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보다 아이를 믿는 쪽을 선택했다

흔들릴 때마다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를 다시 바라보는 마음

by트윙클쥬


“학원 안 다녀도 괜찮겠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꽤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다들 하는데 너무 늦는 것 아니야?”

“지금쯤은 시작해야 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해?”


그런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도 불안했다.


다른 집 아이가 어느 학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렸고,

벌써 몇 학년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아이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괜찮을까.

내가 너무 느긋한 걸까.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아이를 믿는다고 해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지고, 흔들리기도 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남의 아이보다 내 아이를 다시 보려고 했다.


요즘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신이 나는지.

조금 어려워도 스스로 해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단순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찾아주면 되고,

아직 필요하지 않다면 남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학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필요하고 아이가 원한다면

학원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내가 조심하고 싶었던 것은 학원 자체가 아니라,

불안한 마음에 정작 내 아이를 놓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원을 선택할 때도, 선행을 고민할 때도,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때도 같은 기준으로 아이를 바라보려고 했다.


남들이 하니까 시작하기보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지, 아이가 정말 해보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했다.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경험을 쌓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궁금해하고 해보고 싶어 하는 일이 있다면

그때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우리 집의 거창하지 않은 기준이었다.


몰라서 기회를 놓치게 하지는 않되,

불안해서 필요하지 않은 길을 서둘러 걷게 하지 않는 것.


물론 지금도 흔들린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선택해야 할 것은 많아지고,

입시가 가까워질수록 부모가 알아야 할 것도 많아졌다.

주변의 속도가 눈에 들어오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예전과 비슷한 질문이 다시 찾아온다.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하고 있을까.

우리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다시 아이를 본다.

지금 내 아이는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아이를 보고 그 답을 짐작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이제는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정보를 찾아본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이보다 앞서 길을 정해주는 일도 아니었다.

아이가 자기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바라보고,

필요할 때 손을 내미는 것.

그러면서도 그 손으로 아이를 끌고 가지 않는 것.


아마 앞으로도 나는 흔들릴 것이다.

아이들이 더 자라면 지금보다

훨씬 큰 선택 앞에서 고민할지도 모른다.

다른 아이를 보며 마음이 급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 돌아오고 싶다.

남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남들이 정한 속도가 아니라 우리 아이의 속도에게.


나는 불안하지 않아서 아이를 믿었던 것이 아니다.


불안할 때마다,

불안보다 아이를 믿는 쪽을 다시 선택해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