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

소설

by산들강바람

## 第七章:烙印 (낙인) — 살다 덴 상처, 굳어지는 연대

철을 다루는 자들의 작업복은 한 편의 서글픈 연대기(年代記)와 같다. 은백색의 새 작업복이 현장에 들어와 시커먼 광유와 자욱한 쇳가루를 뒤집어쓰며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한 인간이 거친 물질의 세계에 온전히 길들여지는 이행의 서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정직한 기록은 옷자락 여기저기에 벌집처럼 뚫려 있는 시커먼 불구멍 들이다. 수천 도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튀어 오른 쇳물이 면직물을 태우고 들어가 결국 살갗에 닿았을 때, 현장은 인간에게 결코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낙인(烙印)을 선사한다. 그 낙인을 거치지 않고 장인이 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강민우는 제2작업장 구석에서 오십 밀리미터 두께의 플랜지(Flange)용 원형 강판을 절단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려 고글 안쪽을 흐렸고, 마스크 너머로 터져 나오는 숨소리는 이미 가쁜 기계의 배기음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진성의 가르침대로 아랫배에 단단히 중심을 두고 화구(火口)를 쥐었으나, 거대하고 두꺼운 원형 철판을 따라 곡선(曲線)을 그리며 나아가는 것은 직선을 긋는 것보다 몇 배의 엄격한 통제력을 요구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콰아아아――'

정반(定盤) 밑으로 떨어지는 불꽃비[火雨]의 서슬이 거셌다. 민우는 온 신경을 불꽃의 정점과 분필 선의 경계에 집중했다. 조금만 속도가 늦으면 철판이 과열되어 쇳물이 달라붙고, 조금만 빠르면 미처 잘리지 않은 철의 잔해가 화구를 밀어낼 터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꺼운 강판 내부의 미세한 공기층, 즉 압연 과정에서 생긴 보이지 않는 결함 부위에 불꽃이 닿는 순간, 갇혀 있던 고압의 가스가 굉음과 함께 외부로 폭발했다.

'팍――!'

역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녹아내리던 선홍빛 쇳물 덩어리가 사방으로 비산 했다. 민우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으나, 허공을 가른 뜨거운 쇳물 한 방울이 그의 두꺼운 용접 장갑과 작업복 소매 사이의 가냘픈 손목 틈새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수천 도의 초열(焦熱)이 여린 살점 위로 떨어지는 순간, 살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골수까지 찌르는 극심한 통증이 청년의 전신을 관통했다.

"으악!"

민우는 화구를 정반 위에 거칠게 내팽개치며 손목을 움켜쥐었다. 바닥에 뒹구는 화구에서는 여전히 사나운 아세틸렌 불꽃이 허공을 찢으며 날뛰고 있었고, 청년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고통으로 온몸을 뒤틀었다. 장갑을 벗어던지자, 손목 겉살이 하얗게 익어버린 채 진물이 배어 나오는 참혹한 화상(火傷)의 자국이 드러났다.

작업장의 기계음은 청년의 비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포효하고 있었고, 주변의 인부들은 제 물건을 처리하느라 불꽃 너머의 조그만 사고를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광활한 공장의 고독 속에서, 민우는 다시 한번 철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철저히 버려진 기분을 느꼈다. 통증보다 더 깊은 공포가 청년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왔다.

서걱, 서걱, 서걱.

그 지옥 같은 절망의 순간을 깨뜨린 것은 역시나 장인의 거칠고 신속한 발소리였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청년의 등 뒤를 지키던 오진성이 화구의 밸브를 단번에 잠가 불꽃을 소멸시킨 후, 민우의 앞으로 거대한 바위처럼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진성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차갑게 굳어 있었으나, 그의 손길만큼은 더없이 신속하고 단호했다.

진성은 민우의 손목 상태를 스치듯 확인한 후, 아무런 말도 없이 청년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어 그 육중한 몸을 단번에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공장 한구석에 있는 세척장으로 민우를 거칠게 이끌었다. 진성은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어 쇳가루가 섞인 차가운 지하수를 뿜어냈다.

"손을 대라."

"아윽…… 반장님, 너무 따갑습니다……."

"참아라. 차가운 물로 독기(毒氣)를 빼내지 않으면 화독이 뼈까지 파고든다. 단 한순간도 손을 물 밖으로 빼지 마라."

진성의 엄격한 목소리가 세척장의 물소리와 겹쳐 들었다. 차가운 물이 화상 부위에 닿자 민우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악물었다. 진성은 자신의 두껍고 굳은살 박힌 손으로 물줄기를 받아내며, 민우의 상처 주위에 묻은 거뭇한 쇳가루들을 조심스럽게 씻어내주었다. 장인의 거친 손길은 이상하리만큼 부드러웠고,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체온은 청년의 극심한 통증을 서서히 동결시키는 듯했다.

