누군데요?”
“내 동생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아이 사진에 동생이 있었다고요?”
“지금의 내 동생이 아닙니다.”
태경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미래에서 다시 태어난 내 동생이었어요.”
그의 동생 이태희는 10년 전 화재로 사망했다. 당시 열두 살이었다.
태경이 사진작가가 된 것도 동생 때문이었다. 세상에 남은 사진이 증명사진 한 장뿐이어서,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잡았다고 했다.
“처음 도착한 편지에는 봄이를 태어나게 하면 내 동생도 다시 돌아온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을 믿었어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편지에 동생과 나만 아는 말이 적혀 있었어요.”
“무슨 말인데요?”
태경은 잠시 망설였다.
“불이 나던 날, 동생이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빠가 사진을 찍어주면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태경은 사진을 없애라는 편지를 받고도 곧바로 행동하지 못했다.
사진을 없애면 한 아이가 사라지고, 남겨두면 다른 아이가 사라진다.
결국 자정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사이 샹들리에 사고와 아파트 침입이 벌어졌고, 미래가 계속 달라졌다.
“그럼 지금 사진에는 왜 동생이 없어요?”
“어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태경은 힘겹게 손을 들어 사진 속 빈 공간을 가리켰다.
나와 아이 사이가 어색할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누군가 한 명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가 지워진 것처럼 보였다.
“박재하가 돌아온 뒤부터 동생이 사라졌습니다.”
구급차가 병원에 도착했다.
검사 결과 태경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머리를 세 바늘 꿰매야 했지만 뇌에는 이상이 없었다.
처치를 마치고 병실로 옮겨졌을 때 재하가 도착했다.
그의 팔에는 깨진 유리에 베인 상처가 있었다.
재하는 침대 옆에 앉은 태경을 바라본 뒤 내 상태부터 확인했다.
“다친 데 없어?”
“응.”
“왜 밖으로 뛰어나왔어?”
“태경 씨가 죽을 수도 있었어.”
“네가 대신 다칠 수도 있었어.”
“그럼 보고만 있어?”
“적어도 나랑 같이 움직였어야지.”
재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태경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윤 씨한테 화내지 마십시오.”
재하가 그를 돌아봤다.
“당신은 빠져.”
“당신이 문을 빨리 열었으면 서윤 씨가 직접 나오지 않아도 됐습니다.”
“죽으라는 편지를 믿고 길 한가운데 서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그만해.”
나는 태경의 즉석사진을 재하에게 보여줬다.
“태경 씨도 미래의 사진을 받았어.”
재하의 표정이 굳었다.
“이 아이도 내 딸이래.”
“무슨 말이야?”
“이름은 이봄.”
재하가 사진과 나를 번갈아 봤다.
“박봄은?”
“사진에서 사라졌어.”
가방에서 꺼낸 사진에는 다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박봄의 얼굴이 흐려지고 있었다.
대신 태경의 즉석사진 속 이봄이 선명해졌다.
미래는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에 따라 계속 움직였다.
재하와 단둘이 있을 때는 박봄이 나타났다.
태경이 나를 구한 뒤에는 이봄이 나타났다.
내 감정이 아니라 행동만으로도 아이가 바뀌고 있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차우진이 들어왔다.
그는 나와 재하, 침대 위의 태경을 차례로 바라봤다.
“두 번째 편지는 어디 있습니까?”
“왜요?”
“없애야 합니다.”
우진이 내 손에 들린 편지를 빼앗으려 했다.
재하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또 뭘 숨기고 있는데?”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은 봄이가 아닙니다.”
“사진 속 아이 이름이 바뀌었어.”
“그래서 가짜라는 겁니다.”
태경이 침대 옆 서랍에서 자신의 사진을 꺼냈다.
“그럼 이것도 가짜입니까?”
우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사진 속 이봄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본 적 있어요?”
내 질문에 우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요.”
“한 번 있습니다.”
“어디서요?”
“내가 받은 사진에서 봤습니다.”
우진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그가 한 달 전 촬영해둔 즉석사진이 있었다.
정원에 서 있는 나와 우진, 어린 한봄.
그런데 사진 오른쪽 구석에 다른 아이가 서 있었다.
얼굴은 빛에 가려졌지만 목에 작은 은색 시계가 걸려 있었다.
박봄의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은 시계였다.
사진 왼쪽 끝에는 카메라를 든 아이의 손이 보였다.
이봄이었다.
서로 다른 미래에서 태어나야 할 세 아이가 한 장의 사진 안에 함께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요?”
우진이 사진을 확대했다.
세 아이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사진 아래쪽에는 처음 보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세 아이 중 진짜 딸은 한 명뿐이다.
글자를 읽는 순간 세 사람의 휴대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재하와 우진, 태경에게 같은 사진이 도착했다.
발신번호는 존재하지 않는 번호였다.
사진 속에는 어두운 방에 갇힌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한봄.
박봄.
이봄.
세 아이의 얼굴은 서로 달랐지만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들 뒤에는 오후 3시 47분을 가리키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었다.
사진 아래에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아빠가 될 사람은 오늘 자정까지 한서윤을 데려오세요.
두 명이 오면 아이 둘이 사라집니다.
세 명이 모두 오면 한서윤이 죽습니다.
메시지 아래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7년 전,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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