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7.
2026년 7월 7일 오늘부터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정상회의가 개막한다. 나토의 신임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Mark Rutte, 1967- , 전 네덜란드 총리)가 '유럽의 자립과 미국의 동맹 유지'를 골자로 한 이른바 '나토 3.0'의 기치를 들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수사학 이면에는 서구 안보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깊은 균열이 꿈틀대고 있다.
우리는 지금 현란하게 쏟아지는 뉴스 헤드라인을 넘어, 이 서구 문명의 동맹이 지닌 역사적 중량감과 그것을 지탱하는 시스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https://www.nato.int/en/what-we-do/introduction-to-nato/collective-defence-and-article-5
그렇다면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나토는 뭘까? 나토는 단순한 군사적 결사체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서구 문명의 핵심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탄생한 '가치 동맹'이다. 초대 NATO 사무총장 헤이스팅스 이스메이(Hastings Ismay, 1887-1965)는 "나토의 목적은 러시아인을 밖에 두고, 미국인을 안에 두며, 독일인을 아래에 두는 것"(To keep the Russians out, the Americans in, and the Germans down.)"이라는 뼈있는 명언을 남겼다. 냉전 시절 나토는 소련이 주도하는 바르샤바 조약기구(Warsaw Pact, 1955년 창설)와 대치하며, 직접적인 무력 충돌 없이 '상호 확증 파괴(MAD)'라는 핵 억지력을 통해 유럽의 평화를 지켜냈다.
이 시스템을 가능케 한 절대적 상징은 북대서양 조약 제5조다. '어느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에 대한 공격(All for one, one for all)'이라는 이 철학적 연대는 적대국에게 'NATO 회원국을 건드리면 32개국 전체와 세계 대전을 치러야 한다'는 완벽한 억지력을 심어주었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나토 회원국은 아니다. 조약명(북대서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과 북아메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역 안보 동맹이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불가하다. 하지만 한국은 ‘IP4(아시아·태평양 4개 파트너국: 한,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지위로 나토와 긴밀한 안보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 수년간 한국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 계속 초청받아 참석하는 것도 바로 이 파트너국 자격 때문이다. 즉, 군사 훈련이나 정보 공유는 함께할 수는 있지만, 한국이나 나토 회원국 중 한 곳이 공격받았을 때 제5조가 발동되어 서로 의무적인 자동 개입(전쟁 참여)을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북대서양 조약 제5조 (NATO’s Article 5) 원문>
"The Parties agree that an armed attack against one or more of them in Europe or North America shall be considered an attack against them all and consequently they agree that, if such an armed attack occurs, each of them, in exercise of the right of individual or collective self-defence recognised by Article 51 of 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will assist the Party or Parties so attacked by taking forthwith, individually and in concert with the other Parties, such action as it deems necessary, including the use of armed force, to restore and maintain the security of the North Atlantic area."
"체약국들은 유럽 또는 북아메리카에 있는 체약국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대한 무력 공격을 체약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데 동의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각 체약국은 유엔헌장 제51조에 의해 인정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로서, 공격을 받은 체약국을 원조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그리고 다른 체약국들과 공동으로 무력의 사용을 포함하여 북대서양 지역의 안보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조치를 즉시 취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처럼 철통같은 방어 기제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구축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나토가 흔들리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그 비극의 씨앗은 냉전 종식 후 클린턴 행정부 주도로 강행된 '나토의 동진'에서 잉태되었다.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1947- )같은 현실주의 지정학자들의 지적처럼,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에게 "나토의 관할권은 동쪽으로 단 1인치("not one inch eastward")도 이동하지 않을 것("There would be no extension of NATO's jurisdiction for forces of NATO one inch to the east.")이라고 굳게 약속했었다. 이 미·소 간의 신사협정을 무시한 세력확장은 러시아의 생존 공포를 자극했다. 러시아어로 푸틴과 대화할 수 있었던 독일의 메르켈은 2008년 부쿠레슈티 NATO 서밋 당시, 러시아를 지나치게 자극할 것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약속을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었다. 즉,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2022년의 전면 침공은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돌출 행동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나토 동진이라는 서방의 도발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비극의 이면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우리들도 함께 생각해봐야할 국제정치의 냉혹한 잔혹사가 숨어 있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 해체 당시 세계 3위 규모의 핵강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안보를 보장하고 경제를 지원해 주겠다"(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서방의 약속을 믿고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말로 하는 100% 완전한 안보보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잔인한 교훈을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본 국가들이 있다. 가다피의 리비아, 이란, 그리고 북한이 왜 그토록 눈이 뒤집혀 핵무기에 집착하는지, 그 시스템적 동기는 명확하다. 강대국의 밀실 거래 앞에서,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체스판의 말처럼 버려지는지를 말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내정 자체의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의 극심한 분열도 한 몫을 했다.)
이 핏빛 교훈을 대가로 유럽은 뒤늦게 각성했다. 지난 2025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기존 2%였던 방위비 지출을 2035년까지 GDP의 5%로 대폭 상향하기로 합의했다. 이 중 3.5%는 병력과 무기 체계 등 핵심 국방비로, 1.5%는 사이버 방어와 방위 산업 기반 등 회복력 지출로 쪼개어 달성하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지원금도 5% 지출에 포함시킨다"고 명시하며, 돈을 지불해서라도 문명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참 흥미로운 것은 오늘 서밋이 열리는 곳이 다름아닌 튀르키예(앙카라)라는 점이다. 튀르키예는 나토 내에서 두 번째로 큰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흑해와 동지중해가 교차하는 핵심 요충지를 장악한 채 몽트뢰 협약을 통해 흑해 안보를 통제하는 필수불가결한 국가다.
