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하고 무더운 여름이 오면 여성들은 인견, 마, 삼베, 아스킨 같은 시원한 소재의 옷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바람이 잘 통하는 섬유를 입어도 여름은 여전히 덥고 답답하다. 범인은 옷 속에 숨어 있다. 바로 몸을 죄어오고 가슴 주변에 열기를 가두는 브래지어 때문이다.
속옷 회사들은 매년 더 편하고 시원한 제품을 만들어낸다지만, 살을 누르고 땀을 차게 만드는 본질적인 답답함까지 없애지는 못한다. 얼마 전 동창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답답함'이 화두에 올랐다.
한 동창이 딸과의 일화를 털어놓았다. 딸아이가 딱 붙는 흰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수영장에 가려하기에 유두 자국이 보인다며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더니, 딸이 "브래지어 안 했다고 뭐라 하는 건 엄연한 차별이에요"라며 당당하게 맞섰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과거 우리가 브래지어를 처음 접했던 시절로 돌아갔다.
1970년대 중학교 시절, 여름이면 하얀 얇은 교복 상의를 입었다. 그 시절의 '정석'은 브래지어를 하고, 그 위에 메리야스를 입고, 다시 교복을 입는 것이었다.
가정 시간만 되면 선생님은 학생들의 등 뒤를 확인하며 브래지어 착용 여부를 검사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학생은 막대기로 등을 맞으며 "왜 브래지어를 안 했냐"는 질바카라을 들어야 했다. 그때 우리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이 마치 무언가 큰 잘못이라도 되는 양 죄바카라감을 느끼며 자랐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그리고 규율이라는 틀에 몸을 맞춰가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렇게 몸에 밴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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