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보다 덜 판단한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사람을 잘 읽는다고 믿었다. 그게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태도, 말투, 선택을 분석하고 그 안의 동기를 추측하는 데 익숙했다. 그걸 통찰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알게 되었다. 그 통찰 안에 섞여 있던 작은 우월감과 조용한 재단의 습관을.
최근 회의 자리에서였다. 베트남 공장을 관리 운영한 지 6년이 넘었다. 900명 가까운 사람들과 매일 부딪히며 살아왔다. 그 세월만큼 나는 사람을 빨리 읽는 데 익숙해졌다. 익숙함이 언제부터인가 판단이 되었고, 판단이 단정이 되었다.
그날도 상대는 여전히 방어적이었고, 말은 날카로웠고, 바카라임은 흐릿했다.
예전의 나는 속으로 정리했을 것이다. "역시 저 사람은 저렇다." "저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은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멈추게 되었다.
그 사람의 말 뒤에 있는 불안이 보였다. 실수에 대한 초조함,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긴장, 인정받지 못할까 봐 먼저 세우는 방어. 그 순간, 판단이 멈췄다. 대신 이해가 들어왔다.
놀랍게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설득하려는 마음도 줄어들었다. 그저 듣게 되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나는 사람을 바꾸려 애써왔지만 사실은 사람을 재단하고 있었다는 것을.
편견은 거친 말로 드러나지 않는다. 조용히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려버리는 태도로 남는다.
나는 그 결론을 빨리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결론 대신 질문이 남는다. "왜 저럴까"가 아니라 "무엇이 저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시선이 바뀌자 사람이 달라 보였다.
그 이후로 같은 사람과 몇 번을 더 마주쳤다. 상대는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방어적이었고, 여전히 날카로웠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날카로움을 나를 향한 공격으로 읽지 않았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으로 읽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회의가 덜 소모적이었다. 결론이 빨리 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가 이기지 않아도 괜찮았다.
상대는 여전히 불완전했고, 상황은 여전히 복잡했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 태도가 달라졌다.
나는 더 이상 상대를 이겨야 할 존재로 보지 않는다. 함께 통과해야 할 존재로 본다.
이 변화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기준이 내 안에서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나 역시 방어하고, 두려워하고, 때로는 바카라임을 피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타인을 향한 단정이 줄어들었다.
편견이 사라진 날, 나는 키가 커진 느낌을 받았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비교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서기 시작하니 사선에서 재단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여전히 판단한다. 그러나 판단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말한다. 그러나 먼저 들으려 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간다. 그러나 혼자 옳으려 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방향이 바뀌면 시선도 바뀐다는 것을.
— 쉼표 JEONG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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