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의 이름조차 잊고 살지는 않았는가?
엄마의 이름을 처음 낯설게 느낀 건 오래된 졸업앨범에서였다.
바카라장 아래 먼지가 쌓인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앨범이었다.
빛바랜 표지를 넘기자 비슷한 교복을 입은 얼굴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에게서 눈이 멈췄다.
엄마였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어색하게 다문 입술. 사진 속 엄마는 내가 아는 엄마와 닮았으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사진 아래 적힌 세 글자를 읽었다.
분명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서류를 작성하거나 누군가 엄마의 이름을 물을 때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 이름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나는 엄마의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엄마는 스물다섯에 결혼했고, 그해 나를 낳았다.
어릴 적에는 그 사실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스물다섯이라는 나이를 지나며 그 숫자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아직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조차 알아가는 나이에 엄마는 결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낳았다.
그 선택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해부터 내가 아는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엄마에게는 스물넷도, 스물셋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 시절의 엄마를 알지 못한다. 어떤 친구와 가까웠는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미래를 기다렸는지. 엄마의 지난 시간을 떠올리려 하면 내가 태어난 해에서 기억이 멈춘다.
엄마는 내 어린 시절의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어린 시절에는 내가 없었다.
앨범을 넘기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이때 뭐 하고 놀았어?”
엄마는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웃었다.
“그냥 친구들이랑 놀았지.”
“엄마도 친구들이랑 맨날 놀러 다녔어?”
“그럼. 나도 너처럼 놀았어.”
별일 아니라는 듯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나도 너처럼 놀았어.'
사진 속 엄마에게도 친구와 다투고 돌아오는 날이 있었을 것이다. 시험을 망쳐 속상했던 오후도,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던 밤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시절의 엄마가 실제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진 속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들이 한 사람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른다.
가족이 함께 무엇을 먹을지 정할 때면 엄마는 늘 나와 동생이 먹고 싶다는 음식에 맞춰주었다.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말했고, 엄마는 대개 무엇이든 괜찮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엄마에게도 유독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텐데. 문득 먹고 싶은 메뉴가 있고, 다른 것을 고르고 싶은 날도 있었을 텐데.
어쩌면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을지 모른다. 그 마음까지 내가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다.
다만 한 번쯤 물어볼 수는 있었다.
엄마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조차 몰랐다.
엄마는 늘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엄마의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취향이 아니라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는 엄마의 모습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
나를 걱정하고, 나를 돌보고,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엄마의 성격을 설명할 때조차 나는 대부분 엄마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라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내가 경험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에게도 내가 모르는 표정이 있을 것이다. 내 앞에서는 꺼내지 않은 이야기와 오래도록 마음에 남겨둔 기억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그런 것들을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내었을까.
그 질문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람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딸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누군가에게는 동료다. 같은 사람이라도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엄마라는 이름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태어난 뒤 엄마에게 새롭게 주어진 이름.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 이름이 엄마의 모든 시간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이전의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나는 엄마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았다. 엄마니까 내 마음을 알아줘야 하고, 엄마니까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작 엄마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는 사실은 자주 잊었다.
나에게는 처음인 하루가 엄마에게도 처음인 하루였을 것이다.
물론, 그날 이후 엄마의 모든 것이 달라 보인 것은 아니다.
엄마는 여전히 내게 밥을 먹었는지 물었고, 나는 가끔 엄마의 잔소리에 대꾸했다. 사소한 일로 의견이 부딪히기도 했다.
오래된 습관은 사진 한 장으로 쉽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가끔 엄마가 오래된 노래를 따라 부를 때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이 궁금해졌다. 텔레비전을 보며 웃을 때면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묻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엄마는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그전까지 엄마에게 했던 질문은 대부분 나를 위한 것이었다. 오늘 저녁은 무엇인지, 내 물건은 어디에 있는지, 언제 집에 돌아오는지.
엄마에게 묻는 말이었지만, 그 질문의 중심에는 늘 내가 있었다.
이번에는 엄마의 대답이 궁금했다.
오래된 졸업앨범을 다시 펼쳐본다.
사진 속에는 아직 스물다섯이 되지 않은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그때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 사람은 아직 나의 엄마가 아니었다.
사진 아래에는 세 글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평생 알고 지낸 이름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내가 어떤 얼굴로 태어날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게 될지, 자신을 얼마나 자주 부르게 될지도.
그때의 엄마에게 나는 아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실이 조금 반가웠다.내가 모르는 엄마의 삶이, 그곳에 남아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