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빨간 위로 한 접시

by아리김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소울푸드가 있을 것이다.
지치고 힘든 날,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한 날,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세상 모든 것이 못마땅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음식.
그 음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든든해지는 그런 음식 말이다.

내게는 그것이 떡볶이다.
매콤하게 혀끝을 찔러오는 맛으로 다가와,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씹히다가, 마지막에는 달큰한 여운을 남기며 목구멍을 넘어가 주는 음식.
떡볶이.

그 매콤함은 내 안에 쌓인 답답함이나 슬픔을 풀어주고, 말랑한 식감은 뾰족해진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그리고 매운맛 사이로 은근하게 스며드는 달콤함은 어느새 내 마음을 사르르 녹여준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음식이다.
분명 입안에서는 불이 나는데,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진다. 혀는 얼얼한데 기분은 좋아지고,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도 자꾸만 다음 떡을 집어 먹게 된다.
맵다고 호호거리면서도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한다. 오히려 그 얼얼함이 좋아 한 입을 더 먹고, 다시 달콤한 양념을 입안 가득 머금는다.

세상에는 떡볶이보다 비싸고 근사한 음식도 많다.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구수한 된장찌개도 있고, 지글지글 구워 먹는 고기도 있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나 정성껏 차려진 한 상도 얼마든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유독 떡볶이가 좋다.
일단 간편하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떡볶이 가게에 들러 한 봉지 사 오면 그만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기분 좋게 사 올 수 있고, 집에서 굽거나 끓이거나 복잡하게 요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봉지를 풀고, 빨간 양념이 듬뿍 묻은 떡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면 된다.

아, 맛있다.
이렇게 간단하게 마음이 기뻐질 수 있다니.
하루 종일 마음을 어지럽히던 일들이 잠시 뒤로 물러난다. 조금 전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도,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마음도 그 순간만큼은 희미해진다. 다시 일상을 살아갈 작은 기운을 건네준다.


<그림 : 아리김>


무엇보다 떡볶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안성맞춤인 음식이다.
화끈한 매콤함으로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어 놓고는, 이내 달콤한 맛으로 슬그머니 달래준다.
마치 잔뜩 성이 난 사람을 실컷 떠들게 한 다음,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 주는 것처럼.
그렇게 매운맛으로 속을 후련하게 하고, 달콤한 맛으로 다시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열치열이 따로 없다.

누군가는 내 사주에 불이 많다고 했는데, 굳이 사주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는 원래 열정적인 사람이다. 감정도 풍부하고, 좋아하는 것에는 마음을 듬뿍 쏟는 편이다.
때로는 작은 일도 섬세하게 느끼지만, 또 그만큼 사소한 즐거움에도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이토록 빨갛고 화끈하면서도 말랑하고 달큰한 음식이라니.

어쩌면 떡볶이는 내 성격과도 꽤 닮아 있는지 모르겠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고, 화끈하면서도 달콤하다.
서로 다른 맛들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꼭 사람의 마음 같다.


그래서일까.
떡볶이!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신이 난다.
나는 떡볶이라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어제 먹었어도 오늘 또 먹고 싶고, 오늘 먹었다고 해서 내일 먹지 못할 이유도 없다.



가끔은 떡볶이를 먹으면서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분명하다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라고.


어떤 날에는 무엇을 해야 기분이 나아질지조차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무엇을 먹고 싶은지도 모르겠는 날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음식 하나가 있다.

살면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하나쯤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것도 거창한 준비나 큰돈 없이, 그저 동네 가게에 들르는 것만으로 만날 수 있는 행복이라니.

우리는 때때로 행복이 대단한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멋진 여행을 떠나거나, 값비싼 것을 갖거나, 오랫동안 바라던 일을 이루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삶을 견디게 해주는 행복은 의외로 작고 평범한 곳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햇살 한 줌, 좋아하는 노래 한 곡, 그리고 매콤달콤한 떡볶이 한 접시처럼.

세상살이가 고단하고, 사람들이 야속하고, 때로는 내 마음마저 나를 힘들게 하는 날에도 나는 알고 있다.
빨간 양념에 푹 잠긴 말랑한 떡 몇 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 앞에서 나는 잠시 세상일을 잊고, 오롯이 맛있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한 입, 또 한 입 먹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조금씩 여유가 생긴다.

오늘 하루가 힘들었어도 괜찮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하루가 있을 테니까.
지금은 그저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쉬면 된다.

떡볶이는 이렇게 내게 참 오래되고도 따뜻한 위로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충고하지도 않고, 그저 내가 찾아가면 언제나 익숙한 맛으로 반겨주는 친구.
지치고 고된 세상살이에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매콤하지만 다정한 친구 하나가 있어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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