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5
로고 플레이의 향연이 한바탕 지나가고 나니, 이번엔 그 정반대의 극단인 올드머니 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올드머니 룩이란 이름 그대로, 대대로 부와 교양을 이어온 사람들이 입어온 듯한 절제된 스타일을 뜻한다. 사실 올드머니 룩도 결국 한때의 유행이다. 다만 이 유행이 가리키는 방향만큼은 오래 가져갈 만하다.
올드머니 룩이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예전에 어느 업무 미팅에서 만났던 사람이 떠올랐다. 유독 옷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미팅이 끝나고 나서 그 사람이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떠올리려 하면 기억이 안 났다. 로고도, 특이한 디자인도, 딱히 시선을 끄는 포인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검은 니트에 울 코트 그리고 베이지 팬츠, 그게 다였다. 그런데도 그날 그 자리에서 제일 정돈되고 여유 있어 보인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나는 이게 올드머니 룩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 스타일에서 가져올 만한 건 '부'라는 배경이 아니라 '절제된 여유'다. 올드머니 룩은 시선을 끄는 요란한 로고를 거부한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특정 브랜드의 이름표를 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유행을 타지 않는 단정한 실루엣, 눈이 편안한 차분한 색감(블랙, 네이비, 베이지, 크림, 차콜), 그리고 몸을 정갈하게 감싸는 소재의 담백함에 집중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로로피아나, 제냐 같은 브랜드 이름이 늘 함께 따라다녔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 유행이 소비했던 가격대가 아니다. 한 벌에 몇 백만 원씩 하는 것들을 사 입자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비싼 브랜드에 집착하는 순간 그건 또 다른 형태의 과시가 되어버린다. 남길 것은 비싼 영수증이 아니라 '가성비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안목'이다.
소재가 격을 가른다
나이가 들수록 안목의 핵심은 결국 소재로 모이는 것 같다. 20대에는 핏만 잘 잡아도 태가 나지만, 30대를 넘어가면 같은 디자인이라도 소재가 좋은지 싸구려인지가 옷의 격을 가른다. 과하지 않은 기본 핏에 좋은 소재를 쓴 옷 한 벌이, 화려한 디자인의 저가 옷 여러 벌보다 훨씬 오래, 훨씬 우아하게 남는다.
그렇다고 굳이 비싼 하이엔드 브랜드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같은 SPA라도 COS나 마시모 두띠처럼 한 단계 위 라인으로만 올라가도 소재가 주는 안락함이 확연히 다르다. 유니클로나 자라보다 가격은 조금 높지만, 그만큼 원단과 만듦새에 더 공을 들인 브랜드들이다.
무엇보다 이런 브랜드는 가격 대비 소재가 유독 좋다. COS에서 10만 원대 니트를 하나 산다고 해보자. 그보다 비싼 다른 브랜드 니트를 뒤져봐도 소재에서 COS를 확실히 앞서는 걸 찾기는 쉽지 않다. 어설프게 더 비싼 브랜드를 기웃거리기보다, SPA 상위 라인에서 기본템을 잘 골라내는 쪽이 훨씬 남는 장사다.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로고가 없을 것, 촉감 좋은 소재일 것, 핏이 과하지 않을 것. COS의 무지 울 크루넥 스웨터가 딱 그런 옷이다. 로고 하나 없이 깨끗하고, 손에 닿는 느낌이 좋고, 몸을 따라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이 세 가지만 꼼꼼히 따져도 명품 로고를 두른 사람 못지않게 단단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난다. 무신사 랭킹을 보고 요란한 니트를 고르는 것보다 COS의 무지 니트가 훨씬 오래 손이 가는 이유다.
핏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과하게 펄럭이거나 몸에 딱 붙는 유행 핏 대신, 어깨선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바지 밑단이 신발을 살짝 덮는 정도면 된다. 거울 앞에서 뭔가 과해 보이면 거르고, 보기에도 몸에도 무리가 없는 걸 고르면 된다.
오래 입으려면
여기에 하나를 더 얹자면, 좋은 옷일수록 관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캐시미어 니트를 사도 세탁을 아무렇게나 하면 옷이 줄거나 목선이 늘어나 금세 망가진다. 니트는 손세탁이나 울 전용 코스로 빨고, 입은 날에는 바로 개어 넣기보다 하루쯤 바람을 쐬어 냄새와 습기를 날려주는 게 좋다. 가방끈이나 바카라상에 쓸리는 부위는 보풀이 잘 생기니 보풀 제거기를 하나 두면 좋다. 보관할 때는 옷걸이에 걸면 어깨가 늘어나니 개어 두는 편이 낫다.
코트나 재킷은 어깨가 넓은 옷걸이에 걸어 모양을 잡아주고, 바지는 상의와 한 옷걸이에 겹쳐 걸지 말고 바지용 옷걸이에 따로 걸어두면 무릎 주름이 한결 덜 남는다. 시즌이 끝나면 제대로 세탁해서 넣어두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몇 년씩 차이 난다.
니트 안에 받쳐 입는 이너티나 셔츠 같은 흰옷은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입은 옷을 빨래통에 며칠씩 쌓아두지 말고 되도록 빨리 빠는 게 먼저다. 목깃이나 소매 끝처럼 때가 잘 타는 곳은 빨기 전에 세제를 조금 묻혀 문질러두고, 색깔 옷과는 따로 빤다. 목깃이 누렇게 바랜 흰 셔츠는 아무리 좋은 옷이어도 단정한 인상을 단번에 깎아 먹는다. 흰옷이 새하얗다는 것만으로도, 옷을 아끼는 사람이라는 인상은 충분히 전해진다. 좋은 소재를 알아보는 안목 못지않게, 그 소재를 오래 지키는 습관이 결국 옷의 격을 만든다.
3040에게 멋은 얼마짜리 로고를 입었느냐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날 미팅에서 만난 그 사람처럼, 무슨 브랜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정돈된 인상만은 오래 남는 쪽이 진짜다. 그런 인상은 유행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좋은 옷을 알아보는 안목, 그리고 그 옷을 내 몸에 맞게 단정히 소화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화려한 간판 뒤에 숨지 않고 기본에 집중하는 것. 적은 비용으로 가장 오래가는 멋은 대체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