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오늘

byAltusSolum

25년 전 오늘 : 미래를 건 패권전쟁 속 과거를 파먹는 파렴치들의 복마전


◀ 9.11 테러 이후 25년, '지리적 성역'이 무너진 제국은

도덕적 십자군의 환상을 버리고 냉혹한 카지노의 하우스가 된것만 같다.

이념이 증발하고 오직 '힘'과 '국익'만이 남은 2026년 냉혹한 정글 속에서,

여전히 90년대 독재의 유령과 피상적인 성(gender)프레임 뒤에 숨어

감히 '이성'을 입에 올리는 한국 정치의 치졸한 서커스를 살펴본다. ▶

ALTUS SOLUM 2026.9.11.(금)



updated-RTR73XO.jpghttps://www.foreignaffairs.com/lists/911-transforms-us-foreign-policy





□ '지리적 성역'의 붕괴

2001년 9월 11일, 뉴욕 한복판에서 쌍둥이 빌딩이 무너져 내린 지 정확히 25년(Quarter Century)이 흘렀다. 그날 잿더미가 된 것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환호했던 '역사의 종말'이라는 이념적 환상만이 아니었다. 태평양과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해자로 둘러싸여 절대 타격받지 않는다는 미국의 '지리적 성역(American Sanctuary)' 신화가 무너져 내린 첫 파열음이었다. 제국의 본토가 유린당했을 때 응징적 억지력(Punitive Deterrence)을 복구하기 위한 전쟁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최근 미국 외교가의 바이블인 <포린 어페어스>는 기고문을 통해 "알카에다는 끝났다.(Al-Qaeda has ended)"며 건조한 부고를 띄웠다. 그러나 이는 아프가니스탄 철수라는 역사적 치욕을 정당화하려는 미국 리버럴(Liberal)들 특유의 자기 위안적 기만에 불과하다. 빈 라덴의 간판은 내려갔을지 몰라도, 그 이념의 후계자로서 ISIS와 후티 반군이라는 더 흉폭한 비대칭 전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여전히 서구(The West)문명에 대한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괴물은 죽은 것이 아니라 진화했다.

https://fishingproductfr.com/@24b21b72d8be455/33



□ 민주주의 이식이라는 환상과 참담한 야반도주

9.11 이후 미국의 실패는 '전쟁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문명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계몽주의적 오만'에 있었다. 테러 근거지를 타격하고 빠져나왔어야 할 군사 작전이 오만한 국가 재건(Nation-Building) 프로젝트로 변질되면서 미국은 20년의 수렁에 빠졌다.



그리고 그 결말은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끔찍한 카불 야반도주였다. 그 참혹한 철수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제국의 '억지력 붕괴'를 전 세계에 생중계한 치명적 무능이었다. 카불에서의 나약함이 결국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시진핑의 팽창을 불러온 도화선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5년의 피투성이 역사 끝에 남은 것은 참담한 리더십의 부재와, 가치나 도덕 대신 철저히 비용과 이익만 계산하게 된 '카지노의 하우스'로 타락한 제국의 씁쓸한 진화뿐이다.



□ 카지노로 진화한 제국과 2026년의 진짜 전쟁

세스 존스(Seth G. Jones)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최근 기고문에서 "미국이라는 성역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2026년 현재는 사이버 해킹, 극초음속 미사일, 인공지능 무기 앞에서 두 개의 대양이 더 이상 미국 본토를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미국의 '야만적 거래주의'는 바로 이 뼈아픈 취약성에서 잉태되었다. 본토가 안전한 성역일 때는 타국의 인권을 챙기는 '착한 경찰' 이라는 역할 수행이 가능했다. 그러나 자신의 앞마당이 위협받자, 미국은 그 사치스러운 도덕을 집어 던졌다. 가치를 위해 남의 땅에 피를 흘리는 바보짓을 멈추고, 철저히 비용과 이익만 계산하는 '카지노의 하우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동맹인 대만의 안보를 미·중 협상 테이블의 칩으로 올리고, 이란과의 전쟁마저 '힘과 자본'의 잣대로 통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를 감상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국가는 오직 자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을 뿐이며, 그것을 제대로 못하는 국가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 외교는 바로 이 차갑고 냉혹한 국가 이성(Staatsräson)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기반으로 미국을 대적해야만 한다.



