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생각만 해도 설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단어다.
오래전부터 나는 'Sunday', 'Holiday' 같은 단어들을 좋아했다. 그 단어들에는 어쩐지 느긋한 햇살과 자유로운 오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여백.
그것은 태어나서 스무 해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하나의 로망이었다.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고, 또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 그렇게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나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비로소 여유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마치 인생은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듯이.
때로는 그런 태도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핀잔을 듣거나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인생다운 인생을 발견한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좋은 성적, 좋은 성과, 돈 벌기.
그런데 그렇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달려가는 동안 정작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누리는 일은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신께서 우리에게 욕심을 비우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면, 그에 못지않게 우선 삶을 충분히 누리고 느낄 여유도 소중히 여기시지 않을까.
햇살을 즐기고, 바람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
물론 인생의 모든 시간을 휴식으로 채울 수는 없다.
해야 할 일이 있고, 바카라임져야 할 몫이 있으며, 때로는 원하지 않는 일도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휴식이 필요하다.
삶의 어느 시기에 충분한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일상 사이사이에 작은 쉼표라도 찍어두고 싶다.
그리고 정말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일상의 공간을 잠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림 : 아리김>
그럴 때 떠오르는 곳이 있다.
휴양지.
그곳은 내게 꿈의 장소다.
멀리 떨어진 열대의 섬이나 고급 리조트여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마음껏 쉴 수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휴양지가 된다.
그래서 주말마다 찾아가는 캠핑장도 내게는 일종의 휴양지다.
도끼로 장작을 쪼개고, 잘게 만든 나무에 불을 붙인다. 이윽고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면 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는다.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한참 동안 불꽃이 춤추는 모습을 바라본다.
숲에서는 바람이 불어오고, 나뭇잎이 사각거린다.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예전에는 답답한 마음을 견디기 어려운 날이면 훌쩍 춘천으로 떠나기도 했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호텔을 잡고, 창밖으로 펼쳐진 춘천의 풍경을 바라보며 쉬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밖으로 나가 닭갈비를 한 판 해치웠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의 내게는 춘천의 풍경이 내다보이는 작은 호텔 방이 더없이 훌륭한 휴양지였다.
나는 집에도 그런 분위기를 들여놓고 싶었다.
그래서 거실장과 의자는 라탄 소재로 고르고, 길쭉한 아레카야자 같은 화분들을 들여놓았다.
집 안에서도 어딘가 먼 휴양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조금 웃기기도 하다.
휴양지를 찾아 멀리 떠나고 싶어 하면서, 정작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집까지 휴양지처럼 꾸며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좋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아무것도 해내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괜찮은 곳.
그저 내가 편안히 쉬며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곳.
내가 그토록 꿈꾸던 휴양지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그런 시간과 마음의 상태인지도 모르리라.
그렇다고 아름다운 휴양지로 떠나는 꿈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또 낯선 바다 앞에 앉아 아무 계획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고 싶다. 햇볕이 따뜻하면 조금 더 앉아 있고, 배가 고프면 느릿하게 일어나 밥을 먹고,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어디론가 산바카라을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라탄 의자에 몸을 기대고 커피 한 잔을 마시겠지. 창가의 아레카야자 잎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언제나 휴일을 기다렸다.
한 주를 열심히 살아내야 비로소 찾아오는 자유로운 하루.
하지만 이제는 일요일만 기다리며 살고 싶지 않다.
화요일에도, 목요일에도, 때로는 아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오후에도 나만의 작은 휴양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달력의 휴일뿐 아니라, 내 삶에도 여백을 남겨두고 싶은 것이다.
그 여백에 햇살이 들고, 바람이 머물고, 가끔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