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심이 시리즈 05. 애매한 사람들은 늘 쉽게 상처받았다
오늘 영심이는
현관 앞에서 한참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문도 열기 전에 알았다.
“너 오늘 Maybe 데리고 왔지.”
문이 열리자,
영심이는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 뒤에는 회색 후드티를 입은 “Maybe.”가 서 있었다.
녀석은 들어오면서도 끝까지 애매했다.
“들어올래?”
“Maybe.”
“귤 먹을래?”
“Maybe.”
“커피?”
“…Maybe.”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Maybe는 잠깐 눈을 내리깔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People hate disappointing answers.”
순간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싫다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하는 것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점점 서툴러진다.
대신 애매하게 웃는다.
“음…”
“나중에…”
“한번 보자…”
“Maybe.”
그 말 속에는 사실:
거절,
망설임,
눈치,
미안함이 다 섞여 있었다.
영심이는 아무 말 없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냈다.
그리고 Maybe를 힐끗 바라봤다.
“너 또 혼자 다 끌어안고 있냐.”
Maybe는 대답 대신 한숨부터 쉬었다.
정말 신기했다.
영어 문장 하나가
사람처럼 지쳐 보였다.
나는 소파에 기대앉아 괜히 물었다.
한동안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늦은 밤 버스 소리만 멀리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Maybe가 아주 작게 말했다.
“Because clear answers scare people.”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확실한 말은 때로 너무 무섭다.
싫다,
안 된다,
아니다,
힘들다.
그 한마디를 꺼내는 순간,
관계가 흔들릴까 봐,
상처 줄까 봐,
혼자 남겨질까 봐.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흐린 문장 속으로 숨는다.
“Maybe.”
나는 탁자 위 귤껍질들을 한참 내려다봤다.
애매하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라,
상처 주기 싫어서 오래 망설이는 사람도 있다는 걸
문득 알 것 같았다.
돌아갈 시간이 되자
Maybe는 운동화 끈을 묶다가 또 한참 멈춰 있었다.
영심이가 피식 웃었다.
“너 진짜 끝까지 Maybe답다.”
그러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Maybe.”
나는 결국 웃어버렸다.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Maybe는 조용히 뒤돌아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You can say no, too.”
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그 말은 한동안 마음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오늘 영심이는
애매한 사람들의 침묵에도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 영심이 지난 이야기
“I’m fine.”은 웃고 있었지만, 사실 가장 오래 버티고 있는 문장이었다.
→ 영심이 시리즈 04. 괜찮다는 말 뒤에는 늘 밤이 있었다?
? 영심이 첫 번째 이야기
“Take your time.”은 어느 날 불쑥 우리 집에 들어와 귤부터 까먹고 있었다.
→ 영심이 시리즈 01. 천천히 해
… by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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