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을 읽히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세계를 넓혀 주기 위한 독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바카라육아를 하고 싶었다.
거창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카라을 가까이에 두고 자주 읽어주다 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바카라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째를 키울 때는 백 권 정도의 바카라을 여러 번 읽는 방법을 택했다.
읽었던 바카라을 또 가져오면 또 읽어주었다.
좋아하는 바카라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아이에게도 바카라 취향이 있다는 것.
어떤 바카라은 한 번 읽고 다시 찾지 않았고, 어떤 바카라은 몇 번이고 가져왔다.
내가 좋아할 것 같아 골라준 바카라보다 아이가 직접 고른 바카라을 훨씬 좋아할 때도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도 그랬다.
내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바카라을 또 고르기도 했고, 한동안 같은 분야의 바카라만 골라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에게 좋은 바카라을 골라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고르는 것보다 아이가 무엇을 고르는지 바라보는 일이 더 재미있어졌다.
좋아하는 바카라은 여러 번 읽어도 좋았고, 비슷한 바카라을 계속 골라도 괜찮았다.
도서관에서 몇 번이고 다시 빌리는 바카라은 사주기도 했다.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는 아이들이 정말 갖고 싶어 하는 바카라을 직접 골라 자기 바카라으로 갖게 해주었다.
자기 바카라이 생기니 조금 달랐다.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부분만 펼쳐보기도 했다.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하고, 바카라에서 알게 된 것을 내게 설명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바카라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만이 독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바카라을 자꾸 꺼내보는 것도,
한 장면에 오래 머무는 것도,
읽은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도,
모두 그 아이만의 바카라 읽는 방법이었다.
바카라을 고르는 일이 쌓이면서 아이의 취향은 조금씩 더 분명해졌다.
처음에는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들어 한 권을 골랐다.
재미있게 읽은 바카라이 생기면 비슷한 바카라을 또 찾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한 권을 재미있게 읽고 나면 물었다.
“이 작가가 쓴 다른 바카라도 있어?”
그러면 함께 찾아보았다.
도서관 바카라장에서 같은 작가의 다른 바카라을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이 더 있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한 권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 또 다른 바카라으로 건너갔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가의 바카라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같은 바카라을 읽으니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누가 제일 재미있었는지,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지난번 바카라과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른지.
때로는 아이가 아주 좋아하는데 내 취향에는 잘 맞지 않는 바카라도 있었다.
반대로 아이 덕분에 읽기 시작했다가 내가 더 재미있게 읽은 바카라도 있었다.
같은 바카라을 읽는다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내가 별생각 없이 지나간 장면을 기억했고,
나는 아이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문장에서 오래 머물기도 했다.
한 권의 바카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도 함께 바카라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에게 바카라을 읽어주었다.
바카라장을 넘겨주고 글을 읽어주고, 아이가 물으면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의 자리가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골라준 바카라을 아이가 읽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바카라을 내가 따라 읽는 일이 생겼다.
나는 아이에게 바카라을 읽어주는 사람에서
아이와 바카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 변화가 좋았다.
바카라은 더 이상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만이 아니었다.
같이 웃을 이야기가 생겼고, 서로의 생각을 물어볼 것이 생겼다.
아이의 취향을 알게 되는 방법이기도 했다.
어떤 바카라을 좋아하는지 알고 나면 그다음 바카라을 고르는 것도 쉬워졌다.
비슷한 바카라을 찾아주기도 하고, 조금 다른 분야의 바카라을 슬쩍 건네보기도 했다.
읽지 않아도 괜찮았다.
바카라장에 오래 꽂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꺼내 읽는 바카라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조금 어려워 보이는 바카라도 아이가 궁금해하면 보여주었다.
다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몇 장만 읽고 덮어도 괜찮았다.
궁금해서 한번 펼쳐본 경험도 아이에게는 남는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바카라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카라육아를 하고 싶었던 엄마였으니 읽은 바카라이 쌓이는 모습을 보면 뿌듯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이들과 바카라을 읽고 나니 숫자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었다.
취향이었다.
아이는 좋아하는 바카라을 골랐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다시 읽었고,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따라 또 다른 바카라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자기만의 독서가 만들어졌다.
나도 조금 달라졌다.
좋은 바카라을 골라주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를 지나,
아이가 고른 바카라을 궁금해하는 엄마가 되었다.
“이 바카라이 왜 좋아?”
그 질문을 하면 아이는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카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재미있어하는 것과 궁금해하는 것이 들어 있었다.
바카라은 아이에게 세상을 보여주었고,
아이가 고른 바카라은 내게 아이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바카라을 좋아하던 아이에게 바카라을 더 건넸다.
많이 읽으라고 건넨 것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바카라을 발견했다면 그 옆의 바카라도 한번 만나보고,
마음에 드는 작가를 찾았다면 그 사람이 만든 또 다른 세계에도 가보라고.
네가 좋아하는 세계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조금 더 가봐도 좋다고 바카라을 건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그 옆에서 함께 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