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일주일째 세상은 회색(灰色)의 감옥이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물기를 머금은 아스팔트처럼 칙칙하게 젖어 있었고, 그 위를 바삐 걸어가는 행인들의 우산은 대지 곳곳에 돋아난 검은 버섯처럼 음울하게 피어 있었다. 하늘은 나지막한 천장처럼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 무게는 단순히 수증기가 모여 만든 물리적인 압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현실의 장벽이자, 마음 깊숙한 곳까지 소리 없이 스며들어 모든 이성적 사유를 둔탁하게 만들고 모든 예술적 감정을 뿌옇게 흐려놓는 무형(無形)의 족쇄였다.
이를 동양의 오랜 지혜에서는 초목과 인간이 모두 기운을 잃고 침잠하는 형국이라 하였으니, 그야말로 만물이 어둠에 갇힌 만물은폐(萬物陰蔽)의 시기라 할 만했다. 따스한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창가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마음에 평온을 얻고자 바카라을 읽으며 소파에 깊숙이 몸을 맡길 때도, 그 잿빛의 무게는 어깨 위에 엄연히 얹혀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가슴 한복판을 꾹꾹 눌러대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숨식만을 내쉬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도 허공의 공기는 진흙처럼 묵직했고, 가슴 안의 숨을 길게 내뱉어도 마음의 후련함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비는 연일 그치지 않고 내렸지만, 그것은 대지를 정화(淨化)하고 생명을 소생시키는 감로수(甘露水)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채였다. 창유리를 타고 느리게 흘러내리는 빗방울들은 영락없이 슬픔에 겨운 인간의 눈물처럼 보였지만, 그 눈물조차 탁하디 탁해 보였다. 세상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이 발 디디고 서 있는 세상을 더욱 흐리고 진득하게 오염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기괴하고도 단조로운 빗소리를 들으며 겨우 잠들었고, 이튿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그 빗소리와 함께 무거운 눈을 떴다. 꿈속에서조차 세상의 색채는 온통 회색이었으니, 영혼의 밑바닥까지 잿빛 안개에 잠겨 있었던 셈이다.
거친 바람이 가끔 불어왔다. 하지만 그 바람은 한여름의 대지를 식혀주는 시원함을 주지 않았다. 대신 축축한 습기를 한껏 몰고 와 피부를 끈적하게 만들고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할 뿐이었다. 정원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세차게 흔들렸지만, 그 역동적인 움직임조차 내 눈에는 기운을 잃은 자의 무기력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마치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거대한 체념(諦念)의 수렁에 깊이 빠진 듯했다.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나무도, 화려함을 잃은 꽃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새들도, 그리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일인가.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한다. 자연의 냉혹함 앞에 서면 인간이 짊어진 삶의 바카라임감은 더욱 비정하게 다가온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하늘은 여전히 두꺼운 잿빛 담요로 덮여 있었다. 나는 점점 그 치욕스럽고 답답한 색에 익숙해져 갔다. 아니, 익숙해져 간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위악적인 위안을 삼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 어둡고 칙칙한 회색이 내 마음의 본연(本然)의 색이 되어가고 있었음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침이 오는 것도, 밤이 가는 것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벽 위의 시계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달력의 날짜는 끊임없이 바뀌었지만, 그 모든 변화는 같은 회색의 거대한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무의미한 소동에 불과했다.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도리어 내가 손쓸 새도 없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의 감각이 흐려진 채, 나는 그 회색의 심연 안에서 목적지를 잃은 돛배처럼 위태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생계와 경제적 결핍은 마음속에 품었던 고귀한 문장들을 가차 없이 메마르게 했고, 영혼을 울려야 할 감정의 샘물마저 꽁꽁 얼려버렸다. 돈이라는 냉혹한 삶의 계산서 앞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한낱 사치이거나 무력한 넋두리처럼 느껴져, 작가로서의 바카라임감은 도리어 거대한 두려움이 되어 내 목을 조여왔다.
그런데 바로 그 아침이었다. 무겁기만 하던 영혼의 수면 위로 무언가 거대한 변화의 징후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짧은 찰나, 늘 맞이하던 아침과는 공기의 밀도 자체가 확연히 달랐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 건지 논리적인 언어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를 둘러싼 공기 자체가 완전히 치환되어 있었다. 그것은 더 가벼웠고, 더 맑았으며,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듯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침대에서 일어나 둔중한 걸음으로 창가로 걸어갔다. 낡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의 결이 이전의 것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결코 죽어있는 회색이 아니었다.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커튼을 힘차게 젖혔다.
거기에는 대개벽(大開闢)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늘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파란색(靑色)의 향연이었다. 인간이 언어로 규정할 수 있는 단순한 색채가 아니었다. 동양에서 청색은 만물이 소생하는 동방의 기운이자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니, 이를 일컬어 동방청기(東방靑氣)라 할 만했다. 그 파란색 안에는 우주의 수많은 층위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연한 하늘색부터 저 깊은 심해의 심연을 닮은 짙은 코발트블루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파란색의 스펙트럼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일주일 내내 대지를 짓누르던 먹구름들은 이제 하얀 솜털처럼 가볍게 흩어져 떠 있었고, 그 구름의 틈새를 뚫고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신이 내린 황금빛 금실처럼 대지 위로 찬란하게 작렬하고 있었다.
