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열 번쯤하고 알게 된 것들

1장 결혼 때문에 불안하다

by삼킨

한동안 소개팅 주선을 취미처럼 즐겼다. 친구들이 외롭다고 하면 오지랖이 발동하여 지인의 지인까지 물어 어떻게든 이성을 소개해주곤 했다. 어느 날은 한 친구가 고맙다며 내게도 소개팅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스물여덟의 봄, 그렇게 생에 처음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외롭기도 했고, 아무튼 나도 결혼은 하고 싶었으니까.


때는 코로나 시국, 마스크를 쓴 채로 식당으로 향하는 마음은 심란했다. 마스크를 벗은 내 얼굴을 보고 상대가 크게 실망할까 봐 겁이 났고, 처음 보는 남자와 당최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막막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도착한 식당 앞, 머리가 뽀글뽀글한 남자애가 서있었다.

"혹시, XX님…?"

사진으로만 본 얼굴에 마스크까지 끼고 있어 긴가민가 했지만, 식당 앞에 하릴없이 서있는 남자는 그 하나밖에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하기에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파스타 집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마주 앉아 확인한 그의 얼굴은 다행히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카페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활발한 성격이 이상형이라 말했고, 나는 별명이 '리트리버' 일 정도로 활기가 넘치는 편이었다. 그는 영화 <봄날은 간다>를 좋아한다고 했고, 나는 그 영화를 세 번이나 보았다. 그가 해보고 싶은 데이트는 방탈출이었고, 나는 방탈출 소모임의 회원이었다. 우리 사이엔 공통점이 꽤 많았다.


카페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함께 걸어가는 길, 그가 내게 한번 더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역시도 우리가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낀 듯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함께 맥주를 한두 잔 마셨고, 고백을 받았다. 그렇게 그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겨우 두 번 만난 남자와 시작한 연애는 이전의 연애와는 달랐다. 분명 남자친구인데도 그가 어색했다. 그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부족했다. 이전의 연애들은 일명 ‘자만추’로 만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짝사랑을 하는 기간이 반드시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번 연인이 되고 나면 그간 숨겨왔던 마음을 양껏 표출하기에도 벅찼다. 하지만 이 연애는 어찌 된 일인지 할 말도 없거니와 도대체 같이 뭘 해야 할지도 고민스러웠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된 남자'가 아니라, '사랑해 보기로 결정 한 남자'였다.


처음의 좋았던 예감과 다르게 관계는 지지부진했다. 공통의 관심사가 많다는 것만으로는 사랑이 커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데이트를 하며 하루를 꼬박 보내는 내내 집에 두고 온 일거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밀린 빨래를 하고, 전날 읽다 덮은 바카라을 마저 읽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싶었다. 그 모든 흥미로워 보이는 일들을 미뤄두고 그와 지루한 식당에서 뻔한 음식을 먹고 흔해 빠진 카페 앉아있어야 한다는 현실이 못내 괴로웠다.


그즈음부터 이별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 연애를 끌고 가 결혼까지 골인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성급히 헤어졌다가 후회할까 두려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그를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별을 고했다. 그는 "도대체 뭐가 문제야?"라며 황당해했다. 나 조차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어 아무런 대답을 못했다. 그와 헤어진 뒤, '역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음번엔 더 신중하게 관계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애석하게도, 같은 상황을 몇 번이나 더 겪게 된다.




그 후에도 셀 수없이 많은 소개팅과 한 두 번의 연애가 있었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처음에 느꼈던 호감은 오래가지 못했고,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별했다. 만남과 헤어짐이 되풀이될 때마다 더 커지는 실망감에 괴로웠다. 남들은 소개팅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인연을 찾아 결혼하는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못하는 것 같았다. '너는 앞으로 평생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혼자일 거야'라는 믿음은 착실히 자리를 잡아갔다.


초반의 관심을 사랑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연애가 끝나버리는 이유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주변에 고민을 토로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네가 정말 잘 맞는 사람을 못 만나서 그래."


모두들 신기할 정도로 같은 말을 했다. 그들의 앵무새 같은 대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내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커져가는 불안을 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서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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