ラーメン, 그 고독의 온기
올해 1월부터 온라인카지노를 시작한다고
거실 소파 테이블에 노트북을 놓고 앉아서
방학 두 달 내내 집중했다.
학기가 시작되어 정신 차리고 몸을 일으켜 보니
온몸이 뻐근한 게 특히 허리가 이렇게 아플 수가 없다.
온라인카지노는 하고 싶고 허리는 아프고...
궁여지바카라으로 온갖 잡동사니를 올려놓았던
거실 한 구석의 붙박이 바카라상 위를 치우고
식탁 의자를 끌어다가
작은 내 공간을 만들었다.
붙박이 바카라상에 앉아 머리를 들면
작은 창문으로 파란 하늘과
저 멀리 공원의 푸른 나무가 보인다.
숨이 탁 트인다.
하지만, 누군가 거실에 들어오면
내 얼굴 대신, 존재감 있는 커다란 내 등만
보이게 되어 버린 게 조금 민망하다.
거실 중앙에 진을 치고 있을 때에는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온갖 집안일이 눈에 들어와서
신경이 쓰이더니,
이렇게 거실에 등을 돌리고 구석에 처박혀
노트북에 머리를 처박고 있자니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늦은 밤,
ラーメン屋([raamenya] 라면집)의
暖簾(のれん [noren] 노렌)을 살짝 걷고 들어가
카운터에 ラーメン 한 그릇을 놓고 등 돌려 앉은
남자들의 마음도 나처럼 이렇게 고요하려나...
생각해 본다.
혹시
하루 노동에 치여 인간관계에 치여
너덜너덜해 축 처진 몸과 마음을
한 잔 술로 달래고 나서,
다시 적막한 밤으로 돌아가기 전에,
싸구려 술과 안주에 배가 불러도
뭔가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그들은 ラーメン屋의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싶다.
나에게는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면서도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아서
해 보지 못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식권 자판기가 놓여 있고
카운터에 의자만이 달랑 놓여 있으며
실내 장식도 거의 없는,
大将([taishou] 라면집 사장님)이 무표정으로
묵묵히 ラーメン을 내어 주는 ラーメン屋에
나 혼자 들어가서 먹어 보는 것이다.
어서 오시라는 일본의 그 흔한 인사 하나 없고,
무엇을 먹겠냐는 주문도 받지 않고,
물도 내가 따라먹어야 하며,
먹고 나서는 그릇을 정리해서
大将 쪽으로 올려놓기까지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이 귀찮고 싫어서가 절대 아니다.
여성이 잘 안 가기 때문도 아니다.
가게 안이 다소 지저분하고 세련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豚骨([tonkotsu] 돼지뼈) 육수의 기름진 누린 냄새나
魚介類([gyokairui] 어패류)의 비릿한 냄새가 싫거나
自家製麺([jikaseimen] 수제면)을 삶을 때의
축축한 습기가 싫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가게의 노렌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굽은 등을
출입구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왠지 내 눈엔
ラーメン을 먹고 있는 그들의 그 처진 등과 어깨에
삶의 고독과 고된 사연이 무겁게 놓여 있는 것만 같아
내 가벼운 호기심만으로 들어가기엔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성의 지위가 낮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만큼
남성에게 지워진 바카라임과 굴레도 가볍지만은 않을지도.
그리고 여기는
서로의 힘듦을 각자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감내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으로
모두가, 모든 것이 원만하게 돌아간다고
오랫동안 믿어 온 사람들이 많은 것만 같다.
남편이라는 아빠라는 아들이라는 슬롯인이라는
짐을 지고 있는 이들이
잠시라도 바쁘고 힘겨운 세상을 등지고 먹는
한 그릇의 따뜻한 ラーメン은
이들에게는 위로이자 휴식이 아닐까.
이들에게 필요한 건
부산스럽고 요란한 접대보다도,
널찍하고 푹신한 의자나 화려한 인테리어보다도,
잠시라도 오롯이 혼자될 수 있는 시간과
조용한 배려라는 것을 大将은 알고 있는 것일지도.
그래서,
진정한 大将은 매상을 올리기 위한 장삿속이나
자신의 腕([ude] 솜씨)를 뽐내기 위한 자극적인 과시보다는
오히려,
지친 이들을 위한 담백한 혹은 짙은 수프와 生麺([namamen] 생면)에
정성과 위로뿐만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자신의 생명까지 담아내고 있는지도.
지친 이들의 굽은 등과 大将의 굽은 손이 겹쳐진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이들은
이런저런 말도 필요 없이 ラーメン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진심과 응원도 함께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ラーメン屋에는, ラーメン에는,
남자들의 고독이 둥실 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거실에 널려 있는 집안일을 등진 채
노트북을 연 후,
창 밖을 바라보며 숨이 탁 트였듯이
이들이 세상을 등진 채 먹는
한 그릇의 ラーメン이
그들의 고독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다독여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