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 1
여기서부터가 Part 3이다.
앞선 챕터들이 유행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지금부터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항목별로 나눠, 옷장에 무엇을 채워 넣으면 되는지 구체적인 브랜드와 모델명으로 짚어보려 한다.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설득하기보다는, 당장 참고하고 검색해 볼 수 있는 실용적인 리스트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지금 당장 필요한 항목만 골라 읽어도 좋다.
수많은 외투 중 단 두 가지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네이비 블레이저와 야상을 선택하겠다.
네이비 블레이저
네이비 블레이저는 바지와 짝을 맞추지 않고 단독으로 입는 네이비 재킷이다. 원래 영국 해군이나 조정부 선수들이 입던 유니폼에서 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 봐도 각 잡힌 어깨선에 살짝 제복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 미국 영화에서 요트 정박장이나 컨트리클럽 씬에 나오는, 네이비 블레이저에 카키 치노팬츠, 보트슈즈를 신은 그 특유의 룩도 이 계보에서 나온 것이다. 캐주얼은 물론이고, 평상시보다 조금 갖춰 입고 싶을 때 이것만 걸쳐줘도 정돈된 무드가 난다.
금장 버튼 블레이저는 영국의 클럽 문화와 미국 아이비스타일에 뿌리를 둔, 네이비 블레이저의 가장 전통적인 형태다. 원단과 단추 색을 맞춘 일반 네이비 재킷이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면, 금장 버튼은 특유의 금빛 포인트로 한층 클래식하고 세련된 멋을 더해준다.
첫 네이비 블레이저라면 단추가 튀지 않는 쪽을 권한다. 출근복으로도, 주말의 청바지 차림에도 무리 없이 어울려 활용 범위가 훨씬 넓기 때문이다. 금장 버튼은 존재감이 강한 만큼 입을 수 있는 자리가 좁고, 자칫 제복이나 교복처럼 보일 수 있다. 금장은 이미 기본 블레이저를 갖춘 뒤 두 번째 선택으로 들이는 것이 좋다.
어떤 단추를 고르든 네이비 블레이저의 본질은 같다. 위아래를 맞춰 입는 정장 상의의 딱딱함을 덜어내면서도 단정함은 그대로 지켜준다는 점이다. '차려입은 듯 편안한 옷차림'의 매력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려주는 아이템이 바로 네이비 블레이저인 이유다.
블레이저 안에는 옥스퍼드 셔츠가 가장 좋다. 색은 흰색과 하늘색, 그리고 이 두 색이 옅게 섞인 스트라이프 정도면 충분하다. 좀 더 스포티하게 보이고 싶다면 라운드 티나 얇은 니트를 입어도 된다. 색상은 심플한 무지로 가는 편이 낫다. 네이비 색이 겉에서 눌러주는데, 안에서 볼드한 체크나 튀는 디자인이 섞인 이너를 입으면 언밸런스해진다. 바지는 워싱된 청바지나 치노팬츠 위에 걸치면 되고, 여기서 영역을 조금 더 넓히면 그레이 슬랙스에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또한 넥타이를 곁들이면 웬만큼 포멀 한 자리에도 어울리니, 활용도가 매우 높은 옷이다. 블레이저에는 사선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매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네이비 단색 넥타이를 추천한다. 흰색이든 하늘색이든 스트라이프든 어떤 셔츠와도 무난하게 어울리고, 블레이저뿐 아니라 정장에도 그대로 맬 수 있어 하나만 있어도 쓸 곳이 많기 때문이다.
가성비로는 유니클로 네이비 블레이저가 무난하다. 원단의 한계는 있지만, 하의를 완전히 다른 색상과 소재(그레이 슬랙스, 카키 치노)로 매치하기 때문에 크게 티 나진 않는다. 조금 더 좋은 걸 원한다면 J프레스나 브룩스브라더스 쪽을 보자. 둘 다 이 스타일의 근본인 브랜드라 클래식한 비율을 가장 잘 뽑아내고, 오래 입어도 유행을 타지 않는다.
