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
차마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인정하기 어려운 나의 약점,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에게조차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숨기며 살아간다.
어쩌면 숨김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골라 내놓는 것이다.
하지만 신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난다.
내가 품고 있는 상처도, 오래도록 후회해 온 선택도,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던 모습도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신은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끌어안는다.
내가 조금 더 마음을 열수록, 신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받아들인다.
마치 햇살이 잘 가꾸어진 꽃밭에만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흙과 거친 돌멩이 위에도 아낌없이 쏟아지는 것처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혹시 인생을 총체적으로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
지나온 선택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이루지 못한 것들을 헤아리며 스스로를 바카라망한다.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크게 보이고, 가진 것보다 부족한 것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어떤 날에는 오래전의 작은 실수 하나가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도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물러, 그때 왜 그랬을까, 조금 더 현명할 수는 없었을까 하고 묻는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럴 때 나를 바라보는 신은 얼마나 슬플까.
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스스로를 못마땅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 아리김>
나는 지금 서울의 한 캠핑장에 앉아 있다.
눈앞에는 너른 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끝에는 하늘이 맞닿아 있다. 오후의 햇살은 서서히 기울어 노오란 빛을 띠고, 저 멀리 하늘에는 노을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풀들이 가볍게 흔들린다. 피부에는 낮 동안 머물렀던 햇살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
나는 그 빛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본다. 따뜻한 빛이 얼굴에 내려앉고, 내 몸 뒤로는 길고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을 햇빛 아래에 내놓고 싶다고.
그동안 감춰왔던 나약함과 부끄러운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빛을 쬐어주고 싶다.
어둠 속에서는 그토록 두렵고 커 보이던 그림자도, 환한 빛 아래에서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굳이 그것을 지우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그 역시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일부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외면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나는 완벽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고,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약함이 내 존재의 가치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돌아보고,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고치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미워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독여주고 싶다. 그동안 충분히 듣지 못했던 격려의 말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건네주고 싶다.
이윽고 해는 조금씩 더 낮아진다.
평원 위로 노을빛이 부드럽게 번진다. 하늘의 푸른빛과 따스한 주황빛이 서로 스며들어, 어느 하나의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나는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무런 꾸밈 없이 그저 하늘 아래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좋다.
하늘은 내게 무엇을 이루었느냐고 묻지 않고, 햇살은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냐에 따라 온기를 달리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따뜻히 비추어 준다.
그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긍정과 자존이 자라나고 사랑과 행복도 조금씩 마음에 깃드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나를 평가하기보다 이해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쓰고 싶다.
더 잘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로서 조금 더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신이 나를 사랑하듯, 나 역시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저물어가는 햇살 아래, 나의 빛뿐 아니라 긴 그림자까지도.
그 모든 나를 따뜻하게 끌어안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