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999년 봄, 덕포.
정현은 한쪽 운동화만 걸쳐 신은 채 부엌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엄마, 왜 안 깨웠어?”
어머니가 냄비 뚜껑을 들었다. 끓어오른 김이 얼굴을 가렸다가 걷혔다. 뒤통수에 대충 집어 올린 머리에서 몇 가닥이 빠져나와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앞치마 배 부분에는 젖은 손으로 훔친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세 번 깨웠다.”
“엥? 못 들었는데.”
“일어났다고 대답까지 하더라. 아주 또박또박.”
정현은 더 따지지 않고 나머지 운동화에 발을 밀어 넣었다. 뒤축이 접혔다. 손가락을 넣어 펴다가 벽시계를 봤다. 일곱 시 이십삼 분.
새 학기 두 번째 목요일이었다.
“아, 오늘 체육인데.”
“체육 있는 날은 밥 더 먹고 가야지.”
“수업 말고 교문. 체육 선생님이 오늘 교문에 선다고.”
어머니는 국자를 내려놓고 밥상 위의 도시락가방을 가져왔다. 밥통을 넣은 뒤 수저집이 빠지지 않았는지 지퍼를 다시 열어 확인했다. 정현은 빈손만 내밀고 발뒤꿈치를 들썩였다.
“한 숟갈이라도 먹고 가.”
“한 숟갈 먹다가 두 숟갈, 세 숟갈 결국 난 지각하고, 지각하면 죽어.”
“무슨… 선생님이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하니?”
“엄마가 그 손을 못 봐서 그래. 솥뚜껑이 따로 없어. 배구 실업팀에 있었다든가.”
어머니가 웃으며 가방을 내밀었다.
“오늘 햄 넣었다. 뛰다가 엎지르지 말고.”
정현은 가방을 받자마자 지퍼 틈으로 코를 가져갔다. 김치찌개 냄새에 허기가 몰려오던 참이었다.
“햄? 진짜? 몇 개?”
“세어 볼 시간 있으면 밥 먹고 가든가.”
“다녀오겠습니다!”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어머니의 말이 따라 나왔다.
“계단에서 뛰지 마!”
정현은 이미 두 칸 아래에 있었다.
바카라가방 한쪽이 유난히 무거웠다. 교과서 밑에 눌러 넣은 도복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어젯밤 늦게 빨아 베란다에 널었고, 아침에는 덜 마른 깃 부분을 다리미로 눌러 주었다.
목에 닿는 깃만큼은 꼭 바싹 말려 주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허벅지가 뻐근했다. 어제 코치가 마지막이라고 한 뒤에 시킨 하체 연습이 세 세트나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
“팔로 들려고 하지 말고. 당겨 들어가라고.”
코치가 정현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회색 운동복 목깃에서 초시계가 흔들렸다.
정현은 상대의 소매를 다시 잡았다. 손가락에 감은 테이프가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왼발을 당겨 딛고 몸을 돌렸다. 상대의 가슴이 등 위에 얹히기도 전에 팔부터 힘이 들어갔다.
“거기. 멈춰 봐.”
코치가 둘의 옆으로 와 쪼그려 앉았다. 정현의 엉덩이와 상대의 허벅지 사이에 손 하나가 들어갔다.
“이렇게 멀면 네가 저걸 팔로 다 들어야 된다니까.”
정현은 잡았던 소매를 놓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체육관 창문에는 밤이 내려앉았고, 유리 안쪽에는 형광등 아래 도복들이 비쳤다. 옆 매트에서는 후배들이 뒤로 넘어지며 바닥을 쳤다.
탁, 타닥. 소리가 맞다가 어긋났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에는 정현도 저쪽에서 낙법만 했다. 집에 와 오늘도 넘어지기만 했다고 투덜거리자 아버지는 웃었다. 한동안 체육관에서 돌아올 때마다 오늘은 몇 번 넘어졌느냐고 물었다.
이제는 넘어뜨린 횟수를 묻는 사람이 더 많았다.
도 대회에 나가 입상한 뒤부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메달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포항에서 열린 춘계 전국 중고 유도대회에도 나갔다. 그 대회에서 두 번 이기고 세 번째 판을 졌다.
남들은 전국대회에서 두 번이나 이겼다고 했지만, 정현에게 남은 것은 세 번째 상대의 깃이었다.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아귀에서 빠져나갔고, 다음 순간 천장이 보였다.
대진표는 아직 바카라상 유리 밑에 있었다. 자기 이름에서 올라간 선 두 개의 칸과, 더는 올라가 보지 못한 빈칸까지.
“다시.”
정현은 소매를 잡았다.
이번에는 당기며 발을 옮겼다. 허리를 낮추고 상대의 몸 밑으로 더 들어갔다. 등 위에 무게가 실렸다. 전에는 팔에만 매달렸던 무게가 몸 전체에 얹혔다가 앞으로 넘어갔다.
매트가 울렸다.
상대가 누운 채 숨을 뱉었다. 정현은 잡고 있던 소매를 당겨 일으켜 주었다.
“이번엔 좀 됐지?”