한참 동안 상처를 씻어낸 후, 진성은 구급함에서 화상 연고를 꺼내 민우의 익어버린 살갗 위에 두껍게 펴 발랐다. 그리고 하얀 붕대를 감아올리는 장인의 손길에는 단 한 치의 떨림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평생 동안 수없이 자신과 동료들의 상처를 싸매어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서글프고도 노련한 숙련의 몸짓이었다.

진성은 붕대 매듭을 단단히 묶은 후, 비로소 세척장 바닥에 툭 걸터앉았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어 불을 붙였고, 뿜어져 나온 하얀 연기 너머로 민우의 붕대 감긴 손목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제야 비로소 자네가 이 공장의 진짜 인부가 되었구나."

진성의 목소리는 낮고 쓸쓸했다. 민우는 아픈 손목을 안은 채 의아한 눈빛으로 스승을 바라보았다.

진성은 묵묵히 자신의 오른쪽 작업복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청년의 눈이 커졌다. 장인의 두꺼운 팔뚝 위에는, 마치 수많은 별자리가 얽혀 있는 것처럼 크고 작은 둥근 화상 자국들이 켈로이드성 흉터로 징그럽게 돋아나 있었다. 어떤 것은 이미 오래되어 황갈색으로 변했고, 어떤 것은 붉은 살을 드러낸 채 평생의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이건 이십 대 시절 조선소에서 튀어 오른 쇳물에 덴 자국이고, 이건 십여 년 전 이 공장의 대형 크레인 밑에서 화구를 잡다 얻은 상처지. 이 현장에서 밥을 벌어먹고사는 자치고, 몸에 철의 낙인(烙印)을 새기지 않은 자는 없네. 철은 인간에게 그냥 길을 내어주지 않아. 반드시 인간의 피나 살점, 혹은 눈물 한 방울이라도 제 몸에 묻혀야만 비로소 그 완강한 빗장을 열어주는 법이지."

진성은 하얀 연기를 창밖의 서글픈 가을 하늘로 내뿜었다.

"살다 덴 상처는 아프다. 뼈가 시리도록 아프지. 하지만 민우야, 그 상처가 아문 자리에 돋아나는 세 살은 이전의 피부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두꺼워지는 법이네. 그 상처들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내 손바닥 같은 굳은살이 되는 거지. 이 현장이 무서운 이유는 내가 다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상처를 부끄러워하며 도망치기 때문일세."

진성은 쪼그려 앉아 있는 민우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아까 자네의 화구가 터진 건 자네의 잘못이 아니야. 철판 내부의 결함이었지. 세상일도 그렇다네. 내가 아무리 직선을 바르게 그으려 해도, 세상이라는 철판 자체가 품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결함 때문에 내 삶이 튀어 오르고 상처 입을 때가 허다하지. 그럴 때마다 화구를 내팽개치고 도망칠 텐가?"

민우는 장인의 휘어지고 상처투성이인 팔뚝과 자신의 하얀 붕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 하나가 척추를 타고 울컥 올라왔다. 청년이 느꼈던 고독한 공포는, 평생 동안 이 가혹한 낙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곧은 직선을 지켜온 노병의 연대(連帶) 속에서 서서히 위로로 치유되고 있었다. 진성이 보여준 흉터들은 징그러운 상처가 아니라, 혹독한 대지 위에 깊은 뿌리를 내리기 위해 소나무가 스스로의 껍질을 찢어내며 만들어낸 거친 옹이들과 같았다.

"반장님…… 저 다시 화구 잡겠습니다."

민우의 목소리는 아까의 비명과 달리, 낮고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진성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가에 새겨진 깊은 주름들이 노을빛 속에서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래. 철판이 아직 식지 않았다. 상처를 품고 다루는 불꽃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법이지. 가세."

두 노동자는 다시금 시커먼 기계들의 포효가 가득한 정반 앞으로 나란히 걸어 나갔다. 민우는 왼손으로 붕대 감긴 오른 손목을 단단히 받쳐 쥐었고, 진성은 청년의 궤적을 묵묵히 호위하며 가스 밸브를 열어주었다. 공장의 자욱한 쇳가루와 굉음 속에서, 서툰 청년의 상처와 늙은 장인의 세월은 그렇게 하나의 단단한 직선으로 굳어지며 진정한 연대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살을 데어낸 고통의 낙인은, 마침내 청년의 영혼 위에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깊이 새겨 넣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쇳물과 소나무 (鐵水與松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