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심이 시리즈 04. 괜찮다는 말 뒤에는 늘 밤이 있었다
“I’m fine.”
오늘 우리 집에 찾아온 녀석은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도.
나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피식 웃었다.
“너 또 시작이냐.”
영심이는 후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냉장고 문부터 열어봤다.
텅 빈 냉장고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또 말했다.
“I’m fine.”
참 이상한 문장이었다.
처음엔 그냥:
“난 괜찮아.”
그 정도 의미인 줄 알았다.
눈 밑은 푹 꺼져 있는데,
웃음은 자꾸 커지고,
괜찮다는 말은 점점 빨라졌다.
마치 자기 자신까지 속이려는 사람처럼.
나는 영심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너 사실 하나도 안 괜찮지?”
그러자 녀석이 피식 웃었다.
“People like easy answers.”
순간 조금 씁쓸했다.
사람들은 긴 설명보다
“괜찮아.”
한마디를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힘들다는 말 대신 괜찮다고 말하고,
외롭다는 말 대신 웃어버리고,
무너졌다는 말 대신 바쁘다고 말한다.
영심이는 말없이 컵에 물을 따랐다.
컵 안에서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괜히 중얼거렸다.
“근데 왜 사람들은 자꾸 괜찮은 척할까.”
영심이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창문 밖 도시 불빛만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녀석이 낮게 말했다.
“Because nobody wants to look weak.”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무너지는 순간보다,
무너지지 않은 척하는 순간 더 많이 지친다.
계속 웃어야 하고,
계속 괜찮아 보여야 하고,
계속 버틸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니까.
나는 소파 끝에 기대앉아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영심이는 늘 이상했다.
영어 문장 하나 들고 와서는,
사람 마음 가장 숨기고 싶은 곳만 툭 건드리고 돌아갔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녀석은 현관 앞에서 운동화를 대충 구겨 신었다.
그리고 문을 열기 직전,
뒤도 안 돌아본 채 말했다.
“You don’t have to pretend tonight.”
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그 말은 한동안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오늘 영심이는
괜찮다는 말이 가장 슬픈 밤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 영심이 지난 이야기
“You look tired.”는 내 표정보다 먼저 내 피곤함을 알아봤다.
→ 영심이 시리즈 03. 오늘 영심이는 내 피곤함을 먼저 봤다?
? 영심이 첫 번째 이야기
“Take your time.”은 어느 날 불쑥 우리 집에 놀러 왔다.
→ 영심이 시리즈 01. 천천히 해
… by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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