“나는 좀 안 됐으면 좋겠다.”
상대가 등을 문지르자 정현이 웃었다. 몇 번을 버티던 몸이 방금은 제 발을 따라 넘어왔다. 힘을 덜 썼는데도 그랬다. 한 번 더 하면 똑같이 될 것 같았다.
“그거 기억해. 힘만 주려고 하지 말고.”
코치는 벽에 붙은 훈련 일정표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올해 중3이다. 이달 말 익산에서 열릴 지역 대회 준비하면서 진학 얘기도 해야 돼. 집에 말씀드리고. 덕포고 유도부는 내년에 신입 딱 세 명, 문덕고는 다섯 명 뽑는다니까.”
덕포고에 붙은 선배가 새 교복을 입고 체육관에 온 날, 정현도 후배들 줄에 서 있었다. 공부로 가기도 어렵고 유도부도 손꼽히는 학교였다. 다음에는 자기가 그 교복을 입고 오고 싶었다.
정현은 일정표의 대회 날짜를 봤다. 세 명 안에 들려면 세 번째 판에서도 깃을 놓치면 안 됐다.
“코치님, 저 한 번만 더 해 볼게요.”
도복 앞섶을 여미던 상대가 기막힌 얼굴로 정현을 봤다.
“너 때문에 나까지 못 가잖아.”
“내가 다음에 몇 번이든 받아 줄게.”
“진짜 마지막이다.”
정현은 다시 깃을 잡았다.
*
아파트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바다 쪽에서 비린 냄새가 올라왔고, 골목 슈퍼 주인이 철제 덧문을 힘겹게 밀어 올리고 있었다.
정현은 바카라가방을 등에 붙이고 도시락가방을 움켜쥔 채 뛰었다. 어제는 한 번만 더 하자던 다리가 오늘은 정류장도 멀다고 했다.
정류장 표지판 옆에 문정후가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가 조금 높이 솟아 있었고, 넓은 어깨 때문에 교복 윗옷이 등에 팽팽하게 걸렸다. 다문 입 아래로 턱선이 각지게 내려갔다. 왼쪽 눈가의 긴 흉터는 웃을 때 끝이 접혔다.
머리는 물로 눌렀는지 앞쪽만 납작했고, 뒤통수 한 군데가 솟아 있었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하품을 하다가, 뛰어오는 정현을 보자 입부터 다물었다.
“반장 행차하시네.”
“어이, 자라. 버스 갔냐?”
“갔으면 내가 여기서 너를 왜 기다려. 의리가 그렇게 넘치게 생겼냐?”
정현은 숨을 고르며 정후의 옆에 섰다. 정후가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냈다가 도로 밀어 넣었다. 목장갑 손바닥에 검은 때가 뭉쳐 있었고, 손등은 물이 말라 얼룩덜룩했다.
“뭐 했냐?”
“배달.”
“오늘도?”
“우유 먹는 집들이 오늘은 쉬자 그러겠냐.”
정후는 말을 마치고 참았던 하품을 했다. 너무 크게 벌어진 입을 보고 정현이 같이 하품할 뻔했다.
“너 몇 시에 일어나는데.”
“너네 엄마가 너 첫 번째로 깨울 때쯤 난 알바가 다 끝나.”
“안 물어봤다.”
“방금 물어봤잖아.”
정후는 자라도에서 왔다. 그래서 별명이 자라였다. 부모는 섬에서 농사를 지었고, 정후는 덕포 외곽의 외삼촌 집에서 학교에 다녔다.
방학이 가까워지면 다른 아이들은 며칠 놀 수 있는지를 셌는데, 정후는 배 타고 들어갈 날부터 정해야 했다.
정후는 주머니에서 백 원짜리 두 개를 골라 반대쪽에 넣었다. 나머지를 쓸어 담다가 떨어지려는 십 원짜리를 큰 손으로 받았다.
정후가 꺼낸 회수권은 가장자리가 허옇게 일어나 있었다. 정현이 손을 뻗자 얼른 뒤로 뺐다.
“또 갈랐냐?”
“조용히 좀 말해, 새끼야.”
“경찰대 간다면서 회수권부터 위조하네.”
“위조는 무슨? 비벼서 두 배의 가치를 만들어낸 거지.”
“그게 위조지, 새끼야. 어디 경찰관 앞에서도 그렇게 말해 봐.”
정후는 정현의 얼굴을 잠깐 보더니 회수권을 손바닥 안으로 접었다.
“알았다, 알았어. 아주 준법정신이 철철 넘치십니다.”
버스 두 대가 연달아 모퉁이를 돌았다. 서 있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길가로 붙었다. 정현은 앞차로 가려다가 정후가 뒤차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방향을 바꿨다.
앞차로 몰린 아이들 뒤에서 두 번째 버스의 문이 열렸다.
정후는 갈라 놓은 회수권을 주머니에 넣고, 지갑 안쪽에서 다른 한 장을 꺼냈다. 이번에는 모서리가 반듯했다. 정현이 쳐다보자 턱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안 타냐?”