동시에 튀르키예는 나토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로운 이단아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이 파트너로 삼은 쿠르드족 주도 부대(SDF)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해 강력히 반발했고, 러시아제 S-400 방공망을 도입해 미국의 제재(CAATSA)를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지연시키며 만장일치 제도를 자국의 안보 이익을 위한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동맹국들의 위협 인식이 높아질 때는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지만, 평시에는 신뢰도를 의심받는 이른바 '튀르키예의 역설'이 이번 서밋의 지정학적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동맹의 중추인 미국과 유럽 간의 구조적 파열음이다. 미 의회조사처(CRS)의 최신 보고서가 폭로하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며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감축을 지시했고, 나토 창립 멤버인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무리한 요구로 거대한 불신을 낳았다. 이 균열은 최근 이란 전선에서 완벽하게 폭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항로 보호를 요청했으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동맹국들은 이를 거절하고 자국 영공 통과와 군사 기지 사용마저 차단했다. 이에 격노한 트럼프가 "나토 탈퇴를 강력히 고려 중"이라고 밝히면서, 동맹은 창설 이래 최대의 실존적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시스템의 파국을 막으려는 미국 의회의 움직임이다. 미 의회는 국방수속법(NDAA)을 통해 상원의 동의 없는 대통령의 독단적 나토 탈퇴를 원천 금지했다. 최신 2026년 NDAA 제1249조는 의회 승인 없이 유럽 주둔 미군을 76,000명 이하로 줄이는 것을 법으로 막았고, 나토 최고사령관(SACEUR) 지위마저 함부로 포기하지 못하게 강제했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군사 정보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할 경우, 48시간 이내에 의회에 반드시 통보하도록 강제했다.
그 어느 하나 마음 놓을 수 없는 지뢰밭의 연속이다. 동맹이 다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애당초 왜 우리가 함께 했는지, 그 근원적 이유를 상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과거 미국이 오랜 시간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을 때 유럽이 제 몫의 짐을 나누어 졌더라면 오늘날의 파국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안하무인격 행보는 유구무언이다. 외부의 도전 과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데, 내부의 결속은 무너지고 있다.
이 모든 파열음의 근저에는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 1941-)교수님께서 그의 논문(Diplomacy and domestic politics: the logic of two-level games(1988), 아래 4번 참조)에서 통찰한 '양면 게임(Two-Level Game)'의 비극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은 유럽대로, 각자의 심각한 국내 정치적 위기(Level II)에 짓눌려 있다. 지도자들의 최우선 순위가 '국내에서의 정치적 생존'으로 전락할 때, 국제적 연대(Level I)는 철학을 잃고 얄팍한 거래 수단으로 변질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서구 문명을 지켜낸 처칠 경은 이렇게 경고했다. "동맹국과 함께 싸우는 것보다 더 최악인 것은 단 하나뿐이다. 동맹국 없이 혼자 싸우는 것이다.("There is only one thing worse than fighting with allies, and that is to fight without them.)" 각국의 이기적인 국내 정치가 동맹의 가치를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나토가 이 뼈아픈 진리를 다시 깨닫지 못한다면 서구 문명의 방패는 밖이 아닌 안에서부터 녹슬어갈 것이다.
<원문 : "There is only one thing worse than having allies, and that is having none." (1945.4.1.)>
- 당시에 미-영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전력 조정을 담당했던 영국의 고위 장성 앨런 브룩(Alan Brooke) 전 공작(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전쟁 일기(War Diaries)에 기록
- 당시 처칠 경은 프랑스 전선 및 전후 처리 문제를 두고 동맹국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그리고 자유 프랑스의 드골 장군과 극심한 전략적 갈등을 겪으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끊임없는 이견 조율에 지친 처칠이 사석에서 참모였던 앨런 브룩 장군에게 "동맹국들과 조율하며 전쟁을 치르는 것이 얼마나 까다롭고 고통스러운지" 토로하면서도, 결코 동맹 없이는 이 거대한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냉혹한 진리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오늘부터 이틀간 앙카라에서 쏟아질 나토 정상들의 발언과 공동 선언문은, 이 거대한 안보 시스템이 파국을 면할 수 있을지 가늠할 시금석이다. 트럼프의 거친 압박, 유럽의 다급한 자립 노력, 그리고 이를 통제하려는 미 의회의 법적 족쇄 중 과연 무엇이 나토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인가. 나아가 강대국들의 거대한 양면 게임 한가운데 던져진 대한민국은, 동맹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살아남을 독자적인 레버리지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우리가 지금 앙카라를 숨죽여 주시해야 하는 진짜 이유다.
<NATO 공식홈페이지>
https://www.nato.int/en/news-and-events/events/event-programmes/2026/07/nato-summit-2026
<모던 워 인스티튜트(Modern War Institute, MWI)* 기사> *미국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에 소속된 공식 연구 기관
https://mwi.westpoint.edu/natos-turkey-parad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