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가온 미래

씨앗 준비하기

byAltusSolum

오늘은 입추다. 창밖의 아스팔트는 여전히 살을 태울 듯한 폭염에 숨이 막히지만, 달력 위에는 어김없이 가을이 '나 여기 있어!' 하고 소식을 알렸다. 옛부터 입추는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가을 낭만과는 거리가 먼 시기였다. 다가올 겨울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대비하는 가장 치열한 출발선이었다. 이때가 되면 무와 배추를 심어 겨울 김장을 준비했고, 행여 쏟아지는 늦여름 비에 한 해의 농사가 망가질까 두려워 맑은 날을 비는 기청제를 간절히 올렸다고 한다. 한마디로 입추란 가만히 앉아 서늘한 바람을 기다리는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을 막아내고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온몸으로 대비바카라을 세우는 무거운 바카라임의 시간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공동체의 존재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태양이 살갗을 태우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 건강한 공동체의 바카라임자는 "달력상으로는 가을이니 평화가 올 것"이라는 환각의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 그들은 묵묵히 다가올 겨울의 양식을 준비하고, 외부의 위협을 막아낼 방패를 쥔 채 철저한 준비라는 것을 한다. 다가오는 위협을 직시하고 그것을 통제할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뼈대를 세우는 것. 그것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유일한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 이 본질이 완벽하게 증발해버린 기이한 성채가 있다. 성벽 너머에서는 시뻘건 불화살이 수시로 날아들어 지붕에 꽂히고 있다. 마땅히 성문을 지키는 지휘관들은 방패를 점검하고 실질적인 준비와 대바카라을 세워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무기고의 창검은 흩어져 있고, 동맹국과의 봉화는 엇박자를 낸다. 이 기막힌 부조리극 앞에서 우리는 깊은 지적 실어증과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거대한 역사의 주기를 비추어보면, 이 참담함조차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2번 글 바이마르에서 본까지를 읽고 히틀러가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합법적인 지도자였다는 사실과 그 몰락의 여정을 함께 짚어본 바 있다. 그때 글의 서두를 장식했던 마크 트웨인의 통찰을 다시 떠올린다. "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ymes(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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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우리는 밀란 쿤데라의 소식을 다루면서 Einmal ist keinmal을 거쳐 니체의 '영원회귀'도 다루며 함께 생각해보았다. 즉, 역사는 잔혹하리만치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대로 똑같이 재생반복이 아니라, 리듬에 맞게 그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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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학자 닐 하우(Neil Howe)가 통찰한 '제4전환(The Fourth Turning is Here, 2023)'을 읽어보면, 이 패턴은 더욱 명확해진다. 역사는 고조(봄), 각성(여름), 해체(가을)을 거쳐 마침내 모든 낡은 제도가 무너져 내리는 피할 수 없는 위기의 계절, 겨울(위기)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겨울은 수명을 다한 부패한 제도와 썩은 뿌리들을 남김없이 불태우는 거대한 '정화의 용광로'다. 이 해체와 소멸이 있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뼈대를 세울 빈 공간이 허락된다.


성채의 기둥을 뽑고 기존의 시스템을 붕괴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권력을 쥐고 역사를 주도한다는 착각을 하겠지만 거대한 역사의 시간표 속에서는 그저 수명을 다한 썩은 판을 허물어뜨리는 파괴의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의 순환을 안다고 해서 "될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이나, 뒷짐지고 비웃는 냉소주의로 빠져서는 안 된다. 다가올 파국을 구경만 하는 방관자에게는 결코 새로운 판을 짤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아는 자의 진짜 임무는, 누군가 낡은 것들을 부수는 동안 그 폐허위에 세울 '새로운 질서'의 도면을 오차없이 치밀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분노라는 뜨거운 감정에 휩쓸려 에너지를 낭비할 시간도, 허무주의에 기대어 주저 앉을 여유도 없다. 다만 현재 그들의 기만과 무능을 철저히 유념하고 기억은 해야겠다. 그러나 분노와 조롱을 넘어 다음 시대를 주도할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에 우리의 모든 지적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미래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가 우리 앞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불과하다(Ce que nous appelons l'avenir n'est que l'ombre que notre passé projette devant nous)."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낯선 백지가 아니다. 즉, 미래는 우리가 축적해 온 과거라는 실체에 '지금 이 순간의 행위'라는 빛이 투사되어 바닥에 드리워지는 필연적 결과물이다.


즉, 입추는 다가올 혹독한 계절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깊고 단단한 대지(Altus Solum) 위에 발을 딛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세워 올릴 새로운 기둥과 주춧돌의 위치를 구상해야 한다. 이미 다가온 미래의 도면을 묵묵히 그려야 한다. 이 지독한 야만의 여름이 끝나고 모든 낡은 것들이 재가 되어 사라질 때, 지체 없이 새로운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말이다. 환각의 언어와 냉소의 유혹을 걷어내고, 담담한 이성으로 다가올 질서를 꼼꼼하게 준비하는 사람들만이 잿더미 너머의 진짜 가을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