消失(소실)된 溪谷(계곡), 그리고 心中(심중)의 殘像

수필

by산들강바람

모처럼 번잡한 일상의 糾結(규결)을 과감히 털어내고,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보물처럼 간직해 두었던 깊은 산중의 계곡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그곳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찾아와 맑은 정기를 수혈받던 나만의 은밀한 도피처이자,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천연(天然)의 안식처였다. 늘 그리워하며 빈번하게 오고 가던 친숙한 길이었기에, 이번 산행에는 별다른 거창한 채비나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그저 가벼운 차림과 편안한 걸음으로 산문(山門)을 들어섰다.


오랜만에 귓가를 스치며 고요하게 울려 퍼질 청량한 물소리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온몸의 세포들이 기분 좋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하얀 도화지 위에는 벌써부터 수천 년의 세월이 빚어낸 거친 기암괴석 사이로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물줄기와, 그 수면 위로 눈부시게 부서지며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름 햇살의 물비늘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길가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대열을 이루어 늘어선 아름드리나무들도 눈에 익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이 숲길의 모퉁이를 돌아서서 끝자락에 다다르면, 늘 그러했듯이 가슴속까지 서늘하게 적셔주는 청량한 물기운과 짙은 이끼 향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나를 따스하게 안아줄 것만 같은 막연한 확신에 차 있었다. 대자연이 베푸는 변함없는 환대를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나는 그렇게 기억의 이정표를 따라 숲의 더 깊은 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땀방울을 흘리며 마침내 도착한 종착지에는, 내가 그토록 애틋하게 그리워하던 익숙한 형태의 계곡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믿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자연의 정취가 살아 숨 쉬어야 할 거룩한 골짜기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단한 대지를 무자비하게 파헤치는 굴착기(掘鑿機)의 육중한 강철 몸체와, 사방으로 숨 막히게 피어오르는 황탁(黃濁)한 흙먼지 자욱한 대규모 공사 현장이었다.


수많은 성쇠(盛衰)를 지켜보며 물길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굽이치며 만들어놓았던 거친 바위들과 깊은 여울은, 인간이 설계한 자로 잰 듯한 반듯한 직선의 논리에 밀려 사정없이 재단(裁斷)당하고 있었다. 바위를 쓰다듬으며 졸졸졸 청아하게 흐르던 태고의 물소리 대신, 쇠와 쇠가 부딪히고 엔진이 거칠게 폭발하는 덜컹덜컹 육중한 기계음과 굉음이 온 골짜기를 찢어발기듯 울려 퍼졌으며, 메마른 흙먼지는 거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뿌옇게 흩날려 신성한 산의 허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영원토록 존재할 것만 같았던 자연의 유산들이, 인간의 하룻밤 權勢(권세)와도 같은 개입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준엄한 사실이 못내 낯설고도 서운하여 가슴 한구석이 허물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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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고요함, 바람의 속삭임, 강과 계곡의 흐름, 그리고 바다의 깊이를 글로 담아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저에게 가장 진실한 위로와 질문을 안겨주었습니다. 수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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