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어제는 좋았던 것이 오늘은 싫어지기도 하고, 한때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는 영원할 것 같았던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생각이 어느새 마음 깊숙이 자리 잡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흔들리던 마음이 하나의 단단한 신념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 같은 생각을 여러 번 되짚고,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며, 때로는 다시 예전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계절도 그렇다.
가을은 조금씩 겨울을 향해 가고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지고, 햇살의 온기가 서서히 옅어진다.
아직은 가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하루하루 겨울의 기운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한낮에는 여전히 따뜻한 햇살이 비추다가도 해가 기울면 금세 공기가 차가워진다.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잎을 떨구고, 길 위에는 낙엽이 조금씩 쌓여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세상은 온통 겨울이 되어 있겠지.
가을이 하루아침에 겨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변화와 시간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쌓여 마침내 하나의 계절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도, 우리의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변화에는 저마다의 원리와 순리가 있는 것 같다.
꽃이 피는 데에도 때가 있고, 열매가 맺히는 데에도 때가 있다. 봄에는 싹이 트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자라며, 가을에는 결실을 맺고, 겨울에는 잠시 성장을 멈춘 듯 고요해진다.
그 어느 계절도 불필요하지 않다.
겨울이 있다고 해서 나무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아니며, 당장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생명은 저마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무언가가 무르익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열매를 억지로 익힐 수 없듯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충분한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없이 변해 왔다.
한때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미처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오히려 소중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더 많이 웃고, 먼저 다가가고, 맡은 일에도 늘 열성을 다하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 말도 하기 싫어 소파에 길게 눕곤 했다. 고양이들이 하나둘 다가와 곁에 몸을 기대면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 고요한 시간에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나 밝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내 마음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가 조금씩 더 중요해졌다. 이제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습관처럼 다시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하고, 때로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발견하고 돌아보는 시간이 쌓이면서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 변화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살아온 시간과 겪어온 일들, 기쁨과 아픔, 수많은 생각과 깨달음이 조금씩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이다.
또한 나는 순리를 거스르려 할 때 삶이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봄이 그리워도 겨울을 건너뛸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아직 떠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이미 떠나가는 것을 붙잡으려 할 때 우리는 괴로워진다.
빨리 변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재촉하기도 하고, 반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붙들고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달라지려 하면 오히려 더 흔들릴 때가 있다.
아마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변화 그 자체라기 보다는, 변화를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일 것이다.
물론 모든 변화를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노력하며 삶을 만들어 가야 할 때가 있다. 자연의 흐름을 이해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부가 계절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정성껏 작물을 돌보듯이 우리도 삶을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정성을 다하더라도 열매가 맺히는 순간까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에는 시간이 완성해 주어야 하는 몫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싶다.
모든 것을 내 뜻대로 이루려 애쓰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때와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멈추어 있지도 않으면서.
때로는 기꺼이 변화하고, 때로는 고요히 기다리면서.
가을이 겨울을 맞이하듯, 겨울이 다시 봄을 준비하듯, 나에게 찾아오는 변화도 자연스럽게 맞이하고 싶다.
무르익는 것은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무르익도록.
변하는 것은 순리대로 변하도록.
내 생각과 마음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숙해 가기를 바란다.
<그림 : 아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