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난 정의 되었다
회식은 항상 갑자기 정해졌다.
아무도 크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날 일이 끝날 무렵, 일정표를 보던 사람이 말했다.
“오늘 간단하게 한잔 하죠.”
간단하다는 말은 늘 그렇듯
이미 간단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컴퓨터가 꺼지고, 서류가 정리되고,
가방이 어깨에 걸리는 순간까지는 분명 퇴근이었다.
그런데 발이 향하는 방향이
집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꺾이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일과를 시작했다.
식당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이었다.
긴 테이블 하나,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의자.
사람들은 익숙하게 자리를 나눠 앉았다.
나는 끝 쪽에 밀려 앉았다.
늘 그렇듯 보이지 않는 자리에 놓였다.
처음에는 평범했다.
무엇을 먹을지, 요즘 일이 어떤지,
중요하지 않은 말들이 테이블 위를 지나갔다.
웃음이 몇 번 섞였고,
공기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사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낮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경, 단정한 셔츠, 그리고 검은 피부의 얼굴.
잔을 드는 방식도, 말을 받는 방식도
회사 안과 다르지 않았다.
술이 한 잔씩 오가며 분위기는 조금씩 풀렸다.
그 뒤로 말들이 조금씩 느려졌다.
시끄러운 말 사이로 다른 말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 말은 가볍게 던져졌다.
듣는 얼굴도 있었고, 흘려듣는 얼굴도 있었고,
아무 표정 없는 얼굴도 있었다.
나는 손에 잔만 쥐고 있었다.
그리고 사수가 나를 불렀다.
이름이 먼저였고, 시선이 그다음이었다.
그 시선이 닿는 순간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너 그때 일 기억나지.”
이미 조금은 풀려 있던 자리였다.
몇 마디 웃음이 오가던 흐름이라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전보 이야기였다.
그날 일이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나는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처음 듣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사수의 말은 크지 않았다.
“너랑은 같이 일하기 어렵겠다 싶더라.”
조용했다.
조용해서 오히려 정리된 문장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은 오래 남았다.
그 순간부터 말이 줄었다.
웃어도, 말을 꺼내도
다시 불려 나갈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설명이 끝난 사람처럼 되어 있었다.
회식은 그렇게 끝났다.
사람들은 흩어졌고, 나는 버스에 올랐다.
창문에 비친 얼굴은 물에 젖은 것처럼 흐릿했다.
집에 도착하면 늘 집은 조용했다.
엄마는 병원에 있었다.
나는 퇴근 후 병원에 들렀다.
복도에는 늘 같은 냄새가 있었다.
약 냄새, 공기 냄새, 오래 머문 시간 같은 것들.
소독약 냄새는 늘 코끝을 찔렀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내가 온 걸 보면 괜히라도 힘을 내어 앉았다.
잠시 뒤 간호사가 약을 가져왔을 때
엄마가 말했다.
“우리 아들… 공무원이야.”
내 이름은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확인도 아니고 질문도 아니었다.
그냥 굳어버린 문장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을 나올 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나는 짧게만 말했다.
“엄마, 사랑해.”
길어지면 남을 것 같아서 항상 그 정도에서 끊었다.
말 끝은 늘 급하게 접혔다.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점심시간이 왔다.
나는 젓가락을 잡았다.
예전부터 서툴렀다. 알고는 있었다.
그날은 유독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반찬이 떨어지고,
손이 한 박자 늦게 따라갔다.
옆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점심식사자리 였다.
그때 팀의 차석이 말했다.
“젓가락을 왜 그렇게 잡아?”
웃음인지 아닌지 모를 말이었다.
나는 웃으려 했지만 얼굴이 먼저 달아올랐다.
잠깐 공기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아마 그 순간이 오래 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순간 이상하게 알게 됐다.
사람들은 큰 사건으로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젓가락질, 말투, 표정 같은 아주 작은 장면으로
사람을 정리해버린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으로 굳어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그 뒤로 점심시간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먼저 움직이지 않게 됐다.
누가 나를 규정한 게 아니라
이미 그렇게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회식 날의 말이 남아 있었다.
“너랑은 같이 일하기 어렵겠다 싶더라.”
지워지지 않는다기보다,
이미 기준처럼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이 없고,
늦게 이해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