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 3
앞서 상의 편에서 셔츠까지 다뤘다. 이번엔 바지 차례다. 슬랙스는 정장 편에서 따로 다루고, 여기서는 캐주얼 바지인 치노팬츠와 청바지를 본다.
치노팬츠와 퍼티그 팬츠
캐주얼용 바지는 기본 카키색 치노팬츠부터 갖추자. 여기서 카키색은 밀리터리 그린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베이지라고 부르는 그 색이다. 어느 옷장에나 하나쯤 있을 법한 이름이지만, 은근히 각 잡힌 태가 남아 있어서 막 입어도 허술해 보이지 않는 바지다. 네이비나 블랙 계열은 슬랙스와 색이 겹치니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사도 된다. 핏은 슬랙스와 비슷하거나 살짝 여유 있는 정도가 좋고, 기장은 구두를 신었을 때 신발을 살짝 덮을 정도면 된다.
유니클로나 무신사 스탠다드에서 면 100%로 나온 스트레이트 핏이면 충분하다. 조금 더 제대로 된 걸 원한다면 버즈릭슨이나 토이즈맥코이 같은 일본 복각 브랜드의 치노팬츠를 보자. 오리지널 군복 스펙을 그대로 따르는 만큼 원단 밀도와 봉제가 확실히 다르다. 처음 손에 쥐어보면 묵직하고 촘촘한 원단에서 '최상급 면바지 원단은 이런 거구나' 하고 단번에 알게 된다. 입을수록 색이 자연스럽게 바래는 맛도 있다. 이 치노팬츠는 가끔 갖춰 입어야 할 자리에서 슬랙스 대신 입을 수 있고, 청남방에 네이비 블레이저를 매치하면 특히 안정적인 조합이 나온다.
여기에 올리브색 퍼티그 팬츠 하나를 더하면 조합이 한층 풍성해진다. 야상이 군복에서 온 상의라면, 퍼티그 팬츠는 같은 뿌리를 가진 바지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정글 지형에서 입던 작업복 바지가 그대로 넘어왔다는 얘기가 있어서, 주머니가 넉넉하고 활동성이 좋은 게 특징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 백사틴이라는 원단으로 나오는데, 앞서 말한 치노팬츠를 입는 자리라면 어디든 똑같이 대체해서 입을 수 있다. 특히 데님셔츠와 잘 어울린다. 둘 다 작업복에서 온 색이라 함께 두면 따로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데님셔츠의 푸른 기가 올리브의 칙칙함을 덜어줘 차림 전체가 한결 산뜻해 보인다. 가성비로는 무신사 스탠다드의 퍼티그 팬츠 중 올리브 색상이 좋고, 조금 더 좋은 걸 원하면 일본 브랜드 오어슬로우를 추천한다.
청바지, 생지냐 워싱이냐
청바지는 유행이 특히 빠른 아이템이다. 통이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는 식인데, 그 중간 정도를 선택하면 어느 쪽 유행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다.
색상은 물이 빠지지 않은 생지 데님과, 인위적으로 워싱을 넣은 워싱진 두 갈래로 나뉜다. 개인적으로는 생지를 좋아하는데, 새것처럼 물 빠짐없는 바지를 사서 입다 보면 내 체형에 맞게 자연스러운 워싱이 생기고, 그러면 정확히 '내 바지'가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 더 알아두면 좋은 게 셀비지 진이다. 옛날 방식의 좁은 직기로 짠 원단이라, 원단 가장자리가 풀리지 않게 흰 바탕에 붉은 실선으로 마감돼 있다.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리면 바깥쪽 옆선을 따라 이 선이 살짝 드러나는데, 이게 셀비지 진의 핵심 포인트이자 일반 원단보다 한 단계 고급으로 치는 이유다.
청바지의 제왕은 누가 뭐래도 리바이스다. 청바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핏의 원형을 갖추고 있고, 그중 스트레이트의 501, 부츠컷의 517이 대표적이다. 3040 남성이 입기엔 스트레이트 핏이 가장 무난하고, 여기서 밑단만 살짝 좁아지는 테이퍼드도 실패가 없다. 통이 넓지도 좁지도 않게 떨어지다가 발목 쪽에서만 슬림해지는 라인이라, 어떤 신발을 신어도 태가 나고 유행도 크게 타지 않는다.
간혹 같은 리바이스지만 10만 원 이하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제품들도 출시되는 만큼, 오프라인에서 원단과 박음질 상태를 보고 구매하기를 권한다. 내가 가장 먼저 보는 건 밑단이다. 바지 밑단을 뒤집어 박음질을 보면, 좋은 청바지는 사슬이 이어진 모양의 체인스티치로 마감된 경우가 많다. 체인스티치는 입고 빨기를 반복할수록 밑단이 비스듬하게 꼬이면서 물결 같은 페이딩이 생기는데, 생지 데님 애호가들이 일부러 찾는 디테일이기도 하다. 저가형은 대개 겉과 속이 똑같이 한 줄로 박힌 평범한 박음질로 끝난다.