어떤 브랜드를 사든 3 버튼 아니면 2 버튼 싱글이 기본이다. 3 버튼이라면 가운데 단추만 잠그고, 2 버튼이라면 위 단추만 잠근다. 맨 아래 단추는 애초에 잠그라고 달아둔 게 아니니 늘 풀어둔다. 이 순서만 지켜도 어깨부터 허리로 떨어지는 라인이 훨씬 깔끔하게 잡힌다.
야상
야상은 원래 실제 군인들이 입던 옷에서 시작됐다. 보통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 오리지널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간 것과, 유행을 살짝 가미해서 형태를 바꿔 나온 것이다. 유행을 섞은 쪽은 아무래도 오래 입기 어렵다. 가급적 오리지널의 형태를 유지한 모델이 낫고, 하나를 오래 입어서 자연스럽게 해지면 그게 오히려 더 멋스러워진다.
단정함의 영토에 블레이저가 있다면, 편안함의 영토에는 야상이 있다. 야상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거친 남성미'가 아니라 압도적인 '범용성'에 있다. 안에 니트나 셔츠를 받치고 슬랙스를 입어도 어색하지 않고, 후드나 맨투맨 위에 걸쳐도 자연스럽다. 지퍼, 단추 그리고 허리끈으로 여밈을 조절할 수 있어서, 그날 기온에 따라 안에 껴입는 옷의 두께를 바꿔가며 초봄부터 초겨울까지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튼튼한 원단이라 웬만한 마찰에는 쉽게 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오래 입을수록 팔꿈치나 밑단 같은 자리마다 자연스럽게 색이 바래고 구겨지면서, 그 흔적 자체가 멋이 된다. 주머니가 넉넉한 것도 실용적이다. 이런 이유로 야상 한 벌만 제대로 골라두면, 봄가을 겉옷 걱정은 사실상 끝난다고 봐도 된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흔히 떠올리는 '야상'은 대체로 M65 타입일 것이고, 실제로 이 타입을 가장 많이 입는다. 또한 정글 퍼티그 재킷이나 흔히 개파카라고 부르는 M51 타입도 매우 유용하다. 정글 퍼티그 재킷은 베트남전에서 시작된 옷이라 초여름이나 늦여름 같은 간절기에 활용하기 좋고, M51은 기장이 길고 넉넉하게 입는 옷이라 겨울에 아무 복장 위에나 툭 걸치기 좋다. 실제로 영국의 모드족이 스쿠터를 타면서 잘 차려입은 정장을 보호하려고 그 위에 덧입으면서 유명해진 옷이기도 하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진짜 오리지널을 구하는 것이다. 실제 그 시절에 만들어진 미군의 빈티지 밀리터리 재킷은, 아무리 잘 만든 복각도 따라가기 힘든 세월의 질감과 정통성을 갖고 있다. 이런 오리지널은 동묘 시장이나 밀리터리 전문 구제 매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로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다만 사이즈나 상태가 들쭉날쭉해서 발품을 팔아야 하고, 마음에 드는 걸 만나려면 운도 좀 따라야 한다.
오리지널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이 영역에서는 좀 비싸더라도 밀리터리 복각 브랜드에서 사는 게 좋다. 그중 최고는 일본의 리얼 맥코이즈고, 가성비로 가려면 중국의 브론슨을 추천한다. 그 중간 가격대로는 YMCLKY, 아웃스탠딩도 참고해 볼 만하다.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까운 한 벌을 골라 죽을 때까지 입는다는 마음으로 오래 입으면, 옷도 사람도 더 멋스러운 상태로 간다.
정리하면, 외투는 네이비 블레이저와 오리지널 형태 그대로의 야상, 이 두 벌이면 된다. 블레이저는 슬랙스와 입으면 출근복, 청바지와 입으면 주말 차림이 되고, 야상은 티셔츠부터 니트까지 무엇 위에 걸쳐도 무난하다. 격식 있는 날은 블레이저, 편한 날은 야상. 이 둘이면 웬만한 자리는 다 커버된다. 여러 벌을 갖추기보다, 제대로 된 한두 벌을 골라 오래 입는 편이 결국 더 멋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