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환불이 안 되나요: N회차 이직과 비전공자의 발버둥
일단 회사를 차렸다.
병원을 그만 두고 쉬던 때였다. 처음부터 창업이란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직원 400명의 대형 병원의 총괄본부장까지 지냈으니,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면 업계에서 알아서 모셔갈 줄 알았다.
"노아 본부장이 병원을 나왔대."이 소문 한 마디면 사방에서 러브콜이 쏟아질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휴대폰은 고요했다. 러브콜은 커녕 면접 기회조차 없었다. 원무 행정 시장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폐쇄적인 '그들만의 카르텔'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신규 병원 공고를 낼 때 이미 면접관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원무과장이었고, 자리가 나더라도 전임자가 비밀리에 낙점해 둔 제 식구를 밀어 넣고 나가는 게 관행이었다. 나 역시 전임자의 추천으로 그 자리를 꿰찼고, 떠날 때 내 사람을 앉혀두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 잔인한 먹이사슬의 법칙을 백수가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백수의 공포가 목을 조여올 무렵, 병원 홍보팀에 있던 후배 녀석이 퇴사했다는 연락이 왔다. 집앞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나는 꼰대처럼 온갖 훈수를 쏟아냈다.
"프리랜서라도 집에서 일하지 마라. 사업자 내고 일상과 분리해라. 네가 쳐낼 수 없는 일은 욕심내지 마라." 그런 뻔한 잔소리가 꽤 그럴듯하게 들렸던 모양인지, 녀석이 눈을 반짝이며 제안을 던졌다.
"형,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차릴까? 형 취업할 때까지만 나 좀 도와줘."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 만에 간판을 올렸다. 나를 포함해 같은 병원 출신 3명이 뭉친 초미니 스타트업이었다.
2015년 무렵, '바이럴 마케팅'은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집기라고는 집에서 쓰던 낡은 컴퓨터 세 대가 전부였고, 사무실에서 가장 비싼 가구는 챔피언 탁구대였다. 원자재도, 재고도 없는 순수 지식 서비스업. 식당이나 업체와 계약을 하고 블로그에 글을 띄워주면 통장에 현금이 꽂혔다. 셋이서 수입을 삼등분해 가져간 첫 달 월급이 각각 4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웬만한 대기업 부럽지 않은 돈이었다.
탁구 칠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감이 쏟아지자 직원을 4명이나 새로 뽑았다. 우리 월급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회사를 키우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마케팅 덕분에 손님이 줄을 선다"는 클라이언트의 문자를 받을 때마다 어깨가 으쓱했다. 병원에서 겪었던 온갖 잡무와 고객 응대, 견적서 작성, PC 수리 능력이 고스란히 밑거름이 되어 빛을 발했다.
“이렇게 쉽고 재밌게 돈을 벌 수 있는데, 나는 왜 그동안 남 밑에서 그 고생을 했을까?”
지난 날의 내가 어리석고 한심해 보였다. 하루 하루가 행복했고, 앞으로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직원들과 시간이 남을 때마다 여유롭게 탁구를 즐겼다. 경쾌한 핑퐁 소리가 회사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점심시간에는 다 같이 맛있는 것을 즐겼고, 커피는 항상 내가 쐈다. 우리는 완벽한 성공의 궤도에 올라타 있었다.
그러나, 재앙은 예고 없이 오는 법이다.
어느 날 아침, 포털 검색창 최상단에 붙박이처럼 걸려 있던 우리 글들이 일제히 증발했다. 하나가 사라지더니, 관리하던 수십 개의 포스팅이 모조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거래처에서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수화기에 불이 났다. 재앙의 원인은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로직) 대격변'이었다.
사실 우리는 네이버에 빌붙어 있는 기생충 같은 마케터였다. 네이버도 사실 광고대행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런 네이버에게는 우리가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터다. 네이버가 판을 뒤엎는 순간, 우리가 자랑하던 마케팅 기술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이것을 네이버에 따질 수도 없다. 우리는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짜 마케터였다.
당시 업계에서 네이버 로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글자 수를 맞추고, 사진의 메타데이터를 지우고, 와이파이를 껐다 켜며 모바일로 글을 쓰는 등 온갖 주먹구구식 꼼수로 상단 노출을 시도하던 시절이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도 모른다. 그냥 하나 얻어 걸리면, 그거면 됐다! 그것이 전략이었다.
진짜 파국은 검색 화면의 구조 자체가 바뀌면서 찾아왔다. 네이버가 블로그 글을 뒤로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돈을 낸 대기업의 유료 '파워링크'와 '플레이스(지도)' 영역을 꽂아 넣은 것이다.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겨우 보이는 블로그 글에 선뜻 수백만 원을 쥐여줄 광고주는 없었다. 거래처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때라도 다른 활로를 찾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우리는 새로운 활로를 찾는 대신, 블로그를 사들이는 최악의 수를 두었다. 개당 30만 원 하던 상위 노출용 아이디가 수요 폭증으로 200만 원까지 치솟았다. 피 같은 돈 200만 원을 주고 산 계정은 알고리즘의 칼날에 사흘도 못 가 죽어버렸다. 초기 투자비와 유지비가 없었던 황금알을 낳던 회사는 순식간에 밑 빠진 독이 되었다.
직원들의 월급날은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우리셋은 각자의 통장을 털어 직원들의 4대 보험과 급여를 메우기 급급했다. 점차 통장 잔고가 마르니, 끈끈했던 동지애는 추악한 민낯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형이 그때 광고주한테 그렇게 말했다던데? 아니야?"
"내가 그 사진 쓰면 블로그 날아간다고 했잖아!”
웃음소리가 넘치던 사무실에는 짙은 침묵과 한숨만 감돌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며 바카라임 공방을 벌이기 바빴다.
그 처절한 몰락의 끝에서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인간의 호의와 회사의 동지애는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통장이 비어가는 순간, 회사는 가장 잔인한 생존의 전쟁터로 변한다. 그제야 병원 시절, 회의실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며 경영 혁신과 유지비 절감을 목 놓아 외치던 대표원장의 핏발 선 눈동자가 이해되었다.
월급을 받는 자는 내 노동의 대가만 신경 쓰면 되지만, 월급을 주는 자는 매달 남의 인생을 바카라임져야 하는 벼랑 끝의 공포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사업에는 자생력이 있어야 한다. 내 손으로 기초부터 단단하게 쌓아 올린 성벽이 있어야 외부의 파도로부터 회사를 지켜낼 수 있는 법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남의 땅, 타인의 플랫폼 위에 겉만 번지르르한 모래성을 지었을 뿐이었다. 사소한 알고리즘 변화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쓸려나갈 그 위태로운 모래성 안에서, 나는 위대한 성주라도 된 양 뽐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사업이 뭔지 하나도 모르는 철없는 초짜였다.
호기롭게 간판을 올렸던 그 마케팅 회사는, 나에게 때마다 월급이 들어오는 월급쟁이가 얼마나 평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를 가르쳐준 쓰라린 기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