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가을 아욱국

by해윤이

시장 할머니들의 좌판 위에서 햇볕에 시든 아욱을 보았다. 그 아욱은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손등만큼이나 건조해 보였다. 문득 올해 아욱국을 한 번도 끓여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구수한 아욱국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듯했다.


어린 시절인 1960~70년대에는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다. 우리 밭에도 봄가을로 아욱을 심었다. 아욱은 키가 크면서 연보랏빛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그때가 아마 보릿고개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 아욱으로 죽을 쑤어 주셨다. 구수하고 따뜻하던 아욱죽이 오늘 문득 그리워진다.


결혼하고 나서 나는 아욱을 잎이 부서질까 살살 씻어 국을 끓였다. 그러다 친정에 갔을 때 올케언니가 아욱을 다듬는 것을 옆에서 거들게 되었다. 언니는 줄기를 손으로 꺾어 껍질을 벗겨 냈다. 잎도 잎자루를 꺾어 껍질을 벗기는데, 껍질이 잎 뒤쪽까지 따라 올라오며 벗겨졌다. 그런 다음 쌀뜨물에 넣고 손으로 치대기 시작했다.


"언니, 그러면 잎이 다 부서지잖아요."


올케언니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아가씨가 아직도 아욱 손질을 할 줄 모르나 봐요."


엄마는 "공부하고 바로 온라인 게임 다니느라 뭘 배웠겠냐"며 올케언니에게 가르쳐 주라고 하셨다. 나는 머쓱해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옆에 앉아 언니의 손놀림을 눈여겨보았다. 아욱을 한참 치대자 초록 물이 나왔다. 풋내와 미끌거림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했다. 맑은 물로 초록 물이 가시도록 몇 번을 헹구고 채반에 건져 물기를 뺐다. 된장 푼 물에 보리새우 한 줌을 넣고 물이 팔팔 끓을 때 아욱을 넣어 30분쯤 끓이자 구수하고 진한 아욱국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올케언니에게서 아욱국 끓이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국을 뜨던 올케언니가 물었다.


"아가씨, 가을 아욱국 속담 아세요?"


그 말에 머릿속 저 밑에 있던 속담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가을 아욱국은 사위만 준다."
"가을 아욱국은 문 닫아걸고 먹는다."
"가을 아욱국은 계집 내쫓고 먹는다."


"그만큼 아욱국이 맛있다는 뜻이죠?"


"그렇죠. 그런데 이런 속담도 있어요. '아욱으로 국을 끓여 3년을 먹으면 외짝문으로 못 들어간다.' 아욱국이 몸에도 그만큼 좋다는 뜻이에요."

아, 그래서 속담으로 남았군요.

"맞아요. 맛만 좋았다면 속담과 기록으로 남지 않았겠죠."


그렇다, 아욱은 맛만 좋은 것이 아니다. 칼슘과 베타카로틴, 비타민 A, B, C 등이 풍부해 시금치에 맞먹는 녹황색 채소다. 한방에서는 아욱을 '동규', 씨앗을 '동규자'라 하여 약재로 기록해 두었다.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오장육부의 한열을 없애며 젖이 잘 나오게 한다고 하고, 씨앗은 신장결석에 쓰였다고 한다. 아욱은 음식으로 먹어도 좋고 약으로 써도 좋은 채소인 셈이다.


이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다가 녹내장으로 마음 졸이는 친구가 떠올랐다.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영양소가 많으니 올가을엔 아욱국으로 눈 건강을 챙기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 역시 올가을에는 엄마가 끓여 주시던 아욱죽도 끓이고, 요즘 온라인 게임 일로 힘들어하는 며느리를 위해 맛있는 아욱국도 끓여야겠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해윤이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하루하루 경이로운 삶을 기록하는 사람. 23년째 교실 밖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현장을 지켜왔고, 그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전합니다.

1,91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3화추석엔 송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