□ 우물안의 파렴치

법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정감사장에서 브로커의 지령을 받으며 엉터리 신약 청탁을 하느라 문턱을 들락날락하던 비루한 현행범의 모습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은 비리를 규명할 증인을 전원 거부하고, 도리어 의혹을 폭로한 야당 의원을 증인으로 세우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더욱 아연실색할 일은 국무총리실 공무원이 신분을 감춘 채 야당 의원 기자회견장에서 '일반인' 행세를 하며 공작성 딴지를 거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벌였다. 나는 차라리 그가 어쩌다 굴러들어온 '어공(정무직)'이길 바란다. 어공의 짓이라고 해도 이는 하수의 멍청함이지만, 만약 국가 시스템을 지탱해야 할 '늘공(직업공무원)'이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버린 것이라면 이는 공직 기강의 완전한 멸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극악무도한 위선과 '이성'의 모독

이 치졸한 희극의 화룡점정은 정당을 가족의 수익 모델로 전락시킨 어느 비례대표 의원에게서 완성되었다. 그는 의원 배지와 장관직을 모두 움켜쥐겠다며 34분 동안 단상에 서서, 도리어 비판하는 언론과 국민을 향해 "이성을 찾아 달라"고 훈계하는 기괴한 적반하장을 연출했다.



그가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기 위해 뻔뻔하게 내세운 방패는, 다름 아닌 1969년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독재 연장)을 밀어붙이며 입법부의 입을 막기 위해 던져준 뇌물성 특혜 조항(겸직 허용)이다. 참으로 극악무도한 위선이자 아연실색할 코미디가 아닌가?



건국과 산업화라는 거대한 역사적 공(功) 앞에서는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사사건건 '독재'라 폄훼하며 그 의미마저 지워버리려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자들이, 자칭 '진보'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밥그릇과 권력을 챙겨야 할 순간이 오자, 60년 정권이 남긴 '유령' 뒤에 기꺼이 숨어 "법이 허용한다"며 악을 쓰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수준을 넘어,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탐욕이 부끄러움과 염치마저 완전히 마비시켜 버린 것이다.



이성이란 사적 이익을 위해 법의 맹점을 파고들며 독재의 유산마저 취사선택하는 얄팍한 기계적 계산이 아니다.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공적 감각이다. 최소한의 국가 이성(Staatsräson)조차 거세당한 참담한 밑바닥들이 감히 '이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언어'의 의미마저 타락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비위가 상하는 대목은, 그가 마치 특정 '성(gender)'을 대변하는 숭고한 아이콘인 양 위선적 프레임을 씌운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장에서 연출된 그 피상적인 디테일들은 동성과 이성을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지독한 모욕감을 안겼다. 말도 안 되는 파렴치를 '공공(公共)'의 탈을 씌워 설파할 때, 그 궤변을 직업적 숙명으로 묵묵히 받아 적어야 했던 기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을 지경이다. 염치라는 단어조차 사치스럽다.



images (13).jpg
images (14).jpg



25년 전 오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며 새로운 시대의 룰이 쓰였다. 제국이 피를 흘리며 그 잔혹한 룰에 적응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국가 이성을 거세당한 채 브로커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특정 성(gender)을 참칭하며 '언어의 의미'마저 타락시키는 이들의 맹탕 정치가 계속된다면, 그 시간의 지체(Time Lag)가 불러올 청구서는 결국 우리 국민의 피와 생존권으로 치러질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다투게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결국 미래를 잃게 될 것이다."

*("Of this I am quite sure, that if we open a quarrel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we shall find that we have lost the future.")



처칠 경의 이 명언은 1940년 6월 18일, 영국 하원에서 행한 역사적인 '가장 빛나는 순간(Their Finest Hour)' 연설의 한 대목에서 골랐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함락당하며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음에도, 의회 내부에서는 "누가 과거에 히틀러에게 유화 정바카라을 펴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며 바카라임 소재를 묻는 과거사 진흙탕 싸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 처칠이 단상에 올라, 당파 싸움을 당장 멈추고 거대한 외부의 위협에 맞서 국가 이성(Staatsräson)으로 뭉쳐야 한다고 일갈하며 던진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들 스스로 냉혹한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 사유(reason)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30년 후의 미래 세대가 "우리나라엔 왜 이런 사람이 없느냐"며 똑같이 피눈물을 흘리며 한탄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역사는 시대를 읽지 못하는 자에게 단 한 번도 자비를 베푼 적이 없다.






<처칠 경 Their Finest Hour 연설전문>


https://winstonchurchill.org/resources/speeches/1940-the-finest-hour/their-finest-hour/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end-american-sanctuary




https://www.foreignaffairs.com/united-states/sept-11-how-al-qaeda-ended









이전 20화전략적 안정성(Strategic Stabi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