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몸이 감정을 앞서는 순간이면

내면의 가짜 고통을 부수는 육체적 ‘플리에(Plié)’

1부. 추락한 곳에서 마주한 날 것의 현실세계



많은 배송 물량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땀을 흘리던 어느 더운 여름 저녁이었다.


아파트 단지 시멘트 바닥 구석, 보도블록 위로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떨어져 힘없이 죽어 가고 있었다.


차갑고 빳빳하게 굳어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아주 작은 몸통은, 거칠게 마모된 나의 작업용 장갑을 뚫고 느껴질 만큼 강렬한 체온을 뿜어내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경계 앞에서, 그 작은 새가 온몸으로 뿜어내던 처연한 몸짓은 과거 92세 처할머니의 마지막 모습과 완벽하게 겹쳐 보였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면서도 남은 기력을 모조리 쥐어짜 내며 끝내 거친 숨을 내쉬던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


죽음 앞에서는 장례식장에 몰려든 화려한 조화도, 조의금 봉투 속의 두둑한 숫자나 외제 차의 번쩍거림도, 거창한 슬롯적 지위도 모두 다 부질없이 소멸한다.


오직 살아있고자 하는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몸의 욕망만이 강렬하게 존재했다가, 스러지듯 사라질 뿐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허상이나 관념이 끼어들 틈이 없었듯이, 생각이 복잡할 때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 정직한 몸의 감각이다.


삶의 의미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살아가고자 맥박 치는 심장 소리, 숨결을 고스란히 느끼는 고요함 속에 있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소음들이 귓가를 울릴 때면, 내 머릿속은 비관과 헛된 상상이 빚어낸 끔찍한 지옥으로 변하곤 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타인의 찌르는 듯한 시선에 대한 불편함, 지나온 삶의 궤적에 대한 뼈아픈 자바카라은 사실 실재하지 않는 환상이 빚어낸 '가짜 고통'들이다.


허상의 소음이 영혼을 산 채로 삼키려 할 때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내면에 가둔 채 한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요즘 우리에게는 이 고통스러운 감정의 감옥을 거칠게 부수고 나갈 명확하고 정직한 비상구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 작은 새와 사람이 생의 마지막 경계 앞에서 뿜어내던 강렬한 몸의 생존욕구를 매일같이 확인하는 곳이 있다.



영하의 한파와 푹푹 삶아대는 폭염 속에서 커다란 탕용기나 무거운 택배 박스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택배 현장은 우리를 한없이 삶의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생존을 위한 거친 삶의 현장이지만,


동시에 머릿속 허상을 깨부수는 가장 효과적이고도 유효한 몸의 생존의지를 재발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무거운 생수나 농산물들을 수레로 옮길 때마다 온몸의 근육은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고, 허벅지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오며 한계에 다다랐음을 경고한다.


땀방울이 눈을 찔러 시야가 흐려지고 턱밑까지 차오른 숨이 폐부를 찢을 듯한 통증을 안겨줄 때,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을 시끄럽게 괴롭히던 온갖 잡념과 감정의 소음들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연기 같은 회의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온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이 우리의 뇌리에 발붙일 틈 없이 산산조각 난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것은 바로 감정의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 시몬 베유가 매일 몸을 한계까지 내던진 이유다.


"가짜 고통을 부수려면 날것의 진짜 고통이 필요하다"라던 프랑스의 노동하는 철학자인 그녀의 말이 비로소 와닿는다.


땀과 먼지 속을 뒹구는 정직한 육체의 아픔만이 머릿속 쓸데없는 감정의 소음을 잠재운다.


몸의 통증은 뇌를 소란스럽게 채우던 감정적 소음과 헛된 상상들을 강제로 끄는 가장 확실한 스위치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며 파르르 미세하게 떨려오고, 발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을 움켜쥐듯 버텨내는 이 투박하고 처절한 과정에서 나는 문득 발레의 기본 동작인 '플리에(Plié)'의 역설을 본다.


'플리에'는 무릎을 구부리는 단순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무용수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에너지를 극한까지 응축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고통스러운 동작이다.


중력에 순응하며 몸을 가장 낮은 곳으로 웅크리는 그 찰나의 팽팽한 긴장감 없이는, 허공을 가르는 아름다운 점프도 불가능하다.


택배기사인 나의 '플리에'는 화려한 무대 위의 우아한 기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땀에 젖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비루한 노동 현장에서, 삶의 무거운 하중을 온몸의 관절로 받아내며 바닥을 치고 오르기 위해 기꺼이 웅크려야만 하는 가장 투박하고 정직한 맹렬함이다.


생각이 많아 길을 잃었던 감정들은, 정직하게 땀 흘리며 그저 앞으로 전진하려는 몸의 맹렬한 욕망 앞에서 힘을 잃고 증발해 버린다.


몸이 감정을 앞질러 나를 구원해 내는 경이로운 순간을 나는 매일 체험한다. 삶의 하중이 버거워 주저앉고 싶을 때, 우리는 종종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내버려 두고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수렁도 있다. 무릎을 굽히고 삶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는 나의 땀내 나는 '플리에'.


그것은 내 삶을 다시 위로 밀어 올리기 위해 고단한 삶의 중력과 맺는 가장 현실적이고 정직한 타협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도 택배차의 짐칸을 모두 비워낸 후 뻐근해진 두 팔과 다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내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꺼이 다시 웅크릴 준비를 한다.


육체가 감정을 앞서는 순간이면,

우리는 삶의 가장 낮은 곳에서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비상을 꿈꾸는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