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자.

10월_ 글채집_10년 전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한마디

bygrassrain


가을이 시작될 때의 하늘 모양이 참 좋다. 한층 더 깊고 짙어진 하늘에 촘촘한 구름들이 두텁게 떠다니는 요즘. 이런 가을 하늘을 보면 여러 감정들이 떠오른다. 무슨 감정이라고 하나씩 구분 짓고 정의 하긴 어렵다. 좋고 싫은 여부를 떠나서 여러 감정들로 마음이 풍부해지는 게 좋다. 무엇보다도 금세 사라질 하늘의 모습이 아쉬워 자꾸 쳐다보게 된다. 뻑뻑한 모카빵을 입 안 가득 오물거리다가 식도의 중간쯤을 지나가는 순간, 그 숨 막히는 찰나를 만끽하다가 시원한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켠다. 정수리까지 뻥 뚫리는 시원함. 역시 아는 맛이 제일 맛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뭘 그만하고 싶은 걸까? 몸에 안 좋은 빵을 그만 먹고 싶은 건지, 날씨가 추워져서 차가운 커피를 그만 먹고 싶은 건지… 며칠째 빵과 커피만 먹고 있다. 하긴, 둘째 젖 뗀 지 얼마 안 됐다고 내 끼니도 더 안 챙기고 먹고 싶은 대로 마구 먹어댄다. 하지만 오후쯤 되면 한 번 더 카페인과 정제된 탄수화물의 기운이 퍼져있어야 몸이 움직여진다. 집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쳤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에서 가까운 파리바게트도 있지만, 일부러 더 먼 파리바게트까지 가서 빵과 커피를 샀다. 그 덕분에 둘째 아이는 유모차에서 오전 낮잠에 들었다.

요즘 들어 자꾸 어디서 ‘멈춰!’ ‘그만해.’라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이제 애들도 많이 크고 젖을 떼니 밤 잠도 잘 잔다. 힘들 것도 딱히 없는데,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난 도대체 뭘 그만하고 싶다는 걸까? 얼마 전엔 설거지를 시작하자마자 그만하고 싶다는 강한 생각에 압도되어 고무장갑을 벗어 빼 던지고 부엌을 뛰쳐나왔다.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다.’

또 그만하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우뚝 멈춰 선다. 구름 없는 하늘 한쪽을 찾아 가만히 본다. 유모차를 꼭 움켜쥔 양손을 슬쩍 풀어낸다. 유모차 밀며 걷기를 그만하고 싶은 건 아닌 듯하다. 도대체 뭘 자꾸 그만하고 싶은 건지 도통 모르겠다. 혹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미래의 내가 보내는 메시지 같은 걸까?


>> 모든 걸 멈추고 도망쳐! 가능하다면 가장 먼 곳으로. <<

도망? 3살과 6살 어린애 둘이 하루 종일 나만 바라보고 있는 걸. 애들 두고 혼자 잠깐도 절대 못 나가지. 어디 가고 싶은 곳도 없어.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안전함이 갖춰지고 익숙한 집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놀게 해주는 거 지켜보는 게 훨씬 나아. 밖에 나가면 더 긴장되고 피곤해져.


>> 연차는커녕, 주말도 없지. 모두 다 그만둬버려. <<

맞아. 내 직업은 주부지. 그런데 그전에 난 애 둘 엄마야.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는 엄마는 절대 쉴 수가 없어. 첫째는 결혼하고 바로 생겼고, 둘째는 남편이 너무 원하여 낳게 됐지. 맞아. 주말에 아무런 방해 없이 늦잠이라도 실컷 자며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아니, 사실 삼시세끼 챙겨야 하는 주말이 더 싫어. 지금 이 상황이 엄청 억울해. 주부도 엄마도 어쩌다가 하게 됐어. 되돌릴 수도 없어. 지금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게 내 운명인가 봐. 둘째를 낳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미 다 체념했어.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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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제 글이 읽히는 건 부끄럽지만, 어떤 누군가에겐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지면 좋겠어요. (글쓰기로 생긴 수입은 길 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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