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장례식장에서는 밥 냄새가 났다
처음 장례식장에 갔던 날이 기억난다.
부고를 받고 검은 넥타이를 맸다. 온라인 게임동료들을 따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때의 나는 죽음을 아직 머나먼 나라 일이라고 생각했다. 온라인 게임게시판 부고란에나 있는 이야기,
텔레비전 속 이야기, 나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이야기라고 믿었다.
장례식장 복도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빈소 안에서는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향 냄새가 났고 국화 냄새가 났다.
그리고 밥 냄새가 났다.
그게 이상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국이 끓고 있었다.
울음소리 옆에서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고, 빈소 밖에서는 뿌연 담배 연기가 올라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음은 세상을 멈추게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장례식장 안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날은 그게 이해되지 않았다.
달력이 바뀌고 계절이 흘렀다.
그리고 언젠가 올 줄 알았지만 오지 않기를 바랐던 날이 왔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계셨다.
오랫동안 투병하셨다.
병은 조금씩 어머니의 몸을 가져갔고,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살았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는 늘 준비라는 것이 있었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것을 알았고,
갈수록 야위어 가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상했다.
준비를 한다고 해서 이별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도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 계신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손을 잡았다.
평생 나를 키워 준 손이었다.
어릴 때는 그 손을 잡고 길을 건넜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면 등을 떠밀어 주던 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그 손은 내 기억보다 훨씬 가늘어져 있었다.
나는 어머니 귀에 대고 말했다.
"사.랑.해"
늘 하던 말이었다.
아프신 뒤로는 전보다 더 자주 했던 말.
그래서 그날도 마지막 인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계셨다.
들으셨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들으셨을 거라고 믿고 싶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중환자실 문이 닫혔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내가 다녀가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떠나셨다.
장례식장은 며칠 동안 꺼지지 않는 낮 같았다.
사람들이 찾아와 절을 하고, 위로를 건네고, 돌아갔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
조문객들이 뜸해진 시간.
복도는 조용했고 형광등 불빛만 남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봤다.
평생 동안 아버지는 큰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늘 가족보다 앞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그런 아버지가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거칠고 단단한 손이었다.
평생 일을 하며 닳아 온 손.
어릴 적 내게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달랐다.
그 손이 내 손 위에 놓이는 순간,
처음으로 아버지가 작아 보였다.
새벽에 달이 깊어갈수록 빈소에는 다시 밥 냄새가 돌기 시작했다.
국이 끓고 있었다.
밤을 새운 사람들이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뜨거운 국물에서 올라오는 김이 새벽 공기 속으로 천천히 흩어졌다.
처음 갔던 장례식장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왜 밥을 먹는 걸까.
하지만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살아 있는 사람은 결국 밥을 먹는다.
울다가도 먹고,
그리워하다가도 먹고,
견디기 위해 먹는다.
사별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불행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진 이들에게 언젠가 한 번씩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겪고 나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넌다.
장례를 마치고 며칠 뒤였다.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며칠 동안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비로소 식탁 앞에 앉은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밥을 삼키다가 그만 사레가 들렸다.
갑자기 기침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날 만큼 콜록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어머니가 먼저 일어났을 것이다.
등을 두드리며 천천히 먹으라고 했을 것이다.
물컵도 내 앞으로 밀어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식탁에는 나 혼자였다.
나는 직접 물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렸다.
기침은 금방 멎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동안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사레 때문은 아니었다.
평생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았던 온기 하나가,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맡았던 밥 냄새는
어쩌면 죽음의 냄새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