리바이스가 원형이라면, 그 원형을 가장 충실하게 되살리는 건 일본 브랜드다. 미국의 30~60년대 청바지를 그대로 본떠 만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풀카운트, 웨어하우스 같은 브랜드가 인기가 많고, 가격은 생지가 보통 30만 원대, 워싱진은 50만 원을 넘어가기도 한다.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고민할 것 없이 유니클로로 가자. 5만 원짜리 유니클로 청바지(셀비지, 워싱진 둘 다 있다)의 만듦새는 10만 원 이하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새 청바지를 볼 때 유니클로를 품질의 기준선으로 삼는다. 원단의 두께와 밀도, 박음질 상태를 유니클로 청바지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는 거다. 그보다 못하다 싶으면 브랜드가 뭐든, 가격표가 얼마든 손을 대지 않는다.
셀비지 데님을 기준으로 가격대를 나열하자면, 유니클로 스트레이트 핏 5만 원, 리바이스 일반라인 15만 원, 웨어하우스 35만 원 정도다. 어중간하게 브랜디드 같은 9만 원짜리 유행 핏 기웃댈 바에는, 그냥 유니클로 스트레이트 셀비지 진을 사면 된다.
바지는 걸을 때마다 어딘가에서든 마찰이 생겨 다른 옷보다 빨리 닳는다. 그래서 오히려 치노팬츠나 셀비지 진 정도는 예산을 들여 괜찮은 걸 갖춰도 좋다. 원단이 좋을수록 쉽게 해지지 않고, 닳더라도 초라하게 가 아니라 멋스럽게 닳기 때문이다.
수선
끝으로 바지는 대부분 수선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바지를 사도 기장이 맞지 않으면 그 순간 옷의 값어치는 반토막 난다. 기성복은 애초에 불특정 다수의 평균 체형에 맞춰 만든 옷이지 내 몸에 맞춘 옷이 아니다. 그러니 사 온 그대로 입지 말고, 기장부터 확인하자.
특히 바지 밑단은 브레이크(바지 밑단이 신발에 닿아 생기는 주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밑단이 복사뼈 근처에서 딱 떨어지는 '노 브레이크'나, 신발에 살짝만 닿는 '하프 브레이크'로 칼같이 잡아주는 게 좋다. 반대로 밑단이 신발 위에 겹겹이 쌓여 주름지는 풀 브레이크는, 옷 전체가 후줄근해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얼마나 잘라야 할지 애매하다면 새로 산 바지에 가장 많이 신을 것 같은 신발을 신고, 줄였다 늘렸다 하면서 최적의 길이를 찾아보자.
다만 원단에 따라 수선의 만족도가 갈린다. 치노팬츠나 생지 데님은 밑단을 줄여도 티가 거의 안 나서 수선 후에도 깔끔하게 떨어진다. 반면 워싱진은 얘기가 다르다. 밑단에 이미 자연스러운 해짐이나 워싱 디테일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을 잘라내고 새로 박으면 원래 있던 질감이 사라지고 밑단만 유독 빳빳하고 어색해 보인다. 그렇다고 기존 밑단을 떼어 길이만 줄인 뒤 다시 붙이는 '밑단 살리기'도 권하지 않는다. 바지는 아래로 갈수록 통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중간을 잘라내고 원래 밑단을 이어 붙이면 그 폭이 미묘하게 어긋나 핏이 묘하게 틀어진다. 이음선이 하나 더 생기는 것도 덤이다. 그래서 워싱진은 처음부터 기장이 맞는 걸 고르는 게 가장 좋다.
어떤 바지든 수선을 맡길 땐 원래 밑단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 달라고 확실히 말해두자. 밑단 폭이나 접힌 방식은 제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디자인돼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수선집에서 늘 하던 방식대로 뚝딱 줄이면 실루엣까지 달라져 원래 사려던 바지와는 전혀 다른 바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맡기기 전에 원래 밑단 사진을 한 장 찍어두면 이야기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청바지라면 생지든 워싱이든 체인스티치로 마감해 주는 수선집을 고르자. 그래야 입을수록 밑단에 물결 같은 페이딩이 제대로 생긴다. 워싱진이라면 한 가지를 더 따져야 한다. 원래 밑단에 있던 해짐과 물 빠진 느낌까지 되살려주는 곳이어야 새로 박은 밑단만 따로 노는 일이 없다. 물론 그만큼 수선비는 더 든다. 생지는 길이만 줄이면 끝나지만, 워싱진은 줄인 밑단에 세월까지 다시 입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지를 권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바지 기장 하나를 제대로 수선했느냐가 3040 남성 스타일링의 성패를 가른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