중문 앞 두 사람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정후가 창가에 앉았다. 정현은 바카라가방을 발 사이에 세우고 도시락가방을 무릎에 올렸다. 지퍼 틈에서 반찬 냄새가 올라왔다.
“햄 들었냐?”
정후가 묻자 정현은 가방을 더 끌어당겼다.
“개코냐?”
“형이 점심에 검사한다.”
“형은 무슨. 생일도 더 늦은 게.”
버스가 출발하자 정후는 창틀에 머리를 기댔다. 유리창이 덜덜 떨렸는데도 눈을 감았다. 정현은 말을 걸려다가 말았다.
정후의 운동화 끈 끝이 젖어 있었고, 바지 밑단에는 흙물이 튄 자국이 말라 있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정현은 바카라가방을 발 안쪽으로 당겼다. 통로로 사람이 지나갔다. 정후는 눈도 뜨지 않았다.
덕포여자상업고등학교 앞이었다.
한 여학생이 계단을 올라왔다. 바로 뒤의 친구가 가방을 문에 부딪치자 먼저 몸을 돌려 괜찮냐고 물어 주었다. 운전기사 쪽에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남색 교복 가슴의 명찰은 가방끈에 가려 있었다. 여학생은 교통비를 낸 손으로 머리를 귀 뒤에 걸었다. 귓불 아래 작은 점이 잠깐 드러났다.
앞쪽에 서 있던 남학생 하나가 몸을 비켜 주었다. 그 애는 아까 정현 일행에게 좀처럼 길을 터주지 않던 덕포공고 학생이었다. 정현은 그래서 한 번 더 봤다.
“야.”
정후의 팔꿈치를 건드렸다.
“뭐.”
“예쁘지 않냐?”
정후가 반쯤 뜬 눈으로 앞을 보더니 허리를 세웠다.
“누구? 아…… 야, 관심 꺼라.”
“왜?”
“저 누나 한도여중 짱이었다던데.”
“누가 그래?”
“성훈이 형. 전에 형들 만났을 때……”
“직접 아는 건 아니고?”
“직접 알아야만 아는 거냐.”
정현은 다시 앞을 봤다. 여학생은 친구가 하는 말에 웃고 있었다. 친구의 소매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내면서 뭐라고 짧게 대꾸했다. 둘 다 웃었다.
정현이 아는 무서운 사람들은 저렇게 웃지 않았다.
“근데 이 시간에 왜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지?”
“째나 보지.”
정후는 졸음이 싹 달아난 얼굴로 정현을 봤다.
“관심 많네?”
“궁금해서 그러지.”
“어쭈, 삐삐 번호도 물어봐라. 내가 대신 물어봐 줄까?”
“야, 하지 마.”
앞문에서 마지막 승객이 회수권을 냈다. 기사가 문을 닫자 버스가 덜컥 출발했다.
여학생은 손잡이를 잡으려다 놓쳤다. 중심을 잡으려 두어 걸음을 옮기는 사이 몸이 돌아갔다. 여학생이 정현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발을 급하게 내딛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틸 새도 없었다.
정현이 급히 팔을 뻗었지만, 여학생은 그대로 그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방이 배 쪽으로 밀려왔다.
얼결에 여학생의 허리를 받친 정현은 그대로 굳었다. 밀려난 가방이 두 사람 사이에 비스듬히 끼었다. 여학생도 놀라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서로를 끌어안은 듯한 자세였다.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정현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귀에 걸려 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비누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어, 죄…… 죄송합니다.”
여학생은 앞좌석 등받이를 잡고 곧바로 일어났다. 먼저 정현의 얼굴을, 다음에는 무릎 위의 가방을 봤다.
“괜찮아요?”
“네.”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늘게 나왔다. 정현은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여학생의 친구가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넌 날 좀 잡아 주지.”
여학생이 친구의 팔을 붙들었다. 친구가 뭐라고 귓속말을 하자 이번에는 여학생도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물었다.
정후는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유리창에 비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정현은 가방을 끌어안았다. 반찬통이 안에서 딸깍 부딪쳤다. 하필 김치 냄새가 확 올라왔다. 어머니가 얼마나 꽉 닫았을지 알면서도 지퍼를 끝까지 당겼다.
여학생은 한 정거장 뒤에 내렸다. 친구가 먼저 내려간 뒤, 치마 자락을 누르며 계단을 내려갔다. 정현은 창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척 바깥을 살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이미 정류장에 선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다시 움직였다.
정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씨. 너는 이런 건 꼭 당첨되더라.”
“당첨은 개뿔.”
“싫었냐?”
정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무릎에 닿았던 무게보다 여학생이 자기를 보고 괜찮으냐고 물었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정현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치 냄새를 맡았을까.
옆에서는 정후가 아직도 웃고 있었다. 열린 창틈으로 봄바람이 훅 들어왔다. 정현은 가방을 무릎 위에서 조금 내려놓았다.
이름이라도 봐 둘 걸 그랬다.
내일도 이 시간에 타면 만날 수 있을까. 정현은 아까 그 여학생이 올라왔던 정류장을 되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