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심이 시리즈 03. 너 오늘 좀 지쳐 보인다
영심이는 꼭 밤에만 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해가 채 지기도 전에 초인종도 없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 가방을 던져두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배터리 꺼진 기계처럼 몸이 멈춰버렸다.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컵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또 남의 집 와서 뭐 하냐…”
내가 힘없이 묻자,
영심이는 머그컵 하나를 식탁 위에 밀어놓으며 말했다.
“You look tired.”
순간 조금 웃겼다.
나는 괜히 툴툴댔다.
“아니거든.”
그러자 영심이가 피식 웃었다.
“People always say that first.”
꼭 사람 같았다.
진짜 피곤한 사람 ほど
제일 먼저 괜찮다고 말한다.
나는 소파에 털썩 기대앉았다.
오늘 하루를 떠올려보니,
별일은 없었다.
누가 크게 상처 준 것도 아니었고,
무너질 만큼 힘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닳아 있었다.
계속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고,
분위기를 맞추고,
표정을 고르고,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하느라.
사람은 몸보다 표정이 먼저 피곤해진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영심이는 말없이 귤을 까고 있었다.
탁.
귤 한 조각이 내 앞에 놓였다.
“Eat.”
나는 피식 웃었다.
“영어 문장이 사람 챙기는 건 반칙 아니냐.”
그러자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You ignored yourself all day.”
그 말에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나는 내 기분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목은 괜찮은지,
마음은 괜찮은지,
지금 진짜 웃고 있는 건 맞는지.
그냥 해야 할 일들 사이를 떠밀리듯 지나왔을 뿐이었다.
영심이는 늘 이상했다.
별말 아닌 영어 문장처럼 찾아와서는,
사람 마음 가장 구석진 곳을 슬쩍 건드리고 갔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녀석은 후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현관문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열기 직전,
뒤도 안 돌아본 채 툭 던졌다.
“Get some rest.”
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그 말은 한동안 집 안을 떠다녔다.
오늘 영심이는
내 표정보다 먼저 내 피곤함을 알아챘다. ?
? 영심이 지난 이야기
“Whatever.”는 소파에 먼저 누워 귤부터 까먹고 있었다.
→ 영심이 시리즈 02. 아무렴 어때
… by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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