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는 대신, 좋아하는 것을 오래 바라봐주는 일
큰아이가 다섯 살 때였다.
아이는 탈것을 참 좋아했다.
자동차도 좋아했고, 버스도 좋아했고, 기차도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는 길에서 청소차를 보고 너무 타보고 싶다며 청소부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어느 주말이었다.
아빠가 출근한 날이라 아이 둘과 셋이 마트에도 다녀오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제법 알찬 하루였지만
큰아이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엄마와 둘만의 지하철 데이트.
늦은 오후라 조금 쌀쌀했지만 아이는 신이 났다.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지하철을 탔다.
탈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어디에 가느냐만큼 무엇을 타고 가느냐도 중요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옆자리에 앉은 누나에게 귀엽다는 말을 듣고 쿠키도 얻어먹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는 좋아하는 KTX와 기차를 마음껏 바라보았다.
특별한 체험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와 기차를 보러 갔다.
그날 집에 돌아와 육아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알차고 야무지게 엄마와 둘만의 데이트 완료.’
지금 다시 읽어보면 웃음이 난다.
그때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아이가 좋아하니까 같이 보러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나는 조금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했다.
탈것을 좋아하면 관련 바카라을 찾아주었고,
바카라을 읽다가 비행기가 궁금해지자 비행기에 관한 바카라과 자료도 함께 찾아보았다.
그리고 바카라으로 보던 것을 직접 보고 싶어 하면 공항에도 갔다.
차가 있었지만 아이와 특별한 데이트를 하는 날에는 일부러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기도 했다.
아이에게는 가는 길도 즐거움이었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아이의 재능을 빨리 찾아내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섯 살 아이가 기차를 좋아하면 기차를 보러 갔고, 자동차가 좋다고 하면 자동차를 함께 보았다.
비행기가 궁금해지면 비행기를 보러 갔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알려주기보다 아이가 이미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을 볼 때 오래 머무는지,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말이 많아지는지,
어디에 가고 싶다고 자꾸 이야기하는지.
가만히 바라보면 아이는 생각보다 분명하게 자기 마음을 보여주었다.
“이게 좋아?”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래? 그럼 우리 조금 더 보러 갈까?”
그렇게 한 걸음 더 가보았다.
좋아하는 것이 달라져도 괜찮았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것도 아이의 마음이니까.
아이의 세상을 넓혀주고 싶었다.
예전에는 부모가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아이의 세상이 넓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다니다 보니 조금 다르게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는 이미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이 있었다.
어른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청소차 한 대인데 아이에게는 한참을 바라보고 싶은 것이었고,
어른에게는 이동수단일 뿐인 지하철이
아이에게는 엄마와 함께 타는 것만으로 신나는 데이트가 되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보여줄 것을 고르기 전에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바라보는 일이 먼저였다.
네가 그렇게 좋아한다면,
엄마도 네 옆에서 조금 더 같이 보고 싶다는 마음.
아이의 세상을 넓혀준다는 것은 부모가 더 큰 세상을 골라 보여주는 일만은 아니었다.
아이가 먼저 바라본 작은 세계에 함께 들어가
그다음 문 하나를 열어주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며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