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의 산행과 요즘의 산행은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시간이 중요했다. 몇 시에 출발했고, 몇 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으며, 전체 산행에 얼마나 걸렸는지 확인했다. 누군가 앞서가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산에서도 성과를 확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요즘은 조금 느려졌다. 아니, 어쩌면 몸이 먼저 속도를 낮춰주었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걸으면 숨이 먼저 알려준다.
“조금 천천히 가자.”
처음에는 그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걸음이 느려지자 뜻밖의 일이 생겼다. 산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빠를 때는 길만 보였다
빨리 걸으면 발밑을 많이 본다. 돌을 피하고, 앞사람을 따라가고,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생각한다. 목적지가 분명할수록 길은 통로가 된다.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천천히 걸으면 길이 통로에서 풍경으로 바뀐다. 나무껍질의 무늬가 보인다. 바위틈에서 자란 작은 풀도 눈에 들어온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통과해 흙길에 내려앉는 모습도 보인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전에도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너무 빨리 지나갔을 뿐이다.
그때 생각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속도로 걷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느림에는 다른 시력이 있었다
속도가 느려지면 세상이 작아지는 줄 알았다. 살아보니 반대일 때가 있었다. 천천히 걸으면 작은 것이 커진다. 이름 모를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오고, 바위 위의 이끼가 하나의 숲처럼 보인다. 바람의 방향도 느껴진다. 같이 걷는 사람의 숨소리도 들린다.
삶에서도 그랬다. 바쁠 때는 사람의 말만 들었다. 조금 여유가 생기니 말 사이의 침묵이 들렸다.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표정은 괜찮지 않은 사람.
“별일 아닙니다.”
라고 웃었지만 목소리 끝이 조금 무거운 사람.
속도를 늦추어야 그런 것이 보였다. 사람의 마음에는 빨리 읽으면 빠뜨리는 문장이 많았다.
뒤처진 것이 아니라 내 보폭을 찾은 것이다
산에서 젊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갈 때가 있다. 발걸음이 가볍다. 금세 멀어진다. 예전 같으면 나도 모르게 속도를 조금 높였을 것이다. 요즘은 그냥 길을 내어준다.
“먼저 가세요.”
그리고 다시 내 걸음으로 돌아온다. 그 말이 참 편해졌다. 누군가 나보다 빨리 간다고 해서 내가 늦은 것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의 보폭이 있고, 나에게 내 보폭이 있다.
목적지가 같아도 도착하는 시간은 다를 수 있다. 삶도 그렇다. 남이 앞서간다는 이유만으로 내 삶이 뒤처진 것은 아니다. 남의 속도를 빌려 걷다 보면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내 호흡이다. 산에서 호흡을 잃으면 오래 걷기 어렵다. 삶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걷는다는 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느림을 무조건 아름답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빨리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결정해야 할 순간에는 결단이 필요하고, 일을 할 때는 속도와 효율도 중요하다.
문제는 모든 순간을 같은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달려야 할 때 달리고, 걸어야 할 때 걷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는 것. 그것이 오히려 삶의 리듬에 가깝지 않을까.
음악도 빠른 음만 이어지면 아름답지 않다. 느린 음이 있고, 쉼표가 있으며, 때로는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도 있다. 그래야 다음 음이 살아난다. 삶도 쉼표가 있어야 문장이 숨을 쉰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데 결국 닿는다
산길에서 계곡물을 바라볼 때가 있다. 물은 급해 보이지 않는다. 바위를 만나면 싸우지 않는다. 돌아서 간다. 틈이 있으면 그 사이로 흐른다. 잠시 웅덩이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아래로 간다.
노자는 『도덕경』 제8장에서 물을 최고의 선에 비유했다.
上善若水(상선약수).
나는 이 말을 산에서 조금 다르게 읽곤 한다. 물은 느려 보여도 멈추어 있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지만 방향을 잃지도 않는다. 그 모습이 좋다. 천천히 간다는 것은 목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흐름을 잃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
산에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나 역시 그렇다. 사진은 기억을 붙잡아주는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가끔은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사진 한 장 남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구름이 능선을 넘어가고, 햇빛이 산 아래로 번지는 모습을 눈으로 오래 본다. 그런 장면은 사진보다 흐릿하게 기억될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에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모든 것을 기록해야만 가진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순간은 붙잡지 않을 때 더 온전히 내 것이 되기도 했다.
천천히 걸으니 사람이 보였다
산길을 빨리 걸을 때는 앞사람의 등이 보인다. 천천히 걸으면 옆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힘들지 않으세요?”
묻게 된다. 함께 물을 마시고, 잠시 바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산행이 정상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건너는 일이 된다.
인생의 후반에 내가 배우고 싶은 것도 이것이다.
앞사람을 따라잡느라 옆사람을 놓치지 않는 것.
먼 목적지를 바라보느라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배경으로 만들지 않는 것.
성과와 속도 때문에 사람의 표정을 지나치지 않는 것.
젊은 날에는 빨리 가야 많은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천천히 가야 깊이 만날 수 있는 것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걸음은 조금씩 느려질 것이다. 예전보다 더 자주 쉬어야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것을 잃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속도가 가져간 자리에 다른 감각이 들어올 수도 있다.
빨리 걷느라 보지 못했던 것, 앞만 보느라 지나쳤던 사람, 바빠서 듣지 못했던 내 마음. 그런 것들이 하나씩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느려진 걸음을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려 한다. 산길에서 숨이 차면 멈춘다. 물을 마신다.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정상은 도망가지 않는다. 삶도 언제나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만 좋은 풍경을 내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보니 속도가 줄어든 자리에는 뜻밖의 선물이 있었다. 빠른 걸음에는 도착이 있었고, 느린 걸음에는 발견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도착한 곳의 수보다, 걸어가는 동안 무엇을 보고 누구와 함께했는지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