그 눈부신 광경을 마주한 순간, 나는 가슴이 턱 막히며 숨이 일시적으로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그것은 숨이 멎은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숨'을 비로소 쉴 수 있게 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맑고 깨끗한 공기가 거침없이 밀려 들어왔다. 암흑 같았던 며칠 동안 완전히 잊고 지내던 생(生)의 감각이었다. 인간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이 당연한 행위가 이토록 달콤하고 경건한 일이었던가를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 안으로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이번에는 습기를 머금은 불쾌한 바람이 아니라, 영혼의 묵은 때까지 단숨에 씻어내줄 것 같은 참으로 시원한 청풍(淸風)이었다. 그 바람은 거친 노동으로 지친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으며, 때 묻은 옷깃을 가볍게 날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폐부를 지나 마음속 가장 깊은 심연까지 거침없이 걸어 들어와, 현실의 무게에 치여 며칠 동안 단단하게 쌓여 있던 회색의 불순물들을 하나씩 거침없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파란 공간은 시작도 끝도 없어 보였다. 무한히 깊고, 무한히 높았다. 장자(莊子)가 말한 대붕(大鵬)이 나는 끝없는 구만리장천이 바로 저러할까. 그 거대한 우주의 공간 안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가, 동시에 우주와 하나가 되어 다시금 한없이 커졌다. 자연의 거대함 앞에 내가 작아진다는 것은 결코 초라하거나 굴욕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옭아매던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무한한 자유(自由)의 획득임을 깨달았다. 또한 내 안의 정신이 커진다는 것은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이 아니라, 현실의 고단함을 딛고 다시금 무엇이든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거대한 가능성(可能性)의 발견이었다.
햇살은 창문을 통과하여 어두웠던 방 안의 구석구석까지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공기 중에 떠돌던 미세한 먼지 입자들이 그 찬란한 빛의 기둥 안에서 마치 살아있는 요정들처럼 저마다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작은 존재들의 춤사위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카라상 위에 놓여 있던 투명한 컵에 햇살이 부딪히자, 빛은 굴절되어 벽면에 찬란한 무지개색 반사를 만들어냈다.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던 벽면의 그림이 새로운 생명의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일제히 깨어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만물이 제 자리를 찾아 빛나는 만물제생(萬物齊生)의 순간이었다.
그 찬란한 여명 속에서 나는 비로소 거대한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푸른 하늘은 일주일 전에도, 아니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찬란한 파란색도, 유유자적하던 구름도, 대지를 비추던 강렬한 햇살도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다만 인간의 눈을 가린 회색의 장막이 그것들을 잠시 가로막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본질은, 그 회색 장막이 거대하게 걷혔을 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내면의 준비가 나에게 되어 있지 않았다면, 내 눈앞의 하늘은 여전히 잿빛의 연장선으로만 보였을 것이라는 엄혹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갖추어야 할 내면의 준비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막연한 기다림일까, 아니면 현실을 향한 처절한 포기일까. 어쩌면 그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일지도 모른다. 회색의 고통에 완전히 잠겨보는 것, 현실이 주는 돈과 바카라임감의 무게를 도망치지 않고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찾아온 정신의 가벼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뼛속 깊이 각인하는 과정 말이다. 맹자(孟子)가 말하길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심지를 고단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고기심지(苦其心志)라 한다. 어둠을 통과해야만 빛의 가치를 알 수 있듯이, 회색의 심연을 지나왔기에 푸른 하늘은 비로소 내게 구원이 되었다.
나는 창가에 못 박힌 듯 서서 한참 동안 그 장엄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파란색의 우주 안에서 내 마음속의 수많은 감정들이 밀물처럼 일어났다가 썰물처럼 사라져 갔다. 아스라한 그리움이 있었다. 그것이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인지, 혹은 내가 도달하고자 했던 완벽한 문장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참으로 달콤하고 아련한 그리움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감(安堵感)도 있었다. 마침내 나를 짓누르던 바카라임감의 무게를 잠시 저 푸른 공간에 내려놓을 수 있다는 구원의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안에서 작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을 단단한 희망(希望)의 싹이 돋아남을 느꼈다. 다시 연필을 쥐고 글을 쓸 수 있다는 희망, 다시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희망이었다.
하늘이 열린 날이었다. 아니, 전적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무지(無知)와 공포에 갇혀 있던 '내 마음이 비로소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 날[我開之日]'이었다.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마비되었던 감각의 문이 열렸으며, 위대하게 비상할 작가로서의 가능성의 문이 열린 날이었다. 오늘부터 내 삶의 모든 것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비록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여전히 녹록지 않은 돈의 실체와 마주해야 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구차한 일상이 반복될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내면의 안목(眼目)이 완전히 달라졌으니, 결국 우주 전체가 달라진 것과 다름없다.
하늘은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파랗게 펼쳐져 있었고, 나는 그 거대한 대자연의 축복 아래서 다시 한번 깊고 위대한 숨을 쉬었다. 내 안의 문장들이 다시금 푸르게 고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