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그 시절의 내가 기다린 것은.

bygrassrain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 상황 되는대로, 누군가 가라는 대로 움직였다. 원치 않은 곳, 여기저기에 고여 있었다. 때론 나를 부르는 곳으로 흘러갔다.

넘치지 않았어도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유년 시절이었다. 집이란 곳은 항상 있었지만 편안했던 기억은 없다. 그 안에서도 제 몸뚱이 하나를 제대로 움직일 힘이 나에겐 없었다. 부모님의 말대로 게으르고 느린 아이라고 기억된다. 나름 세상에 맞춰 움직이려 노력했지만 주로, 대부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항상 졸려웠다. 일상에 금방 지쳤고 버거웠다. 학업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도 매달릴 마음은커녕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난 항상 희멀갰다. 내 머릿속은 뿌옇고 매쾌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나를 찾기란 아주 어려웠다. 얇디얇고 투명하다시피 한 여러 개의 '나'들이 서로 얽혀 굴러다녔다. 아주 가끔 흐릿하게나마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나'가 필요한 어느 날에 그들 중 끄트머리 하나가 잡히면 그 어느 날의 '나'가 되어 살았고, 또 다른 운 좋은 날에 운이 나쁜 '나'가 걸려들면 또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나'들은 모두 희미했고 허술했다. 그렇게 많은 하루들과 '나'들이 포개어지고 겹쳐져가며 시간을 꾸역꾸역 이어왔다.

흐리멍덩하고 불분명한 것 투성이인 와중에 확실하고 또렷한 게 하나는 있었다. 여느 밤낮이라도 원한다면 하루와 하루 사이를, '나'와 '나' 사이를 쉽게 끊어버릴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이었다. 그 사실만은 아주 또렷했고 확실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나에게 참고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새로운 하루가 필요한 적 없었고 기대되는 '나' 또한 없었지만, 쉽게 끊어내는 건 항상 미루었다. 아마도 난 무언가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하면 안 되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게 되었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디에 있건 부끄러웠고 숨고 싶던 나는 그늘의 그림자로 스며들어 사라지고 싶었다. 사람은 그림자가 될 수도 없었고, 날 온전히 숨길 수 없었지만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는 적당한 곳을 찾아냈다. 바카라상 의자. 난 항상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비록 되고 싶은 게 물거품, 그림자, 지렁이 따위였지만, 어린 시절엔 종종 동화 속 인물처럼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꾸었다. 도망가는 내 그림자를 뒤쫓다가 내 바카라상 의자를 찾아내어 반갑게 앉았는데 몸이 점점 부풀며 커진다. 의자를 부숴버리고, 집 천장을 머리가 뚫는다. 집을 부수어 혼나면 어쩌지 싶다가 나를 보호해 줄 의자가 부서져버려 당황하고 초조해진다. 몸이 건물만큼 커졌지만 내가 숨어 들어갈 그림자는 커지지 않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이상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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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제 글이 읽히는 건 부끄럽지만, 어떤 누군가에겐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지면 좋겠어요. (글쓰기로 생긴 수입은 길 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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