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월급을 아버지께 드렸다
민원실은 늘 바빴다.
전화벨은 끊이지 않았고, 프린터는 쉼 없이 종이를 밀어냈다.
창구에서는 같은 설명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됐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한 사람만 들어왔다.
사수였다.
사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공문 이네. 네 업무니까 한번 해봐."
나는 파일을 열었다.
제목을 읽고, 본문을 읽고, 다시 제목으로 돌아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질문을 하려고 몇 번이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결국 묻지 못했다.
사수는 여전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모니터 불빛만 비쳤다.
그 안에 내 모습은 없었다.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 속 커서가 천천히 깜빡였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무언가를 쓰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첫 줄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휴대폰이 진동했다.
급여 입금 안내.
통장 앱을 열자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월급날이었다.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무엇을 살지부터 생각했을 것이다.
운동화 하나를 살까.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을까.
하지만 그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장례를 치른 뒤에도 아버지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평소처럼 출근했고,
평소처럼 밥을 먹었고,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아팠던 긴 시간 동안 가장 무거운 짐을 들고 있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아버지였다는 것을.
오후가 되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대학교 친구였다.
"야."
반가운 목소리였다.
"공무원 생활은 어때?"
나는 웃으며 말했다.
"할 만해."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엠티 이야기.
축제 이야기.
과제 이야기.
여자친구 이야기.
시험이 끝나면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
별것 아닌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듣고 싶었다.
친구는 다음 주를 이야기했고, 방학을 이야기했고, 그다음에 올 시간들까지 이야기했다.
나는 대부분 맞장구만 쳤다.
전화를 끊고 나니 민원실로 돌아오니 소음이 다시 귀로 들어왔다.
모니터 속 공문도 그대로였다.
커서는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친구는 계속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 첫 문장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도 결국 공문은 끝내지 못했다.
퇴근길.
가방 안에는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점심시간에 은행에 들러 돈을 찾았다.
생활비를 빼고,
교통비를 빼고,
정말 필요한 돈만 남겼다.
봉투는 생각보다 두껍지 않았다.
그래도 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돈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TV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계셨다.
"왔냐."
"네."
"오늘은 어땠어?"
"별일 없었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으셨다.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가방을 열어 봉투를 꺼냈다.
식탁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봉투를 내려다보셨다.
"이거 받으세요."
"뭐냐."
"빚 갚으실 때 보태세요."
말이 끝나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TV 소리만 멀리서 들렸다.
아버지는 한동안 봉투를 바라보셨다.
나는 말없이 봉투를 조금 더 밀었다.
아버지는 봉투를 집어 드셨다.
받으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가방을 끌어와 봉투를 다시 넣으셨다.
그리고 천천히 지퍼를 닫으셨다.
"아직 아니다."
짧은 한마디였다.
그 말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으로 들어왔다.
바카라상 앞에 앉았지만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 답답했다.
말로는 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서랍을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짧게 적었다.
아빠.
힘내세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짧은 글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 이상을 쓸 수 없었다.
종이를 접지도 않은 채 안방으로 갔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자리에 조용히 올려두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려고 가방을 열었다.
서류철이 보였다.
볼펜이 보였다.
그리고 봉투가 보였다.
어젯밤 그대로였다.
나는 한참 동안 봉투를 바라봤다.
아버지가 왜 돌려주셨는지 알 것 같기도 했고,
여전히 모르겠는 것 같기도 했다.
잠시 후 봉투를 가방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지퍼를 닫았다.
집을 나서자 청사로 향하는 버스가 막 정류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창가에 앉았다.
가방은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봉투는 그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게만은 전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