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by아리김

어렸을 때, 한 영화를 보고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이란의 거장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였다.

실제로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담담히 비추는 영화였다.

무너진 집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어지는 일상.

극적인 사건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지루할 만큼 삶을 있는 그대로 따라간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람들이 힘을 모아 송신탑을 세우고, 마침내 텔레비전이 켜진다.

아주 짧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폐허보다 더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그리고 제목처럼, 삶은 계속된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그 제목을 여러 번 떠올리게 되었다.


이십 대,
취업이 좀처럼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낮에 혼자 방 안에 앉아 삶을 포기하는 것까지 생각하며 한참을 울고 있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강아지가 계속 방문을 긁기 시작했다.

열어 달라고.


삼십 분이 넘도록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문을 열었다.

강아지를 꼭 안고 한참을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그 아이는 나를 살려 준 것이었다.


그리고 삼십 대 초반,

가까스로 취업한 회사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우리 회사 건물은 꽤 높은 편이었는데,

갑자기 건물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람이었다.


창밖에는
아니나 다를까 한 젊은 여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놀란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옆의 과장님이 창 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건데."


그 말은 그날 이후로도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정말 그렇다.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내일 갑자기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기다리던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어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오늘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삶은 참 신기하다.

폐허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어느 날 문득 사랑이 찾아오고, 희망이 생겨난다.


그 전날까지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조차
믿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문득 그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살아 보자.


어쩌면 내일은,

오늘의 내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희망이
조용하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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