炎天(염천)을 건너는 법, 그리고 歸還(귀환)

수필

by산들강바람

여름 한낮의 熾烈(치열)한 열기는 인간의 精神(정신)과 育體(육체)를 속절없이 지치게 만드는 법이다. 검은 아스팔트 도로 위로는 蜃氣樓(신기루) 같은 아지랑이가 자글자글 피어오르고, 사방이 막힌 허공에서는 매미 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늘 한 점 허락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걷노라면, 몸은 어느새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걸음은 자꾸만 대지에 들러붙듯 느려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염천(炎天)에는 단 한 줄기의 서늘한 바람이 간절하건만, 하늘이 내어주는 바람은 기대와 사뭇 다르다. 가끔 살결을 스치는 바람은 청량함을 품고 오는 대신, 가마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뜨거운 숨결을 안고 훅 끼쳐온다. 마치 누군가 무례하게도 얼굴 가까이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 듯한, 불쾌하고도 거친 바람이다.


그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늙은 나무의 그늘 아래로 몸을 의탁한다. 무성한 초록의 이파리들이 바람에 부딪히며 사각사각 고요한 음성을 낸다. 거친 손을 뻗어 나뭇잎을 가만히 어루만지면, 그 잎사귀는 오랜 세월을 함께 버텨온 벗처럼 내 손끝을 마주 잡아준다. “너도 이 계절을 건너느라 참으로 고단하구나.” 나무가 그렇게 주파수를 맞춰 속삭이는 듯하다. 이 뜨거운 우주를 홀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은, 짓눌려 있던 내면의 고독을 묘하게 위안한다. 나무도, 풀도, 저 처절하게 울어대는 매미들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무더위라는 거대한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 눈가를 적신다. 거친 손등으로 서둘러 땀을 훔쳐낸 뒤 고개를 들면, 거기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잔인하도록 새파란 창공(蒼空)이 펼쳐져 있다. 태양은 대지를 집어삼킬 듯 사정없이 빛과 열을 쏟아붓고 있지만, 저 거대한 천체 역시 그저 우주의 순리대로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 여기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원망은 이내 기묘한 순응(順應)의 감정으로 바뀐다. 여름은 본디 그런 계절이다. 인간을 한없이 뜨겁게 달구고, 지치게 하며,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자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자각하게 만드는 계절인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산들강바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숲의 고요함, 바람의 속삭임, 강과 계곡의 흐름, 그리고 바다의 깊이를 글로 담아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저에게 가장 진실한 위로와 질문을 안겨주었습니다. 수필,소설

14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하늘이 열린 날 (天開之日): 회색의 심연을 지나 푸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