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미래의 노인이 오늘 내 안에 살고 있다

상실과 결핍 속에서도 설렘이 존재하는 이유.

제1부. 추락한 곳에서 마주한 날것의 현실 세계



아는 지인이 아내의 생일날 케이크에 2와 8인 숫자 초를 잘못 꽂는 바람에, 28세 생일이 그만 82세 생일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부부는 한바탕 웃고 나서 기묘한 상상을 나눴다고 한다.


만약 내가 여든을 넘긴 노인인데, 어느 날 시공간을 뚫고 28세의 젊고 단단한 몸속으로 거짓말처럼 돌아와 살아간다면 어떤 기분으로 그날 하루를 맞이할까.


그 상상을 하는 순간, 부부는 무심히 마주했던 일상의 매 순간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출근하기 위해 나는 중고 탑차 '포리'의 시동을 걸었다. 밤새 얼어붙은 엔진이 예열되는 동안 잠시 기다리던 중이었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몇 해 전의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조용히 흘러나왔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나의 옛 모습과 가족들의 얼굴이 묘하게 낯설다.


'내 모습이고 내 가족들인데 왜 이리 생소하고 낯선 걸까.'


세월이 흘러 내가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면, 지금 이 핸들을 잡고 땀 흘리는 지금의 내 모습 역시 아득하게 낯설어지리라.


우리는 10대의 나, 20대의 나, 그리고 중년이 된 나의 시간들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단절된 채 살아왔다.


이 '낯섦'이란 눈앞에 펼쳐진 현실 너머로는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그저 속도와 생존에 쫓겨 살아온 지난날을 하늘이 가만히 경고하는 신호는 아닐까.



요즘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배송하거나 무거운 몰짐들을 옮긴 날이면 온몸을 휘감는 통증이 하루가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에 젖은 시야는 점점 흐려져 간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나를 진짜 무너뜨리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피로나 노쇠함이 아니라, 내 몸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늙어가는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회의감' 때문이다.


삶 속에 얼룩진 결핍과 상실은 우리를 늘 삶의 한계선까지 내몰아간다. 그래서 "인생이란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산다고 상상하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의 푸념이 된다.


하지만 스위스 베른의 쉰여덟 살 고전학자가 익숙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듯, 진정한 삶의 의미란 익숙한 경계 밖으로 발을 내딛는 상실의 대가를 치를 때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냈다.


어제나, 오늘처럼, 내일도 별반 기대 할 것 없이 택배 하며 살아야 할 나의 현실 속에서 인생이 지닌 광활한 의미를 어떻게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그러나 미래의 늙어버린 내가 오늘의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볼지 의식하는 일은,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하루를 전혀 다른 기적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기에 결코 포기할 순 없다.



원하지 않는 첫 휴일 배송을 마치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집 근처 저수지 변의 들꽃정원으로 향했다.


여든 중반의 노부부가 40여 년간 가꾸어온 들꽃정원의 잠긴 철문 너머로 풀협죽도와 참나리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곳은 인생을 닮았다. 들꽃정원에도 상실과 결핍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한껏 피어나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시들어 사라지고, 또 다른 꽃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한 계절의 들꽃들이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꽃잎을 떨구고 시간의 '결핍' 속에 시들어갔다. 시들어가는 꽃들은 자신의 줄기 아래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또 다른 들꽃을 위해 씨앗을 떨굴 준비를 조용히 마쳤다.


하지만 '상실'과 '결핍'이 혼재된 이곳에서는 또 다른 계절을 향한 설렘이 존재했다.


여든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들꽃정원을 가꾸며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백발의 여인은 말한다.


"꽃은 피는 것도 아름답지만 지는 것, 나이 드는 것도 참 아름답다"라고.



가만히 중고 탑차 포리의 시동을 껐다. 운전대에 얹힌 손등 위로 미래의 여든 살 노인이 된 내가 오늘 하루를 선물 받아 다시 이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아련한 환각이 번져온다.


조수석에서 잠시 눈을 붙인 아내의 찌푸린 미간, 땀에 절은 낡은 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핸들의 감촉, 그리고 저녁 밥상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된장찌개의 온기. 어린 아들의 환한 미소.


진정한 상실은 어쩌면 지나가 버린 비극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이 소중한 일상을 알아채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내 안에 있던 82세의 노인은, 오늘이라는 이 찬란한 핸들을 지독하게 사랑하라며 땀과 먼지로 얼룩진 나의 손등을 다정스레 다독여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