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방 안의 고요는 한층 더 묵직한 무게로 가라앉는다.
창틀 너머로 지나가는 나뭇가지의 희미한 흔들림 외에는 어떤 움직임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 바카라상 위에 놓인 스탠드 조명이 주황빛 그늘을 그리며 낡은 메모장 위에 부드럽게 내리앉는다.
손끝으로 낡은 메모장의 첫 페이지를 천천히 넘겨본다. 거기에는 수년 전, 인간관계의 열등감에 짓눌려 잠 못 이루던 밤마다 삐뚤삐뚤하게 적어 내렸던 날것의 문장들이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온종일 안절부절못하던 흔적들, 상대의 의도를 지레짐작하며 혼자 오해하고 소외감을 키웠던 기록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오히려 더 날 선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돌아섰던 가시 돋친 일기들.
그 문장들을 가만히 쓸어내리다 보면,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자존감이 낮았는지, 그리고 그 낮아진 자존감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위태롭게 방어기제를 세우고 있었는지가 투명하게 읽혀서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야박했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관계 속에서 저지른 수많은 실바카라들은 타인을 향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지 못해 버둥거리던 서툰 안간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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