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_4

요즘, 이제서야

bygrassrain

한 치의 의심 없이 글에 집중한다. 글 속으로 뛰어들어 마음껏 휘젓고 다닌다. 단어를 고르고 맞추어 나가다 보면, 감정은 응축되어 또렷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글 속에서 건져 올린 알찬 감정은 헐거웠던 일상을 가득 채워 준다. 글 속에 묵직했던 생각을 풀어놓으면 가벼운 일상을 누릴 수 있다. 글 하나와 나의 일주일은 그렇게 연결된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은 길고 억세다. 얼추 글에 집어넣은 것 같아도 그 끝이 매끈하지 않다. 끊어지지도 잘리지도 않다. 글 하나를 얼버무리며 일단락해도 끈덕진 감정은 현실과 끈끈하게 연결된다. 물론 저 깊은 곳에 오랫동안 두텁게 자리 잡고 있던 거라서, 그리고 다루기 어려운 생각이라서 일테다. 문젯거리를 떠맡을 본체가 야물지도 못하거니와 얼렁뚱땅 글 속에 구겨 넣으려다 보니 어설프다. 당분간 저런 건 쳐다보고 싶지도 싶다.

특히 나를 따끔하게 만드는 죄의식은 제일 만만치 않다. 만질 때마다 가시가 박히는 것 같다. 억지로 긁어 뜯어낸 가시랭이들은 다듬은 티도 안 난다. 떨궈진 자잘한 잔해라도 맨손으로 치워 정리해 본다. 소소한 후련함도 잠깐이다.

감정의 찌꺼기들 중, 불안은 덩굴 같다. 나는 두르기 쉽고 뻗어나가기에 아주 알맞다. 다시금 나를 둘러싸고 졸라매며 기어 올라온다. 단물이 한참 남은 나를 거머리같이 빨아들인다. 그것들에게 나를 맡겨 버린다.

어쩔 수 없이 둘러싸여 함께 해야 함을 깨달았다. 아직 털어낼 힘도 인정할 힘도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더 이상 떼어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 아랑곳하지 않으련다.

아주 오랜만에 긴 한숨이 나온다.




따지고 보면 글을 쓴다고 감정이 옅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전에 막연하고 짙어 보였던 것들이 글을 쓰면 자세하게 보인다. 서서히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꼬인 생각과 뒤섞인 감정들을 한 겹 한 겹 떼어내며 글 속에 넣는 걸까? 내가 어떤 생각과 감정에게 곧잘 제압당하는지 조금씩 알아채간다. 이런 게 감정을 알아차리고 소화시키고 있는 걸까? 비슷한 글을 더 많이 써나가야 하는 걸까? 생각을 얼마나 더 정리해 나가야 하는 걸까? 시간에 맡겨야 하는 걸까? 아는 게 더 많아져야 할까? 혹시 잘못 파악하고 있는 걸까?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정확한 걸까? 부정적인 감정을 이렇게 계속 느끼는 게 당연한 걸까?

정신과 선생님에게 죄바카라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도 모르게 눈물 한 줄기가 내려왔다. 나는 당황했지만, 선생님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선생님의 부담스럽지 않은 반응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평소보다 더 감사했다. 눈물에 대한 위로 따위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처방약을 기다려야 할 땐 셀 수 없는 눈물 줄기가 내려와 날 뽑아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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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제 글이 읽히는 건 부끄럽지만, 어떤 누군가에겐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지면 좋겠어요. (글쓰기로 생긴 수입은 길 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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