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렁이 녀석들 예찬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

by혜준

한 반에 한 명정도는 꼭 삐딱한 녀석이 있기 마련이다.

반항적인 눈빛으로 쏘아보는 어두운 녀석(네가 김완선누나냐?)

처음부터 학점만을 목표로 아무런 의욕도 없이 들어오는 녀석(출석은 점수에 안 들어간다네!)

고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까불던 가닥으로 한 번 해 보려는 녀석(내가 네 친구냐!)

친한 척하면서 버릇없이 구는 녀석(선생님 들어오시는데 의자에 누워 있는 놈 누구?)

껄렁거리면서 수업 시간에 친구랑 떠드는 녀석(선생님 말씀하실 때는 지방 방송 좀 끄지?)

휴대폰을 몰래몰래 훔쳐보는 녀석(여자 친구랑 사랑싸움 중이면 나가서 해결하고 오라고 했잖아!)

발음 좀 해라 해도 입 꾹 다물고 버티는 녀석(묵비권 행사는 왜 여기서 하시나?)

등등......


내가 초보 강사 시절엔 학생들과 나이 차이가 지금처럼 많이 나지도 않고 경험도 적어서 이런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조금 두렵고 난감했었다.

나를 무시하나? 한국어 수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

물음은 학생들에게 향하지 않고 내 자격지심만을 향해 갔다.

그리고 삐딱한 아이들이 수업에 따라오지 못해 멍한 눈을 하면서도, 결석 한 번 안 하고 앉아 있는 것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피하듯이 수업을 진행하곤 했다.

그래서 남학생이 정말 불편했다. 게다가 껄렁껄렁한 녀석들은 더더욱......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하고 이제 세 번째 변하는 가운데 지점에 이를 때까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자니, 내 나름의 철칙이 생겼다.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一か八か([ichikabachika] 모 아니면 도)의 태도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런 삐딱한 아이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어제 1교시 수업중의 일이다.

이 반에는 지정석으로 앉혀 놓은 맨 뒷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바카라상 위에 올려놓고 껄렁거리는 녀석이 한 명 있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요즘은 한글을 하고 있어서 그날 배운 건 나중에 잊어버릴지라도 그날 외우도록 하고 있다.

설명은 암기하기 쉽도록 최소한으로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쓰고 외우는 시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 명 한 명 아웃풋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집중해서 암기해 빨리 확인받은 학생은 빨리 교실을 탈출할 수 있다.

껄렁이 녀석이 일찌감치 확인을 받으러 왔다.

내가 제시하는 카드에 몇 개 대답을 하더니 우물쭈물한다. 그러더니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어요" 한다.

히라가나와는 한글과 구조가 다르니 어려워하는 학생이 간혹 있다. 그런 학생에게는 부드럽게 대응을 한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어려워서 모르는 게 아니고 빨리 교실을 나가고 싶어서 암기도 안 하고 대충 버티려는 상황.

가서 더 외우고 확인받으러 오라고 하니 갑자기 표정이 험악해지더니

선생님은 왜 못 한다고 하는데 억지로 시키느냐,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걸 어떡하냐 왕왕거린다.

예전 같으면 놀라서 가슴이 벌렁거릴 상황이지만 이젠 코웃음이 난다.

"그래? 억지로 한다고 생각하면 하지 말든지"

하니 날아오를 듯 신나서 교실을 나선다. 짜식...... 다음 주에 보자.

그런데 웬걸?

수업이 끝나고 같은 교실에서 2교시가 있어서 그대로 앉아 온라인카지노스토리의 글들을 읽으며 쉬고 있자니, 아까 그 녀석이 껄렁껄렁 와서 "선생님, 한글 외우는 요령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하며 휴대폰으로 메모할 준비까지 한다.

"요령이 어디 있어! 반복이 요령이다, 이놈아"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자분자분 스텝을 가르쳐 주니 고분고분 이런 순한 양이 없다.

一か八か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나는 다른 글에서 수업은 나에게 있어서 데이트라고 쓴 적이 있다.

그건 단순히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내가 그들과의 만남을 선택했고 그들도 나라는 사람을 선택한 결과, 지금 이 순간 여기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 학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연애와 무척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애도 언어학습도 꾸준히 성실해야 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눈으로만, 이론으로만 아무리 무장을 해도 잘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던져 겪어보고 해 봐야 알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 一か八か,

실패냐 성공이냐가 아니라, 먼저 마음을 열고 하느냐, 안 하느냐가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적극적으로 하든지, 하기 싫다, 못하겠다 싶으면 재빨리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언어학습도 연애도.


내가 껄렁이 녀석들을 사랑스러워하는 것은 그들이 참으로 솔직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 껄렁한 얼굴과 태도......

그들은 대부분, 一か八か의 선택의 순간에서도 솔직하고 명쾌한 선택을 한다.

공부를 맘잡고 하든지, 이번 학기의 학점을 포기하고 다른 언어의 선택을 향해 돌진하든지...

그리고 언제나 당당하다.

몇 년이 지나 캠퍼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큰 목소리로 밝게 인사하는 것은 이 삐딱이 껄렁이 녀석들이다.

봄날 연초록 같은 그 파릇파릇한 그들의 건들거림은 나에게 언제나 도전